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공짜 점심이 있는가

  • 입력 2012-04-17   |  발행일 2012-04-17 제2면   |  수정 2012-04-17
[특별기고] 공짜 점심이 있는가

미국의 무상원조로 배급된 강냉이빵을 먹던 즐거운 추억 속에 초등학교를 다닌 필자 역시 같은 연배의 친구가 그랬듯이 ‘선진국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어려서부터 고민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63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가 1995년에 1만달러를 돌파하고 이듬해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국가가 된 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고심끝에 찾아낸 두개의 단어는 질서와 복지다. 무엇보다도 법치와 공정 경쟁, 곧 사회를 정정당당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질서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복지국가가 선진국가다. 이 중 질서는 사회구성원간에 별 논쟁을 야기하지 않으나 복지는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전자가 국민의 의식에 관한 비중이 크다면 후자는 예산이 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복지라는 단어가 정책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방증해주기 때문이다. ‘선택적 복지인가 보편적 복지인가’하는 논쟁 또한 복지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터부시할 사안은 아니다.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도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초·중학교별 무상급식 실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친환경의무급식 조례’ 제정이 지방의회의 심의를 앞둔 상황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례의 내용은 내 자식 안심하고 좋은 음식을 먹이자는 좋은 내용의 취지이지만 문제는 그에 따른 막대한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구시는 예상 상황을 고려해 저소득 청소년부터 단계적으로 점심 제공을 위한 급식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해인 작년에는 전체 학생의 18%인 6만5천명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올해는 작년의 2배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해 36%에 달하는 12만5천명에게 점심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타 시·도의 상황을 보면, 도 단위의 무상급식 실시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부산과 울산, 대전 등 광역시 단위에서는 대구시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내용면에서는 초·중·고교의 저소득학생 지원비율은 대부분 20%대로 대구시의 36%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예산의 제약문제가 따르는 만큼 무상급식의 확대와 관련해서는 후유증을 유의해야 한다. 올 새학기부터 초등 5~6학년부터 중학교까지 확대된 서울의 일선 학교에서는 건물보수를 하지 못하고 원어민 교사도 내보내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먹는 문제 때문에 교육의 질적 저하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무상급식은 가난한 사람에게 공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기에 온 국민이 급식비를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제학의 중요한 기본 개념 중 하나가 ‘세상에는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편익에도 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인데 과연 학교에는 공짜점심이 있겠는가.

옛말에 “자식 입에 밥 들어가고, 메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다. 국가의 앞날을 짊어지고 갈 학생에게 먹을 것을 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한정된 예산 상황에서 우선은 학력신장과 교육격차 해소지원 등 질 높은 공교육 실현을 위한 온 시민의 지혜를 모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영복 <대구시 경제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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