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상옥리 ‘참느리SC로컬푸드’ 손대만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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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24   |  발행일 2012-08-24 제37면   |  수정 2012-08-24
“친환경 농작물을 당일 직접수확 당일 직접배송…이게 꾸러미 정신”
귀농 2년 올챙이 농부가 로컬푸드 직거래 산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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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포항시 죽장면 상옥 슬로우시티로 귀농해 요즘 도농 직거래 반찬 유통업을 펼치고 있는 참느리 SC 로컬푸드 손대만 대표가 상옥 토마토같이 웃고 있다.

얼마 전 기자 앞으로 10㎏ 남짓한 박스 하나가 직송돼 왔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참느리 SC 로컬푸드’ 대표인 귀농인 손대만씨(46)가 자기 지역 제철 농작물 12가지를 꾸러미로 보내온 것이다. 여느 배송물품과 달랐다. 마치 고향 친척이 자기 텃밭에서 캐낸 걸 보내준 것 같이 따스했다. 그 안에 손씨가 회원에게 보내는 육필편지가 들어 있었다. ‘2년차 올챙이 농부입니다. 우리 농산물은 현재 여러 단계를 거치는 유통구조 때문에 생산·소비자가 모두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저희 회원이 되시면 아침에 수확한 농산물을 당일 저녁에 요리해 먹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시작한 ‘도농간 로컬푸드 직거래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주문인 듯했다. 90년대 초부터 이런저런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사업이 확장일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브랜드간 차별이 별로 노출되지 않아서 도시민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꾸러미 농산물 재배 현장은 어떨까? 그걸 확인하고 싶어 지난주 일요일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로 갔다.

 


귀농 2년 올챙이 농부가 로컬푸드 직거래 산파역
제초제 없는 상옥마을의 60농가 네트워크화 성공, 취급품목 100종류 넘어

 

배송 시작 3개월 ‘입소문’ 대구지역 회원만 80여명
월 10만원에 네차례 배달 매주 내용물 달라 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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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느리 농군 손대만 대표가 토마토 집하장의 차량 앞에서 상옥 농작물을 들고 지역 주민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슬로우시티 상옥마을을 찾아서

소문대로 상옥마을은 풍광이 압권이었다. 상옥~하옥~영덕 옥계계곡으로 이어지는 14㎞ 협곡은 거대한 분재 같았다. 상옥리 뒷산인 가사봉에는 ‘삼파수(三派水)’가 있다. 바로 오십천·금호강·낙동강의 시발점이다. 특히 낙동정맥과 맞물린 가사봉은 팔공산의 시맥(始脈)이기도 하다.

구릿빛 피부와 무쇠처럼 단단한 체격을 가진 손씨.

흙내음이 물씬 풍겼다. 도회지풍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는 그의 각오와 진지한 자세가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난 3월 고향인 상옥으로 주소를 옮겼다. ‘지역 농산물 먹기 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닉네임도 ‘일하는 농부’로 정했다.

한때 대구하키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여년간 광고기획사를 운영했지만 뭔가 1% 부족했다. 그는 지칠 때마다 고향인 상옥마을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의 유전자에 농업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귀농 직전에 세밀한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무턱대고 시골로 가서 ‘나 농부가 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해선 안될 것 같았다.

“‘하다 안되면 시골로 들어가 농사나 짓지’란 말은 더이상 시골에선 통용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농촌이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포옹해주는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건 농촌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농촌은 미래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분들한테 더 우호적이죠.”

그는 귀농하기 전에 고향 어르신과 지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귀농의지도 알리고 포부까지 소상하게 설명했다.

“지금 도시의 식탁이 처참하게 붕괴되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도시의 식탁부터 살려줘야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상옥이 ‘도심식탁 살리기의 신기원’을 이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산물을 통해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면 농업의 미래는 더욱 밝을 수밖에 없죠. ‘1사1촌’운동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일입니다. 그걸 위해서 제가 꾸러미 사업을 전개할 테니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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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 꾸러미 사업을 시작하다

모두 손 대표의 열정에 한 표를 던진다.

손을 벌리기 전에 그는 자신이 완전히 농부라는 걸 입증해야만 했다. 그래서 1만5천㎡(5천여평)의 논밭을 구입했다. 현재 고사리, 감자, 고추, 차조, 벼, 콩, 고구마, 땅콩, 배추, 매실 등 10여가지 농작물을 재배한다. 그중 제일 넓은 곳은 고추밭으로 3천300㎡(1천평).

배우고 또 배웠다. 농사의 본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농사마인드가 잘 구축된 탓에 남보다 더 빠르게 농군으로 변할 수 있었다.

농사가 조금 손에 익자 다음에는 지역에서 가장 역량있는 농군들을 찾았다. 일단 쌈채소와 관련해 가장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고천농원 손유락씨한테 매달렸다. 나이는 자기보다 많지만 집안 조카별 되는 손씨. 그는 무려 30여가지의 쌈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쌈채소의 달인’으로 불리고 있었다. 동절기가 되면 고천농원의 과메기용 쌈채소는 귀한 몸이 된다. 농협하나로, GS, 롯데와 거래를 하지만 손 대표의 ‘꾸러미 철학’에 감명을 받고 도움을 주기로 한다.

다음은 농작물 네트워크 구축사업.

그러기 위해선 고향 불알친구와 손을 잡아야만 했다.

친환경 허브인 방아만 집중적으로 2만1천㎡(7천평) 재배하는 이동건씨, 호박농사를 하는 문원갑씨, 토마토 농사를 하는 손영호씨, 대파 농사를 하는 이수원씨는 삼국지의 ‘도원결의’처럼 의기투합한다. 서로 일이 있을 때마다 품앗이를 해주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봄날 파종 일이 덜 힘들었다. 이밖에 농사에 이골이 난 실력파들이 마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상옥과 하옥에는 500여호가 살고 있다. 이 중 농업인은 300여명, 이 중 귀농인도 100여명. 이들의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분석을 했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답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박오대씨와 강평석씨의 버섯, 박한수씨의 유정란, 이동희씨의 토마토, 원종진씨의 밭작물, 유정희씨의 장아찌, 노당 할매의 손두부, 김서방네 할매의 콩나물, 이태식씨의 노지 채소, 강원수씨의 사과, 김정열씨의 파슬리 등 60여농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회원에게 매번 다른 농작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아웃소싱해서 보내는 농작물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상옥과 하옥에서 나온 농작물이다. 명실상부한 제철 신토불이 농작물이었던 것이다.

“협동의 파워를 실감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죠. 전국에서 한 동네에서 무려 100가지 이상 농작물이 재배되는 곳은 모르긴 해도 상옥 밖에 없을 겁니다.”

물건을 받아올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즉시 값을 치른다. 지급 방식이 참 예스럽다.

“해당 농장에 가서 품앗이를 해주거나 비슷한 값어치의 농작물로 물물교환하기도 합니다. 가능한 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가 필요한 작물을 직접 수확해서 제가 직접 운전해서 보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게 꾸러미 정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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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대구 지역 회원들에게 직송되는 상옥 농작물로 구성된 참느리 꾸러미.
◆ 참느리 꾸러미를 분석해보니

지난 16일 80여명의 대구 지역 회원에게 준 꾸러미 농작물 리스트를 손 대표가 보여준다.

두부, 계란, 단호박, 쌈채5종, 느타리버섯가루, 토마토, 맛타리버섯, 옥수수, 울콩, 다시마, 비학산 소면.

낱개 포장된 12개 품목 10㎏. 주 1회, 월 4회 회원 가정으로 직송된다. 자칫 식재료가 지루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보낼 때마다 그의 형수인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정승은 교수의 조언을 얻는다. 다음 카페 ‘참느리 로컬푸드’에서는 관련 식재료를 갖고 해먹을 수 있는 요리에 대한 정보도 준다.

매주 두부와 계란, 콩나물은 기본으로 들어간다. 그외 제철 농작물을 번갈아가면서 보내준다. 요리를 해서 주는 게 아니고 도시의 주부들이 요리를 직접 해먹을 수 있는 기본 식재료를 다 대주는 것이다. 장 볼 시간이 절약되고 농작물의 원산지가 완전하게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농작물 사이에 노가리, 멸치꽈리고추조림, 짜박김치, 깻잎김치, 콩잎김치 등 반가공한 것도 보내준다. 나실 할매·양산 아지매 등은 장류를 취급한다. 겨울철에는 봄에 미리 장만해둔 취나물류와 시래기와 우거지 등 묵나물, 봄철에는 엄나무·두릅·다래순·민들레 등 각종 제철나물을 보내준다. 이밖에 산매실·팥·블루베리·오미자 등 제철과일도 보내며, 설과 한가위 때는 명절준비 음식재료도 마련된다. 한 마디로 상옥 사람보다 더 상옥의 먹을거리를 더 풍성하게 실시간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다.

“포스터 사진촬영을 위해 포항의 한 마트에서 우리와 같은 농작물을 직접 구입해 봤는데 무려 5만2천원선이었습니다. 회원이 되어 월 10만원만 내면 모두 네 번 꾸러미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착한 가격이라서 일석이조죠.”

뿐만 아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궁금해 하면 전화를 주면 자세하게 안내를 해준다. 바캉스 철에는 상옥 계곡에 몸을 담글 수도 있다. 고향 하나를 추가로 선물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회원들은 식사 대접도 받고 삶은 옥수수와 감자 등을 맛볼 수 있다. 농산물 집하장에서 농작물도 매우 저렴하게 구입해갈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상옥이 회원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회원이 된 지역의 모 도시락 업체 영양사였던 이모씨도 꾸러미 농작물을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상옥의 식재료가 일반 백화점에서 잘 보기 힘들 정도로 신선하고 건강한 것 같습니다.”


◆ 겨울에는 과메기 덕장도 개설할 예정

지난 5월10일부터 처음으로 참느리 로컬푸드 꾸러미가 대구 지역으로 배달됐다.

처음에는 2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몇배로 불어났다. 입소문이 난 것이다. 매주 화·수요일 해당 농산물을 가져와서 꾸러미로 묶고 다음날 손 대표가 오전 직접 냉동탑차를 몰고 대구로 간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직접 물건을 나눠준다. 상옥으로 돌아오면 밤 11시쯤.

그는 매번 편지를 올린다. 그리고 카네이션 같은 꽃도 보내준다. 회원들에겐 감동일 수밖에 없다.

회원이 된 한 의사는 “다른 농장에선 하루 이상이 걸리는 택배 시스템인데 여기는 직접 농사지은 농부가 직접 차를 몰고와 그날 농작물을 주니 더욱 좋은 상태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전국으로 확장할 생각은 별로 없다. 대구, 부산, 울산, 포항 등지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손 대표는 꾸러미 시스템이 하루 이상 걸리는 택배가 아니라, 당일 직접 회원에게 전달되는 직송시스템이 특장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부의 축도 도시에서 농촌으로 올 것 같아요. 요즘 돌아보면 억대 농군도 적잖은 것 같습니다. 잘못된 먹을거리로 인해 성인병에 노출된 도시인들이 많으니 갈수록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이에 촉발돼 귀농하는 인구도 더욱 증가할 것 같습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상옥의 농군으로 살다 갈 겁니다.”

손 대표는 올 겨울부터 과메기 덕장을 설치할 계획이다.

“상옥은 포항 바닷가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인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올겨울 쌈배추와 함께 상옥 청어 과메기 맛을 보세요. 물론 초장도 보낼 겁니다. ”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상옥슬로우시티= 상옥슬로우시티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주민의 90%인 170여가구가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제초제 없는 마을이다. 특히 친환경농업을 관광상품과 연계시키는 데 주력해온 박승호 포항시장의 도움이 컸다. 현재 포항시가 75억원을 집중투자해 현재 마을전체가 친환경농법을 실천 중이다. 상옥슬로우시티추진위원회(위원장 손대익)는 지난 4일 상옥리 복지회관에서 ‘제1회 상옥토마토한마당잔치’를 개최했을 정도로 상옥 토마토는 알아준다. 겨울에는 상옥사과가 인기다. 고랭지 토마토의 경우 90여농가가 40여㏊의 면적에서 약 3천500t을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등 매년 40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이밖에 방아·콜라비·블루베리·케일·피망 등과 같은 특용작물 인프라가 엄청 탄탄하다. 회원문의 (054)261-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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