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유천하-경북의 술을 찾아서 .2] 상주 ‘은자골탁배기’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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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15   |  발행일 2013-02-15 제39면   |  수정 2013-10-21
무료시음 가장 많이 하는 막걸리…적십자사에 성금 내는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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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원 대표가 발효실에서 익어가는 막걸리의 맛을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은척양조장의 발효실(작은 사진). 막걸리의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벽 속을 왕겨로 채웠다. 10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건물의 대부분을 개축하였으나, 이 사입실만은 손대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발효실로 사용하고 있다.
‘사용 전 사용 후. 수술 전 수술 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진정성이 의심되지만 자신감이 배어있는 듯하다. 일단 한 번 해보라는, 경험해 보고 말하라는 ‘배짱광고’인 셈. 그러나 효과를 단기간에 판단하기 어렵다거나, 비용이 많이 들고, 한 번 경험하면 되물리기 어려운 위험부담이 있을 경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음식의 경우는 어떨까. 최소한 몸에 해롭지 않고 비싸지 않으면 한 번의 시음이나 시식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음식이 입에 맞는다면 그건 그야말로 행운. 일단 한 번 맛을 보라는 ‘사용 전 사용 후’식의 배짱마케팅에 진정성이 들어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속리산 최상급 청정수와
상주지역 햅쌀로 빚어…
품질인증·우수농산물
적십자 등 3개마크 부착

쓰고 달고 신 맛 조화
멍게향 같은 뒷맛 일품
텁텁지않고 트림 안 나와
두통 등 뒤끝도 없어

2007년 생막걸리 최초
대형마트 납품 성과…
통밀막걸리 특허 이어
누룩 자체생산 추진중


◆ 무료시음 마케팅

은자골탁배기(대표 임주원·상주시 은척면 봉중리)는 무료 시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은 막걸리다. 임주원 대표는 주최측이 원할 경우 상주에서 치러지는 웬만한 행사에는 은자골탁배기 시음부스를 운영한다. 상주뿐만 아니다. 인근 구미·안동은 물론, 대구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도 참가자들에게 은자골탁배기 맛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이 있다. 우선 행사가 순수한 일반 주민 행사여야 할 것. 그리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행사여야 할 것. 특정인이 특정 목적을 위해 벌이는 행사는 그 규모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임 대표 자신의 시간이 허락할 때여야 한다. 그는 시음하는 막걸리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떠서 준다. 시음행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없다.

“고향의 정을 나누는 데 막걸리만큼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소중한 정을 나누는데 제가 손수 잔을 드리는 게 도리지요.”

임 대표의 말 속에는 맛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누구한테든 ‘내가 만든 막걸리다. 일단 한 번 마셔봐라. 이 정도면 누구한테든 권할 수 있는 맛 아니냐’는 뜻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놓고 막걸리를 건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주가들이 평하는 은자골탁배기의 맛은 어떨까.

우선 은자골탁배기를 입 가까이 가져가면 코가 먼저 향기를 맡는다. 그 향기를 음미하면 누룩향과 효모가 당분으로 알코올을 만들어 낼 때 생기는 향이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솜이불을 두른 채 따뜻한 아랫목에 앉혀 놓았던 술독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다. 혀로는 적당한 쓴맛과 단맛, 신맛을 볼 수 있다. 꿀꺽 꿀꺽 한 잔을 넘기면 간지러운 탄산기포와 함께 옅은 멍게 향이 비치는 듯 뒷맛이 개운하다. 막걸리의 비호감 요소인 텁텁한 맛은 없다. 트림이나 두통 때문에 성가실 일도 없다.


◆ 맛의 비밀

이런 은자골탁배기의 맛은 어디에서 나올까.

“물입니다. 막걸리는 물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양조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물 하나는 최상급을 사용한다고 자부합니다.”

은자골탁배기를 만드는 은척양조장은 속리산의 말단 봉우리인 성주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속리산은 곳곳에서 맑고 몸에 이로운 물이 솟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은척양조장 주변에는 지하수를 오염시킬 만한 공장이나 시설이 없다. 은척양조장은 그곳에 102m 길이의 파이프를 박고 맑은 물을 길어 막걸리를 빚는다.

기독교 신자인 임 대표는 시아버지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부터 했다. 당시는 양조장 대부분이 통폐합되는 등 크게 위축된데다 ‘은척’처럼 통합 대상도 되지 못한 산골의 양조장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신앙이 독실한 그는 자신이 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7년이었어요. 이웃에 있는 버섯 재배사 현장에 왔던 경북대 미생물학과 교수가 우리 양조장에 들러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가 막걸리를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한 물이라고 했어요.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며 ‘조상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고, 때로는 끼니가 되기도 한 음식이므로 더 연구하고 개량해 좋은 막걸리를 공급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교수의 말은 막걸리에 대한 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 교수의 말을 듣고 막걸리에 대한 생각을 고쳐 먹은 임 대표는 막걸리를 개량하는 데 물두하기 시작한다. 농촌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시 사람들의 입에도 맞는 막걸리를 만들어 내는 게 목표였다. 당시 막걸리는 농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있어서 도시인을 공략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 이를 위해 트림과 깔끔치 않은 뒤끝, 숙취시의 두통, 포만감 등을 없애야 했다.

2년 동안 작은 항아리에 다양한 방법으로 실습용 막걸리를 담갔다. 이를 통해 트림과 두통은 발효가 덜 되거나 발효과정에서 잡균이 섞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터득한다. 유통기한도 20일로 늘리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막걸리를 향한 그녀의 열정은 수없이 많은 술독을 비우게 했다. 은자골탁배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 3개의 특별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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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은척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은자골탁배기. 라벨에는 ‘술 품질인증’ ‘우수농산물’ ‘적십자 하트’ 등 3개의 마크가 부착돼 있다.

은자골탁배기 라벨에는 3개의 마크가 첨부돼 있다. ‘국가지정 가-57호 술 품질인증’의 녹색 마크, 적십자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의미의 붉은 색 하트 마크, 그리고 경북도의 ‘우수 농산물 마크’.

은자골탁배기는 2007년 생막걸리로는 처음으로 대형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경북의 12개 이마트점 납품을 시작으로, 2009년부터는 전국의 매장에 진열되고 있다. 대리점도 상주시내는 물론 구미시를 비롯한 경북 주요 도시와 대구·대전 등지에 설치돼 있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는 정기적으로 택배를 통해 막걸리를 납품하고 있다. 현재 하루 500~800상자(상자당 0.75ℓ들이 20병)가 전국으로 공급되고 있다.

작은 산골 양조장인 은척 양조장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 내놓아도 자신있는 맛과 철저한 위생관리, 그리고 봉사정신의 힘 덕이다.

“우리는 깨끗한 물과 상주에서 생산되는 햅쌀로 막걸리를 빚는다는 원칙은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수질검사기관에 의뢰, 정기적으로 물의 성분을 분석하고 올해처럼 쌀값이 상승해도 지역의 햅쌀을 사용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햅쌀을 사용하는데 따른 원가 상승으로 식당에 공급되는 막걸리의 납품가가 다른 업체보다 높아 경쟁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원칙은 철저히 지킨다는 것. 이 때문에 품질인증 마크와 우수농산물 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됐다.

막걸리의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임 대표는 자신에게 두 가지 숙제를 부여했다. 통밀막걸리의 양산과 자체누룩 생산. 은척양조장은 2009년 우리밀 통밀막걸리를 개발했다. 이듬해부터 시판할 계획으로 만들어낸 통밀막걸리는 애주가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우리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운데다, 발효가 안정적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 올초에야 특허를 받았다.

임 대표는 우리밀 통밀막걸리를 섬유소가 많아 장에 좋은 건강 막걸리라 판단, 시설을 갖추는데 비용이 들더라도 올해부터는 양산할 욕심을 갖고 있다.

“양조장에서 직접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는 곳은 부산의 금정산 양조장밖에 없을 겁니다. 누룩을 제대로 띄우려면 많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개 업체로부터 공급받아서 사용합니다. 완전한 지역 농산물로 막걸리를 만들려면 누룩도 자체 생산하고 우리밀과 지역 쌀을 원료로 써야 합니다.”

오랫동안 적십자 봉사대원으로 활동해 온 임 대표는 적십자사에 1천만원씩 성금을 낸다. 2011년 대한적십자사와 사회공헌협약을 체결한데 따른 기부다. 사회공헌협약에 따라 은자골탁배기는 상표에 적십자사마크를 부착하고 판매액 중 일정액을 적십자사에 기부한다. 임 대표는 또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상주연탄은행에도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한다. 연탄 배달용차량 2대(2천만원어치)도 기증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막걸리 안주로 아직도 김치? 두부? “생선회·고기와 더 잘 어울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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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나 생선회가 의외로 막걸리 안주와 궁합이 맞다. 막걸리가 함유하고 있는 유산균과 탄산이 고기를 소화시키는 데 제격이다.
“막걸리 안주는 뭐니 뭐니해도 김치나 두부 요리가 아닐까요?”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김치나 두부를 막걸리 안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마땅한 안주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이 그렇게 굳어진 것입니다.”

임주원 은척양조장 대표는 막걸리 안주로 김치나 두부를 꼽는 것은 고정관념이라고 말했다.

막걸리에는 많은 양의 유산균이 함유돼 있으며 탄산도 들어있다. 이 두 가지는 고기를 소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임 대표는 이에 근거해 막걸리 안주는 고기나 생선회가 제격이라고 주장한다. 유산균이 많은 막걸리에 역시 유산균 보고인 김치를 안주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기나 생선회를 먹을 때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대개 고깃집이나 횟집에서는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근년 들어 막걸리 열풍이 일면서 이제는 음식의 종류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식당에서 막걸리를 판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명실상감한우 홍보관 식당을 비롯한 상주시내의 유명 식당에서도 은자골탁배기가 대세다.

명실상감한우 홍보관을 운영하는 김용준 상주축협조합장은 “막걸리를 많이 마시는 주당들에게는 포만감 때문에 고기 안주가 어울리지 않지만, 적당히 반주로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고기를 안주로 삼는다”며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안주를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상주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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