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의 생태 문화기행 .11]<끝> 회화나무와 양동마을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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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1-19   |  발행일 2011-11-19 제5면   |  수정 2011-11-23
題字 : 변미영
그곳에서 선비의 기상과 마음가짐…절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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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정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모습과 회화나무 4그루.


경주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반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산인 설창산에 둘러싸인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가 500여년 동안 살을 부비고 살아온 터전이다. 그들의 생활모습이 담긴 기와집과 초가집, 서당과 정자, 돌담길 등은 정다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양동마을에는 회화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감나무 등 키가 큰 나무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숲속에서 오랫동안 혈통관계로 살아온 반촌의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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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손씨 종가인 서백당 마당에 있는 경북도 기념물 제8호인 향나무.

양동마을에는 선비가 좋아하는 회화나무가 특히 많다. 학문을 탐구하는 반촌의 선비는 가지퍼짐이 좋은 회화나무의 기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름드리 벽오동이 담장 너머로 푸른색 정기를 뽐낸다. 이향정에는 회화나무 세 그루가 시선을 끈다. 콩과에 속하는 회화나무는 이향정 돌담에서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이러한 회화나무의 기상을 선비는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향정을 지나 성주봉으로 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향나무가 당당히 서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이향정의 회화나무와 향나무는 항상 깨어있는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소박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서당 강학당에는 향나무, 살구나무, 회화나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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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곡고택 앞의 향나무와 우물.

노모 봉양을 위해 관직을 버린 농재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1560년에 건축한 심수정에는 회화나무 네 그루가 아름드리로 자란다. 성주봉 기슭에 자리한 심수정은 향단에 딸린 정자다. 심수정 마루에 앉으면 아름드리 회화나무 사이로 마을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심수정 마당에는 허리를 뒤로 젖힌 향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렇게 심수정은 아름드리 회화나무와 향나무 덕분에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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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정의 회화나무 3그루.

심수정에서 마을로 내려가면 오밀조밀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시선을 끈다. 무서운 가시로 무장한 탱자나무에도 노란색 탱자가 가을을 매달고 있다. 구불구불한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가면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선비를 만날 것만 같다. 향나무가 우물을 감싸고 있는 두곡댁에는 모과나무 두 그루와 목련이 아름드리로 자란다. 그 위쪽의 동호정에는 배롱나무, 졸참나무, 감나무가 가을채비로 분주하다. 뿌리가 드러난 감나무는 먹음직한 홍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반촌의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천천히 걷는 여유로움 때문에 즐겁다.

은행나무가 황금색 나비를 땅으로 날리는 오솔길을 따라 상춘헌으로 간다. 상춘헌 입구에는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누워버린 향나무가 있다. 누워서도 생명을 품어가는 향나무를 통해서 상춘을 되새긴다. 그 옆에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올곧은 기상을 보여준다. 회화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신의 기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이러한 회화나무는 사호당 고택에도 어김없이 메두사의 머리처럼 우람한 가지퍼짐을 보여준다. 근암고택 입구에는 아름드리 팽나무가 느티나무의 줄기에 가지를 슬쩍 걸치며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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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의 향나무 2그루가 외부세계가 궁금한지 담을 넘어 자라고 있다.

경산서당에서 수졸당 가는 뒷동산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서 상쾌하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면 넓은 안강들판이 펼쳐진다. 그 언덕에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초가집에 들어서면 외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만 같다.

서백당은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한 월성 손씨 종가다. 서백당 앞에는 노오란 은행나무가 늦가을 풍경을 더한다. 서백당 마당에는 손소(1433∼1484)가 심었다고 전하는 수령 600년의 우람한 향나무가 살고 있다. 향나무는 하루에도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쓰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선비의 마음수양을 상징한다. 향나무는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선비의 늘 푸른 정신과 고민을 줄기에 울퉁불퉁하게 남겨놨다.

무첨당은 이언적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1460년에 지은 여강이씨의 종가다. 무첨당 입구에는 어린 백송과 섬잣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무첨당에는 목련과 단풍나무가 아름답다. 봄마다 탐스럽게 피어나는 목련꽃은 후손에게 정갈한 마음가짐을 깨우쳐준다. 단풍나무는 가을에 욕심을 비우는 절제를 보여주는 듯하다.

정충비각에는 가이즈카향나무가 타오르는 불꽃모양으로 자란다. 정충비각은 병자호란 때 낙선당 손종로와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7년(1783)에 건립됐다. 양반의 비각은 팔작지붕의 화려함이 돋보인다면 노비의 비각은 검소하고 단출하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충절의 가치가 달랐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노비의 충절을 표상하려고 비각을 만든 배려가 돋보인다.

관가정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노란색 황금비를 뿌리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아래쪽의 흙이 쓸려 내려가 뿌리가 노출되었다. 그래도 은행나무는 힘겹게 마을을 지키며 살아간다. 허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회화나무는 은행나무와 달리 고풍스러운 멋을 품고 있다. 특히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는 서로의 뿌리를 감싸며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이 성장하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높은 곳에 자리한 관가정에는 조각자나무, 향나무, 배롱나무 등이 자란다. 조각자나무

옥산서원은 자옥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자계의 풍경이 빼어난 곳에 자리한다. 옥산서원에는 선비의 평정심을 상징하는 향나무가 살고 있다.

계곡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머물던 독락당이 있다. 독락당은 자연친화적 건축의 백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별서정원이다. 독락당에도 마음수양과 늘 푸른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향나무가 자란다. 향나무는 학문을 탐구하는 선비의 올곧은 기상을 사계절 내내 신선한 향기로 전해준다.

독락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면 중국 원산인 조각자나무가 있다. 조각자나무는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아나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어린 조각자나무일수록 날카롭고 무서운 가시를 많이 달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조각자나무의 생존전략이다. 그렇지만 조각자나무도 세상의 원리를 깨달은 뒤에는 가시가 무뎌진다. 나두 그루는 무서운 가시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런데 조각자나무도 세상의 원리를 깨달은 뒤에는 가시를 만들지 않는다. 관가정 마당에는 향나무가 용틀임을 한다. 낮은 자세의 향나무는 굵은 줄기를 서로 꽈서 하늘로 비상하는 용을 닮았다. 주변의 젊은 향나무 두 그루는 높이뛰기 선수가 바를 넘는 모습처럼 담을 넘어 형산강과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많은 젊은이처럼. <특별취재팀>


# 조각자나무와 독락당

조각자나무 가시에서 얻는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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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의 조각자나무 가시.

경주의 양동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회재 이언적 선생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다. 이테가 많아지면 날카로운 가시도 부드러워지는 조각자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특별취재팀>


▨ 천년고도 경주생태문화기행 특별취재팀

◇팀장=김수영 차장 ◇취재=이지용 차장, 백승운 차장, 이창남 기자, 이명호 기자, 강판권(계명대 사학과 교수), 김재웅(경북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남정원(계명대 외래교수), 변미영(화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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