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과

  • 입력 2013-03-25 07:27  |  수정 2013-03-25 07:27  |  발행일 2013-03-25 제23면
[문화산책] 사과

학교폭력과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어떻게해야 할지 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처벌 이전에 “사과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여럿이 다가앉으며 “무릎 꿇고 사과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한 번 상처 입은 것이 돌이켜지나?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도 건성으로 한다며 형식적으로 하는 사과가 무슨 소용 있느냐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조종하고 때리고,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혔는데, 사과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간적인 모욕과 자괴감 속에 노예처럼 비굴하게 참고 견딘 시간들,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차서 무기력하게 죽어간 순간들을 어떻게 사과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처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식적으로 하는 사과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과정까지, 수천 겹의 두려움과 죄책감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낼 수 있도록….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때 용서는 이루어진다. 그 껍질을 벗겨내는 행위가 사과하기다.

나는 그것을 몇 년 전 대안학교에서 만난 한 열다섯 살 아이에게서 배웠다. 야비하고 음울한 그림을 온종일 그리며 무기력했던 그 아이는 우리가 임시학교로 지내던 성당의 관리인에게 폭력을 행했다. 물론 그 관리인에게 더 크게 맞았지만. 그때 관리인과 아이와 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우리는 서로 사과하도록 부탁했고 그렇게 했다. 물론 그 아이가 관리인을 여전히 보기 싫어했지만, 그 관리인 아저씨도 상처받은 것에 대해 이해했다. 그리고 아이는 유치원 강사에게서, 동네 골목에서 형들에게, 아버지에게서 받은 폭력들과 죽음의 공포를 이야기했고 한 번도 사과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정신대할머니들의 요구는 ‘사과’하는 것이다. 전쟁과 성노예를 만들었던 주범인 일왕의 사과를 지금도 날마다 죽음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 역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꼴도 보기 싫은 가해자에게 원하는 것은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이다. 폭력의 현장에서 사과하고 용서하기가 이루어지도록 하자. ‘사과’와 ‘용서’는 화해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그것만이 평화와 사랑에 이를 수 있다.

이은주 <문학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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