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577 프로젝트·링컨:뱀파이어 헌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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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31   |  발행일 2012-08-31 제40면   |  수정 2012-08-31
[신작 對 신작] 577 프로젝트·링컨:뱀파이어 헌터


★ 577 프로젝트

22일간 하정우·공효진 등 16인의 예측불허 국토대장정

‘577 프로젝트’의 탄생은 하정우의 말 한 마디로 시작됐다. 2011년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시상자이자 남우주연상 후보인 하정우는 “2년 연속 수상할 경우 대국민 공약을 걸어달라”는 하지원의 돌발질문에 “수상하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을 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2초 후 이는 곧 현실이 되었다. 남아일언중천금, 얼떨결에 뱉은 말이지만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하정우는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 국토대장정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우선 기나긴 여정을 함께할 동지부터 끌어 모았다.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이는 ‘러브픽션’에서 호흡을 맞췄던 공효진. “쉬엄쉬엄 산책하듯 걷는 거야~”라는 감언이설로 공효진의 참여를 이끌어낸 하정우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하정우의 오른팔로 등장해 단숨에 주목을 받은 김성균과 조직원 역을 맡은 한성천, ‘러브픽션’에서 공효진의 전 남편 역을 맡은 강신철을 포함, 혈연·지연·학연 등을 동원하거나 오디션을 통해 총 16명의 원정대를 꾸렸다.

이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 30㎞, 평균 8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고생길에 동참했다. 하정우는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16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걷는 동안 공효진을 포함한 후배들을 보며 그 사람들에게 배울 점을 찾고 싶었다. 내가 배우를 처음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와 선배로서 그들에게 조언도 해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보고 싶었다”고 숨겨진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577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그 22일간의 여정을 그들의 땀과 열정으로 빼곡히 채워 간다. 즉흥적으로 탄생된 만큼 정해진 각본은 없지만 다양한 경력과 개성, 충만한 끼를 지닌 원정대원들과 그들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인간극장’으로 방영돼도 충분할 만큼 차고 넘친다. 그야말로 날 것의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그 중심에 있는 건 공효진과 이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하정우다. 이 순간만큼은 스타이길 포기한 두 사람은 꾸밈없는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 민낯은 기본이고 수더분한 차림새로 여정 중에 만난 동네 주민들과도 함께 어울리는 소탈한 모습은 친근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와 감동은 16명의 원정대원들이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있다. 하정우와 공효진이 일종의 책임감으로 이 여정을 시작했다면, 대다수 신인·단역배우들로 구성된 원정대원에게 국토대장정은 꼭 이겨내야할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의 낙오자를 예상했던 제작진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들은 체력이 고갈될수록 오히려 강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여정에는 이동 규칙, 복장, 숙식 등 생활 규칙은 물론이고 배변, 낙오 등에 이르는 민감한 내용까지 포함된 규칙이 있고, 이를 어길 시 가차없는 탈락과 벌칙도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탈락의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한 막내 이승하의 눈물의 사과와 알 파치노 뺨치는 연기력으로 대원 모두를 울음바다로 빠뜨려버린 한성천의 반전 드라마는 고된 여정에서만 맛볼 수 있는 리얼한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막간을 이용한 하정우의 코믹 하숙쇼, 각각의 배우들이 숨김없이 속마음을 표현하는 모노드라마, 고해성사, 노골적인 CF광고 등은 엉뚱하고 재기 발랄하다.

“아까워서 다 살리면 한도 끝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이근우 감독은 “상시 촬영 중인 카메라가 5대 정도였고, 숙소에서도 계속해서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을 전제하지 않았다면 영화로서 가치가 없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심각하거나 건조하기보다는 재미를 담아보자는 의도에서 탄생한 재미있는 영화”라고 설명한 하정우는 “시즌 2를 만든다면, 또 다시 공효진씨와 함께할 생각이다. 시즌 1을 함께한 감독, 배우, 스태프도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말로 후속작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다.

[신작 對 신작] 577 프로젝트·링컨:뱀파이어 헌터


★ 링컨:뱀파이어 헌터

링컨 대통령이 도끼를 휘두르는 뱀파이어 헌터라고?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탄생된 팩션은 이제 대중에게 친숙하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서 보듯 팩션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은 물론, 그 자체로 매력적인 장르가 됐다.

할리우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팩션의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간파한 할리우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이 도끼를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는 ‘뱀파이어 헌터’였다는 발칙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링컨: 뱀파이어 헌터’의 경우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괴한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링컨은 복수를 다짐하며 성장한다. 하지만 청년이 된 링컨(벤자민 워커)은 살인범에게 복수를 하려다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위기의 순간 헨리(도미닉 쿠퍼)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링컨은 그를 통해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뱀파이어 헌터로 거듭난다. 이후 링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라는 헨리의 미션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첫눈에 반한 메리(메리 엘리자베스 원스티드)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쌓아간다. 하지만 뱀파이어 조직의 거대한 야심을 알아 챈 링컨은 다시 도끼를 들고 전쟁터로 향한다.

‘링컨: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는 링컨의 업적인 흑인 노예제도 폐지와 이 문제로 야기된 남북전쟁의 발발을 독특한 가설로 설정한다. 그리고 미국의 상징적 아이콘인 링컨 이야기(팩트)에 뱀파이어 소재(판타지)를 절묘하게 조합시켰다. 바로 남부의 대지주들은 뱀파이어이며 노예를 자신들의 식량으로 조달하기 위해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식상할 정도로 흔해빠진 뱀파이어의 등장이지만 뱀파이어를 단순히 볼거리를 위한 장치가 아닌,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전개시켜 나가기 위한 메타포(은유)로 활용한 건 그런 점에서 주효했다.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공포심이 퍼져 나가게 되고, 뱀파이어는 이를 은유하는 역할로 기능하게 된 것. 이야기의 논리까지 탄탄히 구축된 만큼 이제 남은 건 이를 채워갈 그림이다.

이 지점에서 기대감이 앞선 건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인 팀 버튼과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연출을 맡은 베크맘베토브 감독은 ‘나이트 워치’ ‘원티드’를 통해 흥행성과 감각적인 액션에 대한 남다른 연출력을 인정받은 주인공.

액션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부순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은 이번에도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화끈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펼쳐보였다. 그들의 등장에 원작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까지 직접 각색을 담당했으니 영화적 재미는 한층 깊고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링컨이 역사가 기억하는 근엄한 대통령이 아닌, 일당백의 전사에 가깝게 그려진 건 그런 이유다. 게다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그의 실제 삶도 영웅의 스토리로 덧입혀져 선악의 대결구도를 형성시키는 슈퍼히어로 신화로 재탄생했다.

링컨은 자신의 상징적 무기인 도끼를 이용해 매번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숨가쁜 액션을 이어가고, 뱀파이어 조직과의 대규모 접전장면에선 화려하고 압도적인 스케일이 돋보인다. 이 영화를 통해 스타일리시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던 베크맘베토브 감독에게 3D는 구세주와 같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2D에서 3D로 변환하는 쪽을 택했다. 그가 원하는 창의적이며 미학적인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조작이 가능한 2D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덕분에 나무 파편과 분진들이 흩날리는 세밀한 묘사와 액션의 리얼함과 화려함이 더해진 스펙터클한 비주얼은 더욱 돋보인다. 그 중 역동적인 편집, 적절한 슬로 모션을 활용해 완성된 돌진하는 말 위에서 펼쳐지는 호스 체이싱 액션과 화염에 휩싸인 채 거침없이 질주하는 증기기관차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등은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액션감각이 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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