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문라이즈 킹덤·헨리스 크라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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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01   |  발행일 2013-02-01 제40면   |  수정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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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라이즈 킹덤 : 열두살 동갑내기의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도피 행각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의 웨스 앤더슨 감독이 ‘판타스틱 MR. 폭스’ 이후 3년 만에 신작 ‘문라이즈 킹덤’으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건 전작을 통해 몸은 어른이지만 내면은 어리숙하고 철이 없는 키덜트 캐릭터들을 선보이며 특유의 웃음을 선사했던 그가 이번에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친구나 가족과 소통하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12세 샘(자레드 길먼)과 수지(카라 헤이워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교회 학예발표회에서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첫눈에 반한 카키 스카우트 대원 샘과 가족과 학교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수지는 편지를 교환하며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사이가 된다. 그런 두 아이가 자신들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각각 캠핑장과 집을 탈출한다. 샘과 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과 수지의 가족은 그들을 찾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친구들은 샘과 수지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어른들 몰래 탈출 작전에 동참한다.

웨스 앤더슨은 문라이즈 킹덤을 통해 때묻지 않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로 다시 한번 관객들을 초대한다. 비밀스럽고도 마법 같은 곳이어서 ‘달이 뜨는 왕국’(문라이즈 킹덤)이라고 정한 영화의 제목처럼 문라이즈 킹덤은 첫사랑을 만들어가는 마법같은 한여름 밤의 이야기다. 다즐링 주식회사를 제작할 때부터 문라이즈 킹덤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획했다는 웨스 앤더슨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대의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무대로 삼은 건 1965년 여름의 뉴펜잔스 섬이다. 이 섬을 무대로 샘과 수지의 사랑을 위한 도피행각은 시작된다.

이를 위해 샘은 카키 스카우트 캠핑장비를 꼼꼼히 챙겨왔고, 수지는 동생의 레코드 플레이어와 자신의 완소 동화책들을 몰래 가져왔다. 당장 캠핑에 필요하다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을 가져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했던 것. 그래도 샘의 스카우트 소품은 은신처를 찾기 위한 모험의 도구로, 수지의 책과 음악은 둘의 사랑을 완벽하게 이어주는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신기한 건 그런 두 아이의 일탈에서 오래전 잃어버린 첫사랑의 원형들이 떠올려진다는 점이다.

샘과 수지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아역 주인공들이 그렇듯 아이보다는 어른에 가깝다.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던 샘은 한눈에 자신의 소울메이트 수지를 알아보고, 수지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알아봐 준 샘과 사랑에 빠진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다. 문라이즈 킹덤은 소년소녀의 성장담보다 어른들의 잃어버린 사랑에 천착한 영화다. 다즐링 주식회사에 이어 웨스 앤더슨과 협업을 이룬 각본가 로만 코폴라는 심각한 철학적 테제들을 동심과 우화로 재기발랄하게 완성시키는 능력을 또 한번 구체화시켰다. 덕분에 웨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뛰어난 미적 감성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유감없이 선보일 수 있었다.

공간의 미장센, 의상, 카메라워크 등 매 장면마다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화면비가 돋보이는 촬영기법은 이번에도 눈부시다. 60년대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제작진과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영화 속 소품을 채워나갔을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만큼 웨스 앤더슨이 창조한 세상은 아름답고 완벽하며 강박적이다. 그런 그를 두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웨스 앤더슨은 사람 간의 단순한 즐거움과 상호작용을 아주 능숙하고 풍부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평했다.

문라이즈 킹덤이 더욱 흥미로운 건 할리우드의 대표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점. 브루스 윌리스가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따뜻하고 자상한 성격의 경찰로 등장하는가 하면, 에드워드 노튼은 소심하지만 책임감 강한 스카우트 대장 역으로 엉뚱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 딸의 가출로 혼란을 겪는 부부로 출연한 빌 머레이와 프랜시스 맥도먼드, 냉혹한 사회복지국 직원으로 출연한 틸다 스윈튼 등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발군은 샘과 수지를 연기한 자레드 길먼과 카라 헤이워드다. 두 사람은 대배우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문라이즈 킹덤을 아름다운 첫사랑 영화로 탈바꿈시키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성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복고풍으로 재현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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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스 크라임 : 은행털이 범죄물을 가장한 따뜻하고 코믹한 로맨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야간 매표원으로 일하는 헨리(키아누 리브스)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남자다. 꿈도 야망도 아내와의 애정마저도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그는 친구들의 꾐에 빠져 은행 강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3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 사이 바람나 떠나버린 아내를 위해 오히려 행복까지 빌어준다. 그런 그가 출소 후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은행으로 통하는 땅굴이 있다는 80년전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한 그가 이미 죗값도 치렀으니 진짜로 은행을 털어보기로 한 것. 조력자로 교도소에서 만난 전설적인 사기꾼 맥스(제임스 칸)를 끌어들인다. 맥스는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헨리에게 “진짜 범죄는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충고까지 해준 멘토같은 존재. 한편 헨리는 은행 금고와 땅굴로 연결돼 있는 극단의 무명 여배우 줄리(베라 파미가)와도 사랑을 키워간다. 줄리에 의해 연극배우로 거듭난 헨리는 이후 연극 배우와 은행 털이범으로의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헨리스 크라임’은 범죄와 코미디, 로맨스가 적절히 조합된 기이하고 독특한 영화다. 하지만 치밀하게 전개되는 범죄물의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범죄물이라는 설정은 일종의 낚시다. 그렇다고 영 시원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규모는 소박하고 정체성은 모호하지만 나름대로 참신한 스토리와 흥미로운 캐릭터 덕에 시종 호기심을 유발한다. 무고한 자신을 전과자로 만든 은행을 다시 털겠다는 허무맹랑함과 뒤늦게 배우의 자질을 발견한 헨리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특히나 그렇다. 극 중 소개되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 영화의 이야기와 맞물린 이 연극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감상법을 제공한다. 과거의 파멸과 현재의 재개에 관한 벚꽃동산의 주제는 무엇보다 헨리의 삶과 유사하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삶과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을 탐색하겠다고 결심한 남성이 진정한 사랑과 꿈을 찾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는 점에서다.

영화는 범죄물과 연극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설정과 구도로 대비의 느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대립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게 만드는 대위법 형식을 갖췄다. 범죄를 계획하는 중에 줄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범죄도 점점 더 절정에 이르게 된다는 식이다. 물론 헨리스 크라임은 범죄행각에는 별 관심이 없는 영화다. 때문에 범죄물이 응당 갖춰야 할 스릴러적 긴강감은 부재하고,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이들의 은행털이 과정은 소박하고 오히려 실소를 자아낸다. 은행털이가 맥거핀으로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신 영화는 헨리와 줄리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과정에서 은행털이는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헨리가 사랑과 행복이라는 꿈을 새롭게 꾸기 시작하는 과정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됐다.

뭔가 허술하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접근 방식이지만 그래도 제법 맛깔스럽다. 이는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는 세 배우 덕이다. 먼저 착하고 어수룩한 남자로 돌아온 키아누 리브스는 섬세한 연기력으로 비현실적인 모험을 경험하게 되는 헨리의 심리적 변화를 제대로 포착해냈다. 그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줄리 역의 베라 파미가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덕분에 두 사람이 극 중 선보인 체호프의 연극 벚꽃동산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건 할리우드의 레전드로 통하는 원로배우 제임스 칸이다. ‘대부’ ‘뜨거운 우정’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깊은 연기 내공으로 영화의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했다.

헨리스 크라임은 TV광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친 말콤 벤빌의 ‘44인치 가슴’에 이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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