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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을 하루같이 아내 병간호를 하고 있는 남편 이한기씨가 아내 강향순씨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다. |
21일은 부부의 날. ‘둘(2)이 하나(1) 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부부가 있다.
16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 강향순씨(64)의 병상을 지켜 온 이한기씨(67·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를 보면 ‘부부의 사랑이 이보다 더 가슴 절절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구의 H재활전문병원의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그는 유명인사다. 1급 장애인 아내를 지극하게 보살핀 이씨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을까. 최근 아내는 어눌하지만 의사표현도 하며, 숟가락으로 죽을 스스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45년 전 첫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눈물겨운 순애보다.
황해도 출신인 이씨는 6·25전쟁 때 부모, 여동생과 함께 월남했다. 인천에서 터를 잡은 가족은 어머니의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눈물겹도록 힘든 세월을 보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생각할 수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한 이씨는 육상선수 특기생으로 발탁돼 중학교에 입학했다. 등록금이 없어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책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중학교를 마쳤다. 중학교 은사의 도움으로 야간 고교에 진학, 주경야독 끝에 졸업했다.
부인 강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었다. 남편 이씨가 책방 점원으로 일하며 공부하던 고 1학년 때 중 2학년인 아내가 책을 사러 와 처음 만났다. 이씨는 책을 자주 사러 오던 강씨를 ‘꼬마야’라고 불렀다. 강씨는 ‘왜 꼬마라고 부르냐’며 귀여운 항의를 했다. 여자로 보이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씨는 점점 형편이 궁핍해지자 책방 점원 생활을 접고 공장에 취업했다.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강씨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이씨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그의 그림자를 찾아 나섰다.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승진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꿈꿀 때쯤 이씨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야간작업을 하다 프레스에 손을 다쳐 양쪽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삶의 회의를 느끼고 절망에 빠져 있을때 강씨가 찾아왔다. 그는 이씨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부부가 되기로 약속하고 강씨 부모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고된 삶을 살아갈 강씨가 안타까웠던 이씨는 자신을 잊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것을 종용했다. 강씨는 완강히 부인하고 함께할 것을 눈물로 애원했다.
사고로 식물인간 된 아내
한결같은 병간호에 호전
“믿고 사랑해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마지막까지 최선 다하는 것”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수중에는 무일푼이었다. 갖고 있던 시계와 만년필을 전당포에 맡겨 얼마간의 돈을 마련했다. 라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서로 먹기를 권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피를 팔아 아내에게 자장면 한 그릇을 사주며 회사에서 가불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목이 멘 아내는 자장면을 삼킬 수 없었다.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부부는 부산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그렇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첫 딸이 태어났다. 남편이 회사로 출근을 하고 나면 강씨는 아기를 업고 호떡 장사를 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생활은 안정돼 갔다. 호사다마인가. 이씨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직장을 잃게 됐다. 다시 살기 어려워지자 아내 강씨는 식당의 서빙 자리를 찾아 보려고 동분서주했다. 1998년 청도 용암온천 근처에서 근무할 식당을 살펴보고 오던 중 택시에 부딪혀 머리를 다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강씨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식물인간 상태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남편의 극진한 간호로 강씨는 1년6개월 만에 겨우 의식을 찾았다. 하지만 강씨는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1급 장애인이 됐다. 이때 이씨는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쳐 자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순간 ‘누가 아내를 돌봐 주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고, 다시 생명의 끈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준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다짐했다.
갖은 고생 끝에 아내의 병은 호전됐다. 6개월 전부터 강씨는 말도 하며, 숟가락도 혼자 들 수 있게 됐다. 부축을 받으면 2~3분 침대를 잡고 설 수도 있다. 이를 보고 주위에선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부부는 사랑의 힘이라고 믿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이씨는 “이제 아들 둘 장가 보내는 일만 남았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아내를 16년이라는 긴 세월 하루같이 매일 운동시키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몸을 닦아주는 남편은 흔치 않다.
너무나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강씨와 이씨, 주변 사람은 이들을 보고 ‘아름다운 부부’라 부른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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