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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 대구가 먼저 나서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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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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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대구의 교사 80여명과 자녀들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여했다. 오월로 가는 달구벌 빛고을 교사기행이었다. 빈자리가 없어서 서있어야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들어오면서 기념식장은 한참 동안 시끄러웠지만 영상으로 보니 황 대표도 처음으로 공식 기념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을 불끈 쥐고 따라 불렀다. 부처님오신 날 영천 은해사에서 합장과 반배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며칠 사이에 태도가 바뀐 셈이다. 지역 한 신문 칼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반체제 가요’라는 글이 버젓이 실렸지만 그는 따라 불렀다. 금남로에서 극우단체들이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지역감정을 조장했지만 조족지혈이었다.

하지만 오월 광주에서 대구는 돋보였다. 기념식 시작 영상은 대구 2·28민주운동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연설에서 광주의 228번과 대구의 518번 시내버스를 언급하고, ‘달빛동맹’과 광주에 대한 부정과 모욕에 관해 지난 2월 권영진 시장의 사과의 글을 소개했다. 대구시장과 시의회 의장은 광주시장 등과 같이 점심을 먹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둘러보고 ‘전국의 5·18들’ 기획전시관도 들렀다고 한다. 이곳에는 대구경북 출신의 유동운·김의기 등의 5·18 유공자들의 기록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광주는 대구와 용서와 화해의 길을 가고 있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와 ILO조약 비준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날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1980년 오월, 우리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주를 보았고, 철저히 고립된 광주를 보았고, 외롭게 죽어가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의 마지막 비명소리와 함께 광주의 오월은 우리에게 깊은 부채의식을 남겼습니다. 오월의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 학살당하는 광주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같은 시대를 살던 우리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를 함께 겪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 오월의 광주를 일찍 알았든 늦게 알았든 상관없이 광주의 아픔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 부채의식과 아픔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광주시민의 외침이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 항쟁은 5·18의 전국적 확산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너무나 큰 빚을 졌습니다.’

대통령의 인식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모처럼 대통령의 단호함을 직접 보았다. 어쩌면 대통령의 비판이나 비난은 역사 앞에서 단호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국회의 막장 파행과 정치인들의 상식 밖의 막말을 보면서 단호해진 듯 보였다. 나는 내심 반가웠다. 용서나 화해는 퇴행이 아니다. 모두들 역사 앞에 진실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 도청 시민군 항쟁지도부였던 정해직 선생과 함께 했다. 광주 망월동과 금남로, 옛 전남도청을 걸으며 시민군이었던 분들을 자주 만났다. 항쟁의 현장에서 죽지 못해 자신만 살아남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분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선생은 나이에 비해 훨씬 쇠약해져 있었지만 끝까지 우리를 당시의 현장과 상황 속으로 안내했다. 광주의 불문율은 당시 항쟁의 주역들이 나서서 항쟁의 현장을 안내하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죽어 간 동지들을 지켜보고, 죽어간 수많은 시민들의 주검을 수습하고,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혔던 기억을 애써 되살려 내게 하는 것은 참 모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내 어두운 표정과 침묵으로 안내하던 정해직 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눈물이 난다.

우리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달구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빛고을에서 같은 시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대구가 광주의 아픔에 생채기를 낸 것을 찾아 용서를 구하고 화해해야 한다. 대구가 먼저 광주의 오월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시작인 2·28을 가르칠 것이다. 그렇게 달빛동맹은 화해의 상징이 되고 대한민국은 더 멋진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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