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 입력   |  수정 2013-05-17  |  발행일 2013-05-17 제면
낯선 동양여인 홀로 도심을 거닐자 “보니따 세뇨리따(예쁜 아가씨!)!”라며 몰려드는데…

여행에는 늘 기분 좋은 설렘과 우연한 만남이 따르는 법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낯선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리 가벼울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일 겁니다. 산도 설고 물도 선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낯선 이방인으로서 홀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그야말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두려움의 연속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행이라는 큰 배움의 틀과 맥락 속에서 어김없이 꼭 한 가지 맞닥뜨리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낯선 이들과의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웃지 못할 난감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런 드라마틱한 과정들을 통해 서서히 싹트게 되는 진솔한 우정에 대한 기대감….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여행의 묘미를 살려주는 요소로 한몫을 단단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모든 게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이국땅을 홀로 여행하는 고독한 여행자에게 있어서 현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낯선 이가 베푸는 친절과 진심 어린 선의의 마음은, 그야말로 어둠 속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도 같다고 할 만큼 크나큰 구원의 손길로 다가오게 마련인데요. 그들과 내가 닮은 것이라고는 겨우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라는 얼굴 구조뿐일 거라는 생각에 외로움과 절망감에 휩싸여 의기소침해질 때쯤,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마음꼴 하나를 발견한다는 기쁨과 희열은 단지 선한 의도를 가진 호인과의 우연한 만남,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와 친절한 마음 씀씀이를 아끼지 않는 소중한 인연 하나를, 필자 역시 코스타리카라는 이국적인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쁜 출장 스케줄로 인해 며칠 동안은 틈을 낼 수가 없을 것 같다며 미안한 얼굴로 난색을 표시하던 필자의 친구.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친구와 정해두었던 투어 스케줄을 조금 뒤로 미루는 대신에, 이번에는 나홀로 코스타리카 시내 구경에 나서보겠노라고 용감히 말을 건넨 것이 결국은 코스타리카 친구 후안(Juan)을 만나게 된 그 결정적 계기가 되어 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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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코스타리카 도심투어 중에 만난 여러 풍경들. 위쪽부터 빵집, 광장, 기념품가게, 공원, 교회.

코스타리카라는 아직은 그 이름이 생소한, 하지만 햇살과 바람과 자연이 참으로 아름다운 이 땅에 도착한지도 어느덧 사흘이란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현지 적응을 끝냈기에 괜찮노라고 자부하며, 호텔 직원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 길을 머릿속으로 몇 번씩이나 반복하여 되짚어 보며, 코스타리카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길을 밝혀줄 등불과도 같은 지도 한장을 건네받고는 그렇게 씩씩한 듯 발걸음을 성큼 성큼 내디뎠습니다.

관광객들은 주로 다운타운까지 택시로 이동한다지만, 시간도 많고 배포도 풍부한 필자가 굳이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낮 시간에 외국인 여성이 혼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한 지, 치안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들은 사전에 철저히 점검을 하고 확인을 마쳐둔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다행히 호텔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위치하고 있어 그리 먼 거리를 걸을 필요도 없었고,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번호를 확인하여 버스에 몸을 실으면 되니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을 듯 싶었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오른 필자는 지도를 펼쳐보이며 손가락으로 목적지를 짚어 보인 후, 버스 기사를 향해 무언의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이내 그렇다는 듯,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이던 버스 기사를 향해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건넨 후, 자랑스럽게 버스 뒷좌석으로 이동해 덩그러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버스의 창문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윽고 버스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열린 창문마다 시원한 바람이 파고들어 커튼이 물결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 지긋한 할머니와 책가방을 둘러멘 학생들, 또 제법 살이 찐 중년의 여성이 여기저기 띄엄 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한참을 아닌 듯,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한가로운 오후였습니다. 하품이 절로 날 만큼 그런 조용하고 평화로운 오후에, 단지 코스타리카라는 중미의 어느 나라에서 버스에 홀로 앉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방인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주위엔 그저 묵묵히 그들의 일상을 지켜가는 지극히 평범한 현지인 할머니, 아주머니,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고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어느 한 시공간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에 몸 담고 있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필자가 자리를 잡고 앉은 장소만 크게 바뀌었을 뿐이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는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니까요.

단지 필자와는 다른 외모를 한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낯선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는 의사소통에도 그리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은 셈입니다. 만국 공통어인 보디랭귀지를 통해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가능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리 활발히 의사소통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든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시 음악에 심취한다든지, 그저 묵묵히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에 집중할 뿐이었지요. 오히려 이렇게 낯선 곳에 와서야 다른 사람과의 소통 단절에 아쉬움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그 해법을 찾아 나선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짐짓 태연한 척, 괜찮은 척 담담하게 행동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공간이라는 걱정과 염려가 본능적으로 마음 속 어딘가에는 숨어 잠재되어 있다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나 봅니다. 버스 기사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또 한번의 몸짓으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 없다는 듯이 미소짓는 그 기사 아저씨. 자신만만한 그의 표정에 필자는 다소 안도감을 느낍니다.


버스는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길을 좌로 돌고 우로 돌며 두세 정거장을 더 나아가다가,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북적이는 큰 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눈빛이 다시 한번 찡긋하며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건네기 시작합니다.

아, 여기서 내리라는 거죠?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그야말로 낯선 여행자의 자유로운 방랑기 그 자체였습니다. 지도 한장 만을 달랑 손에 든 채로 크게 순서나 그 중요도에 구애받지 않고, 가고 싶은 곳 몇 곳을 손끝으로 몇 개 짚어 그렇게 큰 루트만을 정한 채로, 그 공간 내에서 발길이 닫는 곳을 무작정 둘러보는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오래된 중심가인지라 몇 개의 성당과 또 몇 개의 공원, 예술가들의 공예품 거리, 많은 상점들과 카페, 식당들을 둘러보는 사이 대충 전체적인 도심의 형태와 구조는 어느 정도 머릿속에 큰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익숙해진 듯 싶었습니다.

유서 깊은 장소나 역사적 의미를 띤 장소를 방문하면 당연히 그만큼의 식견을 넓히고 감상을 정리하며 지식의 폭도 넓힐 수 있지만, 그보다 이번에 필자가 더 관심을 둔 것은 코스타리카 현지인들이 그저 자연스레 즐기고 생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큰 공원과 도심 광장에서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전형적인 코스타리카인 가족들의 모습, 삼삼오오 또래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코스타리카 학생들의 모습,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손에 들고 오손도손 손잡고 거리를 거니는 코스타리카 연인들의 모습…. 바로 이런 모습들이 필자의 눈길을 더 잡아끌었고, 필자가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광경이었습니다.

물론 예술가들의 거리에서 그들이 손수 크나큰 정성을 들여 작업한 그림들과 섬세하게 작업한 수공예품들을 일일이 둘러보면서 흥정하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무작정 하는 거리 구경의 백미는 이렇게 길을 잃은 듯 낯선 거리에서, 진정한 그네들의 일상의 풍경을 포착하고 자연스레 그들과 하나가 되어 보았을 때, 배가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이날 어디를 둘러보느냐가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거닐며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에코투어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가다(5)
겁없이 홀로 도심투어를 하던 중 만난 운명(?)의 피자가게. 여기서 백발의 노신사와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근데 피자가 너무 크다. 도대체 몇명이 먹을 수 있을까.

그렇게 얼굴 크기의 서너 배 크기 만하게 만든 커다란 피자를 파는 어느 서민적인 피자 가게 앞을 지나치며, 사람들 구경에 한창 빠져있을 즈음이었습니다.

“보니따 세뇨리따(예쁜 아가씨)!”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노란 셔츠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손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호기심 어린 눈빛과 미소로 보아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인지, 필자의 정체에 대해 묻고 있음이 분명한 듯 보였습니다.

오늘은 시간에 쫓기며 굳이 무엇을 하려 한다거나, 어딘가를 둘러보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넘치는 날인지라, 혼자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필자에게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가 이렇게 건네는 대화가 약간은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누구라고 영어로 간단히 자기 소개를 건네자, 신이 난 그 청년은 점점 더 많은 질문을 총알처럼 쏟아붓기 시작했고, 채 5분도 흐르지 않아 필자의 주위로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야말로, 동양에서 온 생김새가 다른 자그마한 여성에 대한 코스타리카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더욱 발동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피자 가게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관찰하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하얀 백발의 노신사 후안도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계속)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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