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은 러일전쟁을 전후한 전략기지 확보와 어장 독점을 노린 일본인의 이해관계가 합치되면서 만들어진 자작극이었다"
김수희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24일 영남대에서 '동아시아 해양거점을 통한 문화의 이해와 통합'을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메이지(明治) 시기 일본 오키(隱岐)섬에서 울릉도를 왕래하던어민들은 독도어장을 경유했고, 당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어장을 이용하면서도 '신어장'을 발견했다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신어장을 발견한 사람에게 어장이용권을 주는 관행이 있었지만, 어민들은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인식한 탓에 일본 정부에 독도어장을 신고해 어장이용권을 확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어업 경험이 있는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는 외국 어장에서의 조업은 어업권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독도의 강치어업권 확보를 위해 일본 관리를 찾았다.
나카이가 만난 해군 수로부장 기모츠키 가네유키 등을 만난 뒤 독도는 일본 영토에 편입됐다.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뒤 나카이는 다른 어민들 몰래 독도어장에 대한 어업허가원을 냈고, 다른 일본 어민들도 서둘러 어업허가원을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나카이는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도어장을 독점했다.
일본 어민들이 독도로 본격 진출한 뒤 1909년까지는 매년 1천~2천700여마리의 강치를 포획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독도 강치가 멸종하면서 독도어장의 경제적 가치는 사라졌다.
김 교수는 "일본이 강치어장 독점권을 노린 어민을 이용해 독도를 편입시킨 뒤 공식적으로 독도어장을 민간인에게 허가한 것은 당시 일본 정부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결탁돼 만들어진 영토편입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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