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토탈 리콜·대학살의 신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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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17   |  발행일 2012-08-17 제40면   |  수정 2012-08-17
[신작 對 신작] 토탈 리콜·대학살의 신

◇ 토탈 리콜 : 22년 만의 리메이크…화려한 비주얼에 가린 철학적 깊이

렌 와이즈먼 감독의 ‘토탈 리콜’ 리메이크 소식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폴 버호벤의 1990년작 ‘토탈 리콜’은 당시 2억6천만달러(제작비 7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SF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던 무시무시한 블록버스터였다. 그만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는 얘기.

그런 부담을 뒤로 하고 그가 리메이크를 결심한 건 리얼리티와 판타지 요소가 서로 뒤섞여 충돌하는 필립 K. 딕의 원작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렌 와이즈먼이 원작에서 가장 흥미로워 했던 점은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두고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있다.

렌 와이즈먼은 ‘다이하드4.0’ ‘언더월드’ 시리즈 등을 연출했다. 극단적인 폭력으로 분출됐던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과 어깨를 마주할 정도의 자질과 능력은 이미 갖춘 셈이다. 특히 물리적인 액션과 CG를 결합하는 데 능수능란함을 보여주었던 만큼 그가 어떻게 원작의 비전을 되살려내고, 폴 버호벤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영화팬들의 관심과 기대는 모아진다.

아름다운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 함께 사는 평범한 노동자 더글라스 퀘이드(콜린 파렐). 그는 매일 의문의 여인 멜리나(제시카 비엘)와 함께 쫓기는 악몽을 꾼다. 그러던 어느 날, 더글라스는 완벽한 기억을 심어서 고객이 원하는 환상을 현실로 바꿔준다는 리콜사를 방문해 자신의 꿈을 체험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갑자기 무장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아내 로리마저 자신을 죽이려 하자 혼란에 빠진다.

리메이크 ‘토탈 리콜’은 이후부터 오리지널과 차별화를 꾀한다. 일단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이 지구의 식민지로 설정된 화성을 배경으로 했다면, 렌 와이즈먼은 SF적 요소가 가미된 지구의 미래 도시(상류층이 살고 있는 거대 국가 브리튼 연방과 그 식민지인 콜로니로 구분된다)를 그 배경으로 삼았다. 렌 와이즈먼은 “영화에 등장하는 세계는 현실과 다르지만 관객들이 공감하길 원했다”며 “너무 많은 요소가 들어가면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어 이 영화를 3D로 제작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신 그는 주인공의 정체성과 자아에 주목했다. 퀘이드가 혼돈과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파고드는 과정이 시종 긴박하면서도 흥미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심도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됐다. 덕분에 이미 오리지널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인지 환상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퀘이드의 복잡한 심리에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건 렌 와이즈먼의 장기라 할 수 있는 특수효과와 액션이다. 2억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 역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여러모로 그가 이 영화의 제작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던 셈. 이미 22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는 만큼 비주얼은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낸 세트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고, 빠른 속도로 촬영되는 슈퍼 슬라이더 카메라 3대를 동시에 사용해 촬영된 액션 장면은 뛰어난 현실감을 부여하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신개념 미래형 국가와 최첨단 운송 수단들은 색다른 볼거리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샤론 스톤의 바통을 이어 더글라스 퀘이드와 로리를 열연한 콜린 파렐과 케이트 베킨세일의 캐스팅은 나름 무난한 편. 물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무게감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콜린 파렐 또한 이미 ‘폰 부스’ ‘킬러들의 도시’ 등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남겼던 개성파 연기자다. 그런 만큼 이번에도 원작보다 더욱 섬세하고, 강렬하며, 세련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여기에 원초적 미를 뽐내던 샤론 스톤의 포스 대신,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여전사로 돌아온 케이트 베킨세일의 로리 역도 흥미롭다. 폴 버호벤의 열성적인 팬이거나 처음 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에게 ‘토탈 리콜’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결과물일 듯하다.


[신작 對 신작] 토탈 리콜·대학살의 신

◇ 대학살의 신 : 교양있는 부모들의 막장싸움…로만 폴란스키 첫 코믹作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교양 넘치는 두 부부가 한 아파트에 모였다. 작가인 페넬로페(조디 포스터)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마이클(존 C. 라일리) 부부의 집이다. 이 집을 악덕 제약회사를 변호하는 변호사 앨런(크리스토퍼 왈츠)과 투자브로커인 그의 부인 낸시(케이트 웬슬렛)가 방문했다. 앨런과 낸시의 아들 재커리가 막대기를 휘둘러 페넬로페와 마이클의 아들인 이튼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 것. 따라서 이 날의 만남은 배운 부모들답게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다. 하지만 “괜찮은 부부”라며 서로를 칭찬할 정도로 교양과 미소가 넘쳐나던 처음의 분위기는 차츰 대화가 진행되면서 험악해진다. 결국 내재돼 있던 감정의 가시가 서서히 밖으로 드러나며, 이들이 모인 거실은 치졸함과 비꼬기를 넘어 부부간 갈등까지 뒤엉키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된다.

애들 싸움보다 웃긴 어른 싸움을 보여주는 ‘대학살의 신’은 로만 폴란스키의 첫 번째 코미디다.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대학살의 신’을 본 후 이에 매료된 폴란스키는 “연극의 톤이 너무 재밌고 속도감까지 있다. 가장 끌렸던 부분은 80여분의 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리얼 타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도 이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사실 한정된 공간, 특별한 볼거리나 흥미로운 장치가 없는 단조로움은 연극무대가 아닌 이상,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살의 신’은 이런 단점을 오히려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킨다. 우선 공간의 단조로움을 캐릭터의 힘과 이야기로 밀어붙였다. 덕분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는 엄청 웃기면서도 예리한, 블랙코미디로 변모하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들 각자의 딜레마가 허영과 무절제함, 나약함과 속물성과 함께 드러나는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다. 사람 좋은 얼굴로 원만한 해결을 독려했던 마이클은 알고보면 햄스터를 길에다 버린 잔인한 사람이었고, 세상 어떤 일보다 업무 전화를 받는 게 우선인 당당하고 시니컬한 앨런은 휴대폰이 물에 빠지자 풀이 죽어 그대로 주저앉는다. 여기에 술기운까지 더해지자 이들의 막장은 한층 더 탄력을 받는다. 말꼬리를 잡고, 비꼬고, 했던 말 또 하고, 상대방을 향해, 또는 부부간의 싸움으로 번지며 “당신 애는 빌어먹을 고자질쟁이야” “고상한 개소리는 집어치워” 등의 독설을 내뱉고, 급기야 남의 집을 장식해 놓은 비싼 튤립을 패대기 치고, 토하고, 주먹다짐을 하는 등 거침없이 꼴사나운 행동을 보인다. 흥미로운 건 갈등과 화합이 수시로 뒤바뀌는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의 친구가 됐다가도 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말에 동조하면 친구이고 아니면 독설의 타깃이 되는 적일 뿐이다.

‘대학살의 신’은 이처럼 폴란스키가 만들어온 작품 선상에서 색다르면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폴란스키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코미디라는 이유도 있지만 화려한 캐스팅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등이 이 영화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이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보는 관객 역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케이트 윈슬렛의 말처럼 마치 다음을 예상할 수 없는 즉흥곡처럼 계속 변주되는 이야기와 예상을 뛰어넘는 열연은 이 영화의 확실한 미덕이다.

최고의 배우들을 불러 모은 만큼 폴란스키는 파리 변두리에 2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그 안의 거실, 침실, 복도 등의 세트는 물론 배우들의 의상까지도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리얼한 캐릭터들이 완성될 수 있었다. ‘대학살의 신’은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재치 넘치는 대사와 연기, 이를 책임질 감독과 배우만 갖춰진다면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영화라도 충분히 관객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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