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에세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입력 2012-12-24   |  발행일 2012-12-24 제29면   |  수정 2012-12-24
[월요에세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안정인 <문학박사·대학강사>
[월요에세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일러스트/그래픽디자인팀

아침이면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어 조간신문을 들여온다. “밤새 안녕?” 나는 세상과 인사를 나눈다. “신문 읽기는 근대인의 아침 기도로 간주될 정도로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습관화된 우리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위한 것”이라는 헤겔의 말처럼 절대자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기도처럼 우리는 또 이렇게 나와 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오늘의 헤드라인에서부터 신문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동네 상가의 광고지까지 가볍게 훑으며 그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나의 일상을 점검한다.

텔레비전이 뉴스 확산의 일차적 출처가 된 이후 일간신문은 점점 더 주간지와 비슷하게 되었고 버라이어티, 풍습, 정치, 생활과 관계된 소문들에 대한 논의와 공연 예술계에 대한 관심에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머리 없는 정보채널 인터넷 매체까지 실로 우리는 무성한 정보와 말의 덤불 속에 살고 있다. 건강한 비판의식과 예리하고 섬세한 촉수로 ‘사실’ 너머를 보지 않으면 자칫 미혹되기 쉽다. 문득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엄격하고도 신빙성 있는 원천을 어디에서 얻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거울처럼 각자의 나르시시즘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열려 있는 것인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일레인 엔 아론은 그녀의 ‘사랑받을 권리’에서 ‘사랑’과 ‘권력’ 두 개의 축이 일상에서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애정·관심·사랑을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며, 또한 동시에 존경·영향력·권력 등을 얻고자 애쓰거나 자기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하루를 보낸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모든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사랑’의 ‘관계 맺기’와 ‘권력’의 ‘순위 매기기’ 사이에서 조율과정의 실체를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모두에게는 이따금씩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과도 같은 내면 깊숙이 잠재된 ‘못난 나’가 있다. 스스로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어 불안해하거나, 우울해지거나, 지나치게 수줍어 하게 하여 위축시키는 내 속의 ‘못난 나’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기 쉽고, 그로 인해 형성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는 우리의 건강한 대인관계를 방해하고 많은 이를 고통받게 하는 뿌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못난 나’를 치유하는 방법은 ‘순위 매기기’에서 ‘관계 맺기’로 스위치를 전환하는 것이며, 서로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낮고도 수평적인 만남에서 우리들의 훈훈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는 피어나게 된다.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 간의 공감력을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으로 세분화된 현대 조직사회에서 고립된 각자를 연결짓는 의사소통방법을 말한다. 혼자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말이 아니라, 서로 간을 이어주는 진정성 있는 육성의 이야기가 아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공허한 말은 잠시 부유하다 곧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지만, 서로에게 가 닿은 공감력 있는 말은 우리의 서사로 꽃피우게 된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씨줄과 날줄로 엮인 너와 나의 이야기는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지탱해주는 탄탄한 그물망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듯이 지금의 사람이 가버려도, 현재의 모든 형태의 이름이 바뀌어도 유구한 시간의 허공 위에 함께 엮은 우리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듯이 또 그렇게 앞으로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어갈 것이다.

임진년 한 해는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희망적인 공약들로 온 국민이 함께 꿈을 꾸었던 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미래 사회에 대한 지도자들의 비전은 아주 중요하고 희망을 준다. 하지만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많다. 그동안 ‘월요에세이’를 통해 나를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살 수 있게 해 준 많은 이에게, 또한 내일의 꿈을 안고 ‘현재, 여기’를 살아내고 있는 나를 닮은 많은 못난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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