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청맥’ 경북여고‘백합’ 등 그 많던 문예반은 어디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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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1-18   |  발행일 2011-11-18 제37면   |  수정 2011-11-18
대입위주 교육에 역사뒤켠 밀려
시교육청 대신 문예영재원 개설
현재 307명의 작가 지망생 공부
상인고 이봉화양 소설등단 쾌거
20111118
상인고 이봉화양

고교문예반이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 이 무렵에는 지역 고교마다 경쟁적으로 교내 백일장, 시화전, 문학의 밤 등을 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학교는 명문대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는 것이 지상의 명령이다. 학생들은 입시에 올인하도록 길들여졌다. 문학에 빠진 학생들도 ‘문제아’로 낙인찍히기 일쑤였다. 문학 동아리 활동도 극도로 제약을 받았다. 수업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원에 가고나면 문청(文靑·문학청년)은 언감생심이었다. 경북고의 ‘청맥’, 경북여고의 ‘백합’ 등 교내 문예지도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작가 지망생은 얼음판에서 싹 틔우는 심정으로 스스로 문학열정을 갈무리할 수밖에 없다. 보다 못한 대구시교육청이 2007년 신명고에 문예영재교육원을 열었다. ‘삶 쓰기 100자 노트’와 ‘글쓰기 위크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초·중과정 9년간 150편의 생활글쓰기를 유도했다. 시·소설·시나리오반에 각각 16명씩 배정했다. 시내 4개 교육청별로도 초등과 중등 시와 소설반을 운영하는데 현재 모두 307명의 작가 지망생이 길러지고 있다.

‘어둠속에서 깃털 하나가 부유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하얀 깃털은 어둠이 만들어 낸 적막과 대비되어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간간이 떨어질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겨우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날개 다친 나비를 연상케 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깃털은 서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간단치 않은 글은 지난 6월 계간 종합문예지 ‘작가시선’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대구 상인고 3년 이봉화양의 등단작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의 글머리 부분. 2년 구상을 한 작품으로 초반부 고백투의 농밀한 문체가 돋보인다. 신춘문예에 내밀어도 될 수준이다.

그녀는 2009년부터 대구시교육청 문예영재교육원을 다녔다. 최근 고교 출신이 등단한 사례는 전무해 이양의 재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상인고에서 그녀를 만났다. 만화영화 주인공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깡도 있고 독서인프라도 무척 튼튼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 ‘아,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구나’에 꽂혔습니다. 이는 괴테가 근대화를 경고하는 대목인 것 같아요.”

국내 작가로는 신경숙, 김은수, 고은주, 김훈 등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영화도 좋아해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상인고에도 문예반이 별도로 가동되지 않는데 그녀 주도로 ‘The writer’란 글쓰기 동아리를 이끌었다. 12명이 함께 ‘너를 찾아가는 과정’이란 단편소설집도 냈다.

처음에는 수필을 배우다가 소설로 옮겨왔다. 고은주의 1인용 식탁은 5번이나 필사했다.

“소설을 통해 친구들이 쉽게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그녀. 영화감독에도 도전할 심산이다.
이춘호기자 leek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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