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진도(上)-바다풍경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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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0-18   |  발행일 2013-10-18 제38면   |  수정 2013-10-18
바다가 낮아져 뻘이 드러난 갯벌…주어진 시간의 겸허함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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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낮아진 바다에 갯벌이 드러나면 갯사람들은 갯것을 얻는다. 겨울이 되면 굴 잡이로 흥성거리는 강계리 앞바다.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 남해와 서해가 만난다. 그 모양은 복잡하고, 그 부딪침은 강하다. 그 물살에 섬은 둘러싸여 있다. 오랫동안 바다는 그 거셈으로 이 섬을 위리(圍籬)하였지만 하루에 두번 제 몸을 낮추어 사람의 몸 기댈 풍요도 주었다. 45개 유인도와 185개 무인도를 거느리고 동그마니 앉은 섬, 진도다.


우는 바다, 울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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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섬과 육지가 가장 가까운 물목, 그 모가지에서 바다가 운다. 해구의 깊은 절벽에 부딪힌 물살이 거품을 일으키며 솟아올라 소리를 지른다. 어느 때는, 아주 깊은 음정으로 운다. “바다가 소용돌이쳐 울어.” 그래서 이 바다는 ‘울돌목’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바다, 울돌목을 한자로 표기하면 명량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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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18일 준공된 진도대교. ‘소용돌이치며 우는 바다’ 울돌목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인해 진도는 한반도 최남단의 땅이 되었다.

바닷물은 해협을 하루에 네번씩 교차한다. 밀물 때면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해협을 통과해 서해로 빠져나간다. 해협을 오가는 물살의 속도, 초속 6미터. 동양 최대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13척의 조선 수군은 이 해류의 움직임과 거센 물살을 이용해 열 배가 넘는 일본군을 무찔렀다. 정유재란의 명량대첩이다.

지금 이순신 장군은 이 우는 바다 앞에 큰 칼 빼어들고 우뚝 서 계시고, 물살 위로는 진도대교가 놓여 있다. 1984년 10월18일, 29년 전 오늘 진도는 한반도의 최남단이 되었다.


전설과 신비의 마을, 회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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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 바닷가에 두 손을 모은 뽕할머니가 바다를 향해 있다.

섬의 동남쪽 모서리에 회동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많아 ‘호동’이라 했다 한다. 호랑이를 피해 바다 건너 모도로 피신했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여 ‘회동’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한 이가 ‘뽕 할머니’다. 황망 중에 피신하지 못한 할머니가 용왕님께 정성을 들여 마을과 모도 사이에 바닷길을 열었다. “내일 바다 위에 무지개를 내릴 것이다.”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냈던 피에르 랑디(Pierre Landy)는 그 무지개를 목격한다. 바다 위로 드러난 모래등은 그 외국인의 눈에 ‘모세의 기적’과도 같았다. 이후 이 바닷길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한 일본 가수는 이 기적을 소재로 한 ‘진도이야기’를 노래 부르기도 했다.

마을 앞 바다는 보랏빛과 초록의 안개처럼 보인다. 눈부신 윤슬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섬들은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젖어 희미하다.

저 섬들 중 낮고, 길고, 민둥한 섬이 모도다. 모도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뽕 할머니 영당이 서있다. 작은 당 안에서는 부채를 쥔 여인이 알아듣기 힘든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뽕 할머니는 이제 사람들의 소원을 용왕께 전하는 전령일지 모른다.


바다가 낮아진 시간, 강계리의 갯벌

회동마을에서 조금 더 남쪽에 강계리가 있다. 굴이 유명한 마을이다. 12월부터 딱 석달 동안 굴을 잡는다. 그때 마을 따라 난 해안도로에는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포장마차가 늘어서고, 내내 굴 굽는 연기가 바닷가를 온통 뒤덮는다. 그러나 철이 일러 일부러 멈출 일 없다 생각했다.

길 따라 달리다 저절로 멈춰 선 곳이 강계리였다. 마을은 한산했고, 한낮이었지만 갯가의 대기는 아침 같기도 하고 저녁 같기도 했다. 바다가 낮아져 뻘이 드러난 시간 속을 사람들이 걷고, 웅크리고, 걷고, 웅크린다. 그 움직임에는 조급함도 없고 다망함도 없고 그렇다고 한가함도 없었다. 거기에는 주어진 갯것들을 얻는, 주어진 시간의 겸허함이 있었다. 물이 들고 나는 반복된 생애 동안 남자와 여자는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을 테지. 해와 달이 있는 한, 반복될 일이다.


미르길과 동령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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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쪽의 작은 바위해안 ‘동령개’. ‘동령포’라고도 하며, 진도 미르길 5구간의 시작점이다.

강계리에서 죽림리 솔숲을 거쳐 동헌을 지나면 헌복동이다. 헌복동에서 남서쪽 모서리인 서망까지, 바다를 낀 옛 오솔길이 있다. 진도군은 그 옛길을 살려 해안 도보길로 조성했다. 이름은 ‘미르길’. 미르란 용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리아스식 지형의 복잡한 선을 따라 굽이치고 솟았다 내려앉는 길은 용을 닮았다.

그 길 속에 동령개 마을이 있다. 동령포라고도 불리는 작은 포구마을이다. 느티나무와 팽나무로 이루어진 마을 숲이 바다를 마주하며 길게 서있고, 그 뒤로 푸른 파밭이 펼쳐진다. 결코 비경이라 할 수 없는 이 포구를 진도의 화가들은 명소로 꼽았다 한다. 무엇 때문일까.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을 숲 벤치에 앉아 가장 오래 바다를 바라보게 했다.


안개 속의 세방낙조

동령개에서 서망항 지나 진도(팽목)항을 지나면 진도의 서해로 접어든다. 길의 고도는 높아지고 바다는 저 아래에서부터 멀어진다. 이 길의 세방리 낙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 했다. “낙조 시간은 6시7분입니다. 오늘은… 볼 수 없을 텐데요…. 안개가 많아서.” 전화기 저편의 진도군청 문화관광과 담당자는 참 미안해했다. 역시 낙조는 볼 수 없었다. 만과 곶, 바다와 섬은 안개에 싸여 숨 막히는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어둠이 왔다. 어둠은 매우 빠르게 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로 가 서해안고속도로로 목포 지나 진도로 들어갈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함안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에서 내려 국도 2번을 타면 강진, 해남 지나 진도다. 회동마을 신비의 바닷길은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지난 사리 때 열린다. 강계리 굴구이 촌은 12월부터 3월 사이에 열린다. 진도 미르길은 헌복동~시앙골(1.5㎞), 시앙골~탑립(1.6㎞), 귀성~중만(2.5㎞), 굴포~동령개(6㎞), 동령개~남동(3㎞), 남동~서망(2.5㎞) 등 6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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