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판 올드보이’ 원작 뛰어넘지 못하고 흥행 실패…왜?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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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06   |  발행일 2013-12-06 제36면   |  수정 2013-12-06
(11월27일 북미 583개 상영관서 개봉한 리메이크 작)
20131206


올해 한국영화 누적 관객수는 지난 11월30일 현재, 1억1천503만여 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기록했다. 지난해 누적 관객수 1억1천461만3천190명을 뛰어넘은 수치다.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역시 60%에 달한다. 장르도 다양해서 드라마, 사극, SF, 스릴러 등이 골고루 포진돼 있다. 할리우드를 포함한 세계영화계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할리우드 톱스타와 감독들의 잇단 방한, 그리고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판권 수출은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리메이크 판권 수출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일종의 전략이 되고 있다. 영진위 조사자료를 참고해 한국영화 리메이크 판권 수출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한국영화 리메이크 15년

‘시월애’‘엽기적인…’‘장화, 홍련’ 등
이어 미국판 또 쓴잔…
 
판권 팔린 30편 중 영화화한 것도 소수
 헐값에 아이디어만  넘겨준다는 비판


한국인 감독 연출 등 공동제작해 성공한
 중국식 리메이크 주목…

 할리우드에도 접목
 한국영화·배우 등의 현지 진출 꾀해야


◆한국영화 리메이크 판권 수출 현황

영화 리메이크 판권은 그 영화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가져와 새로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권리다. 그만큼 판권을 구입한 제작사는 영화의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수출 계약이 주로 이뤄지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한 편 만드는 데 투입되는 비용은 적게는 300만~500만달러에서 많게는 1천만달러에 육박한다. 그에 비해 미국에 팔리는 한국영화 리메이크 판권 가격은 30만달러에서 100만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영화 콘셉트를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할리우드 역시 원작영화를 그대로 수입해 미국 내에서 상영하는 것보다 리메이크를 통해 전 세계에 배급하는 편이 훨씬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사실 자국영화 점유율이 90%에 달하고, 비영어 영화의 배급과 상영이 매우 제한적인 미국 영화시장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아시아영화를 수입해 큰 이익을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리우드판 ‘올드보이’가 지난 11월27일 북미 583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스파이크 리 감독과 사무엘 L. 잭슨, 조슈 브롤린 등이 출연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혹독했다. 원작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 고배를 마셨다. 과거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 ‘장화, 홍련’ 등도 할리우드에서 ‘레이크 하우스’ ‘마이 쎄시 걸’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로 리메이크됐지만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물론 죄다 비관적인 결과를 보여준 건 아니다. 할리우드가 아닌, 아시아권에서 리메이크된 경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나타냈다.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한 ‘카타쿠리가의 행복’은 도쿄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태국판 ‘편지’인 ‘더 레터’는 현지 박스오피스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몇 년간 리메이크 판권 판매 열기는 더욱 뜨겁고 빨라졌다. 현재 ‘아저씨’ ‘헬로우 고스트’ ‘신세계’ 등이 할리우드에서, ‘초능력자’는 일본에서 각각 한창 리메이크 작업 중에 있다.‘더 테러 라이브’의 경우 한국과 열흘 정도의 시간 차를 두고 북미에서 개봉했는데, 개봉과 함께 할리우드 스튜디오 서너 곳에서 리메이크 러브콜을 받았다.

◆리메이크, 빛 좋은 개살구?

사실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을 팔기 시작한 초반에는 판권 수출을 하는 것 자체를 한국영화계의 커다란 성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할리우드와의 리메이크 수출 계약이 50만~100만달러 판권 금액에, 개봉 시 전 세계 수입액의 3~5% 정도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어 완성작의 상영권 판매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또한 미국 메이저 영화사에서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할 경우 ‘글로벌한 작품’으로 재탄생해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판권 수출이 시작된 지 약 15년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권 수출이 한국영화계에 가져다주는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이 이른바 ‘옵션 계약’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옵션 계약’이란 18~36개월 정도의 옵션 기간을 설정하고 처음에 계약금의 일정액인 20% 정도만을 지불하고 영화 완성에 대한 의무 조항이 없는 방식이다. 이러한 옵션 계약은 작품 제작의 지연이나 포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례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간 30편 정도의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지만 영화화된 것은 10편에도 못 미치고 있는데, 이 중 적지 않은 수가 계약금만 받은 채 남은 80%는 받지 못하게 되었거나 현재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 또한 리메이크 판권 가격 자체도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리메이크 수출이 할리우드로 하여금 헐값에 한국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을 뿐, 한국측의 실익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중국, 한국영화 리메이크에 빠지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로가 된 건 중국이다. 중국영화계가 한국영화의 창작성과 창작 인력의 노하우를 높이 사면서 그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 유수의 영화인이 포진해 있고, 미국의 극장 체인을 사들이는 등 세계 2위의 영화시장으로 급부상한 중국 영화시장이 한국영화를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30~5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국 영화시장의 성장세는 초반 대작 영화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더 이상 대작 영화만으로는 높아진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다양한 중·저예산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소위 ‘대박’을 터뜨리는 영화들도 등장했다. 더불어 국영, 관영 대형영화사가 주도했던 영화업 분야에 중소형 영화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주변 국가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영화를 접하게 된 중국에서의 한국영화의 인기는 높은 편이다. 특히 중국 영화인들은 한국영화를 여러모로 높이 평가한다. 그 일환으로 한국의 배우, 촬영, 편집, 사운드, 특수효과 등 여러 분야의 창작 인력들이 중국영화에 참여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영화 전반을 책임지는 감독의 진출이 늘어났다. ‘호우시절’의 허진호 감독을 필두로 오기환, 안병기 등이 중국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이들 외에도 곽재용, 장윤현 감독 등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지금까지 중국에서 한국 감독들이 만든 영화의 대부분이 한국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점이다. 즉, 기존 리메이크 판권 수출과 달리 영화의 연출까지 한국 감독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배우와 중요 스태프들까지 한국인으로 기용해 단순한 리메이크 제작이 아닌 한중 공동제작의 형태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장동건과 장쯔이가 주연한 ‘위험한 관계’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안병기 감독의 ‘필선’ 역시 안병기 감독 자신의 ‘분신사바’를 리메이크했다.

◆다각도의 접근법이 필요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영화의 리메이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리메이크 판권 수출이 아닌 리메이크를 계기로 한 적극적인 국제 공동제작이라 할 수 있다. 할리우드는 ‘시월애’의 리메이크 판권을 50만달러에 사서 만든 ‘레이크 하우스’로 1억1천483만달러의 수익을 거뒀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 중 그 누구도 영화의 원작이 한국영화인지 알지 못한다.

반면 우리 측의 투자, 기획과 인력이 함께 결합된 공동제작에 가까운 리메이크라면 우리가 얻는 이점들은 많다.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의 경우 기획과 메인투자, 촬영 등 전반적인 제작을 CJ E&M 중국사무소에서 주관했다. 또한 감독 외에 촬영, 의상, 조명 등 주요 스태프들 또한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이별계약’을 통해 금전적인 수익뿐 아니라, 중국시장과 관객에 대한 실전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또 ‘필선’에는 촬영, 조명, 음악, 편집에 한국 스태프가 참여했다. 이처럼 한국의 창작 인력이 결합된 공동제작 개념의 한국영화 현지 리메이크는 한국영화의 현지화 전략으로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현재 6편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진행하고 있는 CJ E&M의 리메이크 세일즈는 기본적으로 공동제작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CJ E&M은 현재 리메이크를 진행중인 작품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를 ‘공동제작의 결과물’로 선보이는 게 목표다. 실제 ‘파퍼씨네 펭귄들’을 연출한 마크 워터스가 메가폰을 잡는 ‘김씨표류기’ 리메이크 작업에는 개발비 투자와 함께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복수는 나의 것’은 보나벤츄라픽쳐스와 공동제작을, ‘헬로우 고스트’는 크리스 콜럼버스의 1492픽처스와 공동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CJ E&M의 해외투자제작팀 남종우 부장은 “처음에는 우리를 알아주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글로벌 진출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1492픽처스와 파트너십도 맺고, 여러 제작자들과 네트워크도 쌓게 되었다”며 “미국에서도 새로운 소재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서로의 니즈가 딱 맞아 떨어졌다. 우리는 니즈가 생겼을 때 몇 푼 벌고 말자는 게 아니라 더 장기적으로 생각을 했다. 많은 한국영화를 보여 주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은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에게 한국 감독이나 배우들을 폭넓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병헌 등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결과적으로 리메이크 판권 수출은 한국영화나 문화, 배우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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