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에세이] 아브라카다브라, 그녀!

  • 입력 2012-12-10   |  발행일 2012-12-10 제29면   |  수정 2012-12-10
[월요에세이] 아브라카다브라, 그녀!
일러스트/그래픽디자인팀

내가 아는 그녀는 참 지독하다. 지독하게 자기를 낮추고 내려놓는다. 내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주고, 한 끼라도 챙겨 먹이기 위해 성심으로 애쓴다. 그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젖은 손이 마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를 위해 기꺼이 일하며, 흡족하지 않으면 자신의 잠이라도 줄인다. 내가 아는 그녀의 셈에는 복잡한 계산이 들어 있지 않다. 그저 나누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다. 한 모임에서 삼십 명이 족히 먹고도 남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이고 지고 온 그녀를 보았다. 장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귀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밤새 만들었을 음식, 허투루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성껏 만든 그 음식은 내게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일곱 아이의 어머니다. 자그마치 아홉 식구의 밥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닦고 입히고 재운다. 아홉 개의 별을 날마다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놓는 그녀의 노동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녀는 끊임없는 노동으로 자신을 연단시키는 수행자처럼 보인다. 제 몸 하나 굴려서 만인이 행복하다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아 만인의 행복을 가져오게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켜 노동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2012년은 그런 그녀에게 많은 슬픔과 불행이 몰아닥친 한 해였다. 경제적 압박은 태생적인 부지런함으로 어찌어찌 버텨본다지만, 마주쳐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고통에 대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불행’과 맞닥뜨렸고, 그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토록 대학에 가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도 동생은 대학에 보내고, 그 동생이 늦게나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기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동생과 어린 조카를 한꺼번에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울부짖고 버둥거릴 여지도 주지 않는 삶의 격랑에 떠밀려 아홉 식구의 안주인 노릇을 놓치지 않고 꾸역꾸역 해내야 했던 그녀, 아내와 자식을 잃은 제부의 슬픔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처형 노릇이며, 자식을 앞세운 노모의 아픔을 보듬어야 하는 딸 노릇에다가 여전히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나누어주려는 오병이어의 나눔이 역할까지 참으로 꿋꿋하게 해낸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이즘 심상치가 않다.

울먹거리는 그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우울의 강으로 발목을 슬며시 들여놓으려는 그녀를 자주 목격한다. 대신 울 수도, 아플 수도, 우울할 수도 없는 그녀 앞에 놓인 삶의 신산함에 걱정이 앞서지만, 나로서는 그녀를 웃게 할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월요에세이] 아브라카다브라, 그녀!

다만, 아브라카다브라!

으르렁거렸던 2012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앞으로는 다 잘될 거라고, 자신들이 가진 좋은 기운을 덜어내어 한 움큼씩 기꺼이 보내줄 사람들이 당신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그러니 다가올 2013년이 어찌 잘 풀려오지 않겠냐고. 당신을 믿는 만큼 걱정하고, 걱정하는 만큼 기도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곁들여 나의 주문도 함께 바친다.

아브라카다브라, 우리는 천성이 맑고 깊은 그녀를 아끼고 존경한다. 아브라카다브라, 그녀가 활기차고 건강하길, 그녀 앞에 놓인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길, 더 활짝 웃기를. 아브라카다브라, 내년엔 지금보다 더 예뻐지길!

원태경<속보는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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