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2) ‘대구 논메기매운탕 1번지’ 달성군 다사읍 부곡·문양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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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1-06   |  발행일 2012-01-06 제42면   |  수정 2012-01-06
“2호선 종점 문양역 가서 한 그릇 할까?” 어르신들 논메기투어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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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논메기매운탕(위쪽)과 토장국처럼 아주 걸쭉한 전주 오모가리탕. 대구는 일반 냄비에서 끓이는데 반해 전주 등 전라도에서는 뚝배기에서 끓이는 게 특징이다.

쇠고기가 끓는 물에서 육개장이 된다.
이를 본 물고기도 덩달아 뛰어든다. 민물고기는 ‘매운탕’, 바다고기는 ‘해물탕’이 된다. 매운탕 중에서 가을 민물고기로 만든 걸 ‘추어탕’이라고 하는데, 이중 미꾸라지가 제일 사랑을 받는다. 청도에서는 미꾸라지가 들어가지 않는 추어탕이 유명하다. 이밖에 쉬리, 동자개, 빠가사리, 뿌구리, 꺽지를 비롯한 온갖 민물잡어로 만든 건 잡어탕이 된다. 잡어탕에 국수가 들어가면 ‘어탕국수’, 쌀이 많이 들어가면 ‘어죽’이다.
매운탕 요리의 핵은 ‘비린내 잡기’.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된장, 고추장, 초피, 들깻가루, 청주, 심지어 수제비, 민물새우 등을 넣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대구에서 논메기매운탕이 대구십미로 유행중인데, 미향(味鄕)인 전북 전주에 메기로 만든 ‘오모가리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연장선상에 강릉 연곡면의 ‘꾹저구’탕이 있다.
추어탕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 경상도는 맑은데 비해, 전라도는 팥죽처럼 걸쭉하고 뻑뻑한 게 특징이다. 육개장 전통 탓인지 경상도는 대파와 토란대, 전라도는 시래기가 축을 이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운탕이라고 하면 잉어와 붕어가 대세였다. 탕과 찜이 불티나게 팔렸다. 계문화도 함께 춤을 췄다. 나중엔 향어 붐까지 가세한다.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전남 해남, 전북 김제 등에서 양식 메기가 다크호스로 등장한다. 90년대초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에서는 논메기란 이름의 식당까지 나온다. 유통되는 메기는 모두 논메기다.
그런데 전라도 등에서는 그냥 메기란 말을 사용했는데, 부곡리에서는 논메기를 독점함으로써 마케팅에 성공을 했다. 메기매운탕도 경상도와 전라도 버전이 서로 다르다.


양식장 하던 토박이가
그냥 촌스럽게 끓였는데
낚시꾼에 입소문 '대박'

현재 부곡·문양리에
무려 22개 식당 산재해
전라도서 올라온 메기 축양장에 6t 보관

전주선 오모가리탕 불려
시래기·민물새우 첨가
당면·청주는 사용 않아
대구식과 조리법 차이


◆ 박정희와 대구 매운탕

62년 2월3일.

그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5·16 거사 전날보다 더 들떠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울산에서 한국 근대화의 상징적 프로젝트인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이날 발진됐기 때문이다. 울산은 한국 첫 공업지구로 설정돼 정유·비료·자동차·조선 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릴 잡기 시작한다. 그 힘이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이어졌다. 훗날 중앙정보부장이 되는 이후락도 자기 고향인 울산 살리기에 적극적이었다. 61년 5월20일 군정 초대 대구시장에 부임한 당시 대전 2사단 참모장이었던 강원채 대령은 혁명 성공 후 박 소장의 첫 지방 나들이에 빠질 수 없어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행사를 마친 박정희는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일행들과 기차를 타고 대구로 와서 잠시 회포를 푼다.

연회장은 대구의 여걸 마담, 김태남이 버티고 있던 청수원(현재 중구 곽병원 남쪽 입구 모퉁이 태남빌딩). 혁명 거사 자금까지 대준 김태남은 박정희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준다. 청수원은 박정희 혁명 거사 모의 장소여서 남달리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주로 정종을 거나하게 마신 박정희는 갑자기 강창(江滄·대구시 달서구 파호동) 매운탕이 먹고 싶다면서 차를 대기하라고 했다. 50년 12월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육영수와 결혼식을 올릴 때도 그는 광복 직후 금호강변 첫 매운탕 집격인 대구관(현재 달서구 파호동 49의 1)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경호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그날따라 로맨티스트로 변했다. 운전석엔 강원채 시장을 앉혔다. 지금과 달리 비포장이었던 그날 박정희는 덜컹거리는 자리에서 속이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먼지도 적잖게 덮어 썼다. 박경원 경북도지사, 2군사령관 등과 경호팀도 거리를 두고 비포장 길을 뒤따랐다. 강창의 금호식당을 찾았다.

금호식당은 근처에 있었던 대구식당과 함께 강창 매운탕 시대를 풍미한다. 금호강의 야경과 대구관 매운탕을 앞에 한 박정희는 피말렸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막걸리를 연거푸 마셨다. 박정희는 건더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속풀이할 요량으로 국물만 몇 번 떠넣었다. 박정희는 원래 과식을 하지 않는다.

◆ 대구 논메기매운탕

70년대 대구의 매운탕 문화는 전국적 명성을 자랑했다.

70년 강창교가 생기고 물이 오염되면서 매운탕 거점은 강 건너 달성군 다사읍 강정으로 옮겨간다. 금호·경산·다사·대동·대구·낙동식당, 부동댁 등이 전성기를 맞았으며, 현재 8집이 모여 있다. 아직 추억이 어린 잉어매운탕을 팔고 있다. 강창 뱃사공 출신의 한동호씨는 경산식당을 이끌다가 5년전 작고했다.

강창과 강정, 그리고 청천·동촌·화원유원지, 옥포 용연사, 심지어 남구 대명동 즉결재판소 근처에 향어회 타운이 조성되면서 대구 매운탕 전성기는 80년대말까지 이어져갔다. 90년대 들면서 도심에 매운탕 명가가 생겨난다.

예전에는 잉어와 붕어가 인기였지만 양식 논메기 매운탕으로부터 습격을 당한다.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의 논메기매운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종점인 문양역 인근 부곡리. 마을 토박이 손중헌씨가 우연한 기회에 논메기매운탕을 개발하게 된다. 농가소득을 찾다가 메기 양식장을 한 것이다. 유료낚시터에서 건져올린 메기로 요리를 했다. 손씨는 매운탕 요리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촌스럽게 메기탕을 끓였는데도 낚시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다. 나중에 영업 허가를 내 간판을 걸고 메기매운탕 영업을 시작한다. 현재 논메기매운탕마을 문산번영회(회장 배종열)도 생겼다.

부곡·문양리에 무려 22개의 논메기매운탕집이 산재해 있다. 문양역 앞 청국메기매운탕 주인 최진곤씨(53)는 90년대초 지역에서 처음으로 전라도 양식 메기를 대구·경북에 유통시킨다. 현재도 식당 옆 축양장에 6t의 메기가 놀고 있다.

요즘에는 지역 실버들의 ‘논메기 투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문양역 광장에 내려서면 셔틀버스 구실을 하는 승합차가 식당까지 태워주고 역까지 모셔다준다. 문양역은 졸지에 실버들의 만남의 광장이 됐다. 역사 3층에는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실버카페 ‘나우’도 있다.

◆ 전주 오모가리탕

‘오모가리탕이라니.’

도대체 무슨 음식일까. 바로 전주의 명물 음식이다. 오모가리탕은 전주는 물론, 전라도의 대표적 매운탕이다. 전주시 교동 전통문화센터 맞은편에 세 집이 나란히 손잡고 있다. 한벽·남양·화순집이다. 다들 반 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모가리탕은 메기·쏘가리 등 각종 민물고기를 주 재료로 하는 민물매운탕이다. 그럼 왜 하필이면 오모가리탕일까. 각종 민물고기를 탕으로 끓여 내놓는 용기를 전주에선 ‘오모가리’라 한다.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라도 사투리.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릇 이름이 음식명이 된 것이다.

오모가리탕은 전주지역 목욕문화와 함께 했다. 목욕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50년대에 지금의 한벽보가 있는 한벽루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목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다. 반도 등으로 잡은 잡어를 현재 한벽집 주인 할매한테 부탁해 요리를 해먹었다. 해장술로 모주(母酒)도 먹었다. 전주의 명물 중 하나인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 대추, 칡을 비롯한 8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인 해장술이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계피를 넣어 만든다. 계피의 향이 진하게 남아 있어 수정과와 맛이 흡사하다.

알코올 도수가 1.5%라 낮에도 부담없기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전주천에서의 낚시가 금지되면서 용담호를 비롯해 운암호 등지에서 오모가리탕의 주 재료인 메기, 동자개, 쏘가리, 피라미 등을 공급받는다.

가장 오래된 식당은 70여년 역사의 한벽집, 다음은 남양집, 막내가 화순집. 고부 간에 60년 전통의 깊은 오모가리탕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 남양집. 시할머니부터 시작된 남양집 오모가리탕은 시어머니(신점례)를 거쳐 10년 전 시집온 며느리(곽연희)에 의해 그 맛이 이어지고 있다. 남양집 오모가리탕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쌀뜨물과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이 집만의 특별한 육수가 깊은 맛을 우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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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문양역 근처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논메기매운탕 전문업소 간판.

◆ 경상·전라도 메기매운탕 레시피

전라도는 경상도와 매운탕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에서는 시래기와 실가리(우거지)가 중심을 차지한다. 시래기가 조금 더 차지한다. 한벽집의 레시피를 문틈사이로 엿봤다. 시래기와 실가리를 6대 4 정도로 섞고 거기에 대파, 양파, 마늘, 생강, 새우와 들깨가 들어간다. 된장을 조금 더 넣기도 하고 고추장도 첨가하지만 이럴 경우 국물이 텁텁해진다. 한벽집은 칼칼한 맛을 위해 다시를 별도로 빼지 않고 생수를 이용한다. 또한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는다. 더욱 깊은 맛을 위해 민물새우가 들어간다.

경상도 매운탕에는 당면이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경상도는 냄새를 잡기 위해 청주를 이용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이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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