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로우리스:나쁜 영웅들·조조:황제의 반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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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0-19   |  발행일 2012-10-19 제40면   |  수정 2012-10-19
[신작 對 신작] 로우리스:나쁜 영웅들·조조:황제의 반란

★ 로우리스:나쁜 영웅들

무법의 시대 밀주 사업하는 ‘나쁜 삼형제’의 무용담

금주령이 내려진 1931년 미국 버니지아주 프랭클린 카운티. 이곳에는 밀주를 만들어 이름을 떨치고 있는 본두란 삼형제가 살고 있다. 1차대전 때 부대 전체가 몰사했지만 혼자 살아남은 첫째 하워드(제이슨 클락)와 강한 정신력으로 스페인 독감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둘째 포레스트(톰 하디), 그리고 불사조로 통하는 두 형들과 달리 돼지 잡는 모습도 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막내 잭(샤이어 라버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1929년부터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대다수 미국인이 무기력한 삶을 근근이 이어갈 때, 밀주로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 시카고 출신의 사디스트 보안관 찰리(가이 피어스)가 마을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이하 ‘로우리스’)은 제목 그대로, 법보다 주먹과 총이 우선시됐던 무법 시대 나쁜 영웅들의 이야기이면서, 본두란 삼형제와 찰리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다룬다.

찰리는 거액의 상납금을 요구하며 형제의 가업인 밀주 사업을 위협한다. 하지만 철없는 맏형 하워드를 대신해 밀주 판매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포레스트는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찰리는 그들을 철저하게 경멸하기로 마음먹는다.

‘로우리스’는 잭 본두란의 손자인 매트 본두란이 쓴 실화 소설에 기초했다. 소설은 본두란 삼형제의 실화에 당시의 굵직한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포개놓았다. 사실 금주법이 발효된 시기에는 밀주·밀수·매음·도박 등의 불법산업으로 순식간에 돈을 번 암흑계 조직들이 많이 생겨났고, 시카고를 중심으로 범죄단을 이끌었던 알 카포네는 그 중 대표적이었다. 당시의 범죄조직들이 대도시를 무대로 그들의 사업영역을 확장시켜 나갔지만 본두란 삼형제는 자신들의 고향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법이 통하지 않는 금주법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라고 포레스트는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수완이 남다른 잭은 형들과 생각이 다르다. 자신들이 만든 질 좋은 밀주를 좀 더 높은 가격에 대량으로 판매하고 싶었던 것. 결국 형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던 잭은 위기를 기회 삼아 전설의 갱스터 플로이드 배너(게리 올드만)와 손을 잡는데 성공한다. 영화는 이후 공권력에 대항해 밀주 사업을 키우는 본두란 삼형제의 무용담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과정에서 무쇠 같던 포레스트를 무장해제시킨 매기(제시카 차스테인)와의 투박하지만 진심어린 사랑과 잭과 베르사(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갱스터 무비로서의 치열함보다 본두란 삼형제의 성장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찰리는 그런 그들의 소소한 일상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장치적 인물로 기능한다. 그는 툭하면 법을 들이대며 본두란 삼형제를 심리적·물리적으로 압박해 나간다. 결국 잭을 흠씬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자라 두 사내를 사주해 포레스트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 일로 죽은 줄 알았던 포레스트는 피를 철철 흘린 채 눈보라를 헤치고 혼자 32㎞를 걸어 병원으로 가 치료받고 또 살아난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로우리스’가 들려주는 본두란 삼형제의 무용담은 요란스럽지 않게 갱스터 무비로서의 소소한 재미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원작 소설의 인물을 완벽히 체화시킨 배우들이다.

마초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약해지는 포레스트를 연기한 톰 하디에 대해 가이 피어스는 “그의 연기는 마치 거대한 산 같다. 그 모습이 존재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거대한 산”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마따나 톰 하디는 강인한 면모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살려냄으로써 포레스트를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살아숨쉬게 만들었다. 또 본두란 삼형제를 벌레 보듯 하는 찰리 역의 가이 피어스 역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가이 피어스는 찰리가 얼마나 까다로운 나르시시스트인지 여실히 보여준 동시에 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럽고 역겨운지 완벽하게 드러냈다”는 존 힐코트 감독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인정한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두 배우의 열연을 보고 싶다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신작 對 신작] 로우리스:나쁜 영웅들·조조:황제의 반란


★ 조조:황제의 반란

암살자에 맞서 외로운 삶 살았던 말년의 조조 그려

‘조조: 황제의 반란’(이하 ‘조조’)은 중국 삼국시대 위왕 조조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기류는 불세출의 영웅으로서의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서사극의 모습이 아닌,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노쇠한 조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경은 기원전 220년. 무능한 황제 한헌제(소유붕)로 인해 한씨 왕조는 몰락할 위기에 처하지만 시대의 권력을 가진 조조(주윤발)의 충성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하지만 ‘네 개의 별이 하나가 되면 새 왕조가 탄생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두려워하는 한헌제(소유붕)는 조조(주윤발)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단을 비밀리에 조직한다. 전쟁 중에 고아로 남은 아이들을 데려다 10년 동안 살인병기로 만들어 온 것. 그 중 선발된 영저(유역비)와 목순(다마키 히로시)은 각각 궁녀와 내시의 신분으로, 조조가 머물고 있는 궁궐인 동작대로 잠입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미스터리한 역사적 사실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했듯, ‘조조’ 역시 천하의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노리는 암살자들에 맞서 외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의 말년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간다.

그 무대가 되고 있는 ‘동작대’(銅雀臺)는 중국 후한 건안 15년 서북쪽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궁궐로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장소다. 영화에선 조조가 관우를 패배시키고 돌아오는 첫 장면에서부터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제작진은 6개월에 걸친 자료조사와 치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동작대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성 주위를 둘러싸고 유유히 흐르는 주장강 수면 위로 높이 솟아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여섯 대의 감시탑과 본관과 별채를 잇는 복층 구조의 구름다리까지 조림산 감독이 “조조가 처음 동작대를 보고 느낀 감정을 관객들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영화는 바로 그 동작대를 무너뜨리려는 황실세력과 조조의 대결을 다룬다. 이후 동작대는 궁궐이라는 개념을 넘어 무수한 음모와 술책이 도사리고 있는 권력 쟁탈전의 무대로 기능한다.

이 영화는 2010년 조조의 무덤에서 발굴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인의 유골이 ‘과연 누구의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어릴 적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은 미녀 자객과 암살단이 있었다는 흥미진진한 설정을 더했고, 그 과정에서 조조의 진짜 적이 누구였는지 그 실체를 밝혀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삼국지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의 스펙터클한 전쟁신과 그 위용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 부분에서 다소 실망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조조의 죽음 뒤에 감춰진 다양한 인물들의 강렬한 욕망과 의지, 그리고 사랑의 정점으로 치닫는 애증의 과정은 마치 가슴 저미는 안타깝고 슬픈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조조가 평소 경외심을 가졌던 관우를 향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도 흥미롭다. 형주를 수비하던 관우는 손권의 공격을 받아 패하고 그의 장수 여몽에게 잡혀 참수를 당했다. 조조가 손권이 보내온 관우의 머리에 향나무 몸체를 만들어 연결하고 왕후의 예로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 것은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다. 극 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무기고에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정성스럽게 보관하며 “신은 내가 아닌 관우, 그대였소”라며 고백하는 등 그토록 원했지만 죽어서야 가질 수 있었던 관우와의 질긴 인연을 보여준다.

주윤발이 조조를 연기한 것은 그런 면에서 신선했다. 덕분에 권모술수에 능한 전형적인 간신의 표본으로 그려져왔던 조조는 주윤발로 인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영웅의 풍모를 갖추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조조는 내게 하나의 돌파구였다”는 주윤발의 말처럼 그는 대륙을 호령했던 영웅적 모습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졌던 내적 갈등과 외로움의 야누스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삼국지 고전을 재해석한 또 다른 작품의 등장이 내심 기대되는 이유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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