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내륙 깊은 곳에 티 없이 맑고 밝은 표정으로 앉다 백화산 (경북 상주-충북 영동 경계 ·해발9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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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3   |  발행일 2013-12-13 제39면   |  수정 2013-12-13
바윗길로 이어지는 주능선…힘 넘쳐 보이는 ‘골계미’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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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주행봉으로 향하는 바위능선 반야교 -(40분)- 부들재 갈림길 -(15분)- 지능선 암릉구간 - (40분)- 봉화터 갈림길 -(5분)- 정상 -(20분)- 안부 갈림길 - (30분)- 부들재 -(20분)- 부들재 갈림길 -(30분)- 반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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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 정상까지는 심한 안개로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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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재에 가까워져서야 하늘이 열려 지나온 백화산 정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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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371호 삼층석탑이 있는 반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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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인 반야사의 배롱나무.


전국에는 백화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산이 의외로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산이 경북 문경의 백두대간상의 백화산(1천63.5m)이고, 육십령 부근 전북 장수의 백화산(850.9m)도 꽤 유명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륙 깊은 곳,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의 경계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백화산(白華山·933m)이다. 산 전체가 티 없이 맑고 밝다는 뜻을 갖고 있다. 주능선이 바윗길로 이어져 힘이 넘친다. 그야말로 골계미가 일품이다. 또 산자락을 휘감고 굽이쳐 돌아나가는 석천(石川)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행 들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아담한 절집 반야사가 있고, 그 앞을 흐르는 석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사학의 자존심 옥동서원(경북도기념물 제52호), 백옥정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산행은 반야사 입구 반야교에서 시작된다. 반야교를 건너면 오른쪽 입산통제소 앞에서 세 갈래로 길이 나뉜다. 먼저 왼쪽은 삼림욕장을 거쳐 주행봉을 오르는 길이고, 정면은 주행봉을 먼저 올랐다가 정상인 한성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코스다.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르거나 능선을 올라 정상인 한성봉부터 오르는 코스다.

일행은 오른쪽 길을 택했다. 석천과 나란한 길을 100여m 가면 큰골이 시작되는 계곡으로 접어들게 된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5분 정도 더 가니 팔각정 앞에 능선길과 계곡길 갈림목이다. 오른쪽 ‘편백숲길’ 이정표를 따르면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직진하면 계곡을 따르다 능선으로 합류하는 길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어려운 희뿌연 하늘이다. 산 중턱부터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쌓인 듯해 계곡을 따르다 능선으로 올라붙을 요량으로 계곡을 건넌다.

산허리까지 오르면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두세 차례 계곡을 가로지른다. 30분쯤 지나면 왼쪽으로 무덤 한 기를 지난다. 너덜길이지만 다듬은 듯 넓은 길이 나왔다가 끊기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집터처럼 축대를 쌓은 돌무더기도 만나는데 허물어진 성벽 같기도 하다. 10여 분을 더 가면 ‘부들재 0.8㎞, 한성봉 1.2㎞’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직진해 계곡을 건너면 잠시 넓은 길이 나오고, 정면으로 로프가 매인 바위를 만난다. 이 로프구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런데 눈이 쌓인 길이라 속도가 붙지 않는다. 가만히 걷다 보니 앞서간 사람의 흔적이 없다. 올 한 해도 아무도 지나지 않은 첫눈을 밟는 행운을 얻었다. 다져지지 않은 눈을 밟고 걷다 보니 발 아래가 신경 쓰여 속도가 자꾸 떨어진다.

쉬어가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돌아보니 두 명의 산객이 바짝 따라붙었다. 혹 리듬에 방해가 될까 싶어 길을 비켜섰더니 얼마 가지 못해 우리 일행에게 다시 길을 내어준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듯한 눈치다. 우리 일행이 일부러 앞으로 나선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쉬면 따라 쉬고, 우리가 몇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저만치 간격을 두고 뒤따라온다. 처음 길을 내는 사람이 갈팡질팡하면 뒤따르는 사람도 갈팡질팡한 길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정확히 자국을 남기는 것이 뒷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다.

몇 번의 로프구간을 지나 작은 지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몰아놓은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한 번의 바윗길을 왼쪽으로 돌아올라 다시 능선에 서면 ‘봉화터 2.7㎞’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는 상주쪽 금돌산성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 정상까지 5분이면 닿는다.

금돌산성(사적 제30호)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인 660년 태종 무열왕이 머물던 성이며, 고려 때는 몽고군을 격퇴한 승첩지가 된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의 은신처로 쓰였다고 한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졌는데 길이가 무려 20㎞에 달한다고 한다. 맑은 날이면 산성을 볼 수가 있는데 안개 때문에 시야가 가렸다. 게다가 눈길이라 잠시 내려가 보는 것조차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상에는 상주시에서 세운 ‘백화산 한성봉’이라 적혀있는 정상석과 충북에서 세운 ‘포성봉’이라 적힌 표석이 있다. 포성봉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문화를 말살하고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조금 전 뒤따르던 산객이 도착했다. 주섬주섬 뭘 꺼내는 듯하더니 우리 일행이 아니었으면 정상까지는 엄두를 못 냈을 거라며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첫눈을 밟는 행운과 덤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주행봉 방향의 남쪽으로는 다행히 앞서 간 사람이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인 데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내린 눈이라 온 신경을 발 아래로 집중해 걸어야 한다.

10분 정도 내려서서 안부를 만나는데 표식 리본은 왼쪽 아래쪽과 정면 바위길 능선에 걸려있다. 발자국은 왼쪽 아래쪽으로 찍혀있었다. 무심코 따르다가 50m나 내려서서야 계곡으로 곧장 하산하는 길임을 깨닫고는 다시 치고 올라와 바윗길을 이어간다.

이 구간은 누구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바위 구간이다 보니 발 디딜 자리를 찾기 위해 눈을 쓸어내듯 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15분 정도면 충분할 거리를 40여분 만에 부들재 갈림길에 닿았다. 계획한 주행봉까지는 무리겠다 싶어 일행을 세워 이 지점에서 하산하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씩 한다.

“나도 땡큐지.”

하루 이틀 다닌 사이가 아니다 보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전에 계곡에서 만난 갈림길까지는 0.8㎞인데 멧돼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20분 정도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전에 올랐던 길을 따라 반야교까지 걷는 동안 대화는 딱 한 가지였다.

“주행봉은 언제 갈래?”

“또 날 한번 잡아보자.”

미련을 버렸지만 미련에 대한 이야기로 30분 만에 반야교에 닿았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 apeloil@hanmail.net

백화산☞

◇…백화산은 경북 상주시와 충북 영동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르는 코스가 여럿 있지만 반야사 입구 반야교에서 오르면 원점회귀가 가능해 편리하다. 반야교에서 오르더라도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과 계곡을 따라 오르는 두 코스로 나뉜다. 정상에서 주행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곳곳의 칼날능선을 지나야 하므로 겨울철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주행봉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약 11㎞, 부들재까지라면 약 8㎞로 4시간 남짓 소요된다.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황간IC를 빠져나와 4번 국도를 따라 김천 방향으로 우회전해 약 500m를 가면 마산삼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면 <주>에넥스 영동공장을 지나 월유교와 원촌교를 차례로 지나고, 약 6.5㎞를 가면 반야사 입구 상가를 지나 반야교가 나온다.

△내비게이션=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1-1(반야사)


볼거리☞

△반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인 반야사는 원효·의상대사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창건 설화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심묘사에 머무를 당시 사미승 순인을 이곳에 보내 못의 악룡을 몰아내고 못을 메웠고, 720년(성덕왕 19) 의상대사의 제자인 상원(相願)이 창건했으며, 1325년(충숙왕 12)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1371호인 삼층석탑과 극락전 앞에 수령 500년이 넘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절 마당에서 범종각 뒤로 보이는 산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흡사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옥동서원= 경북도기념물 제52호이다. 1518년(중종 13)에 창건됐으며, 황맹헌·황효헌·황희의 위패를 모셨다. 1714년(숙종 40) 전식(全湜)을 추가 배향하고,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783년(정조 7)에는 황뉴(黃紐)를 추가 배향했고, 1789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남아 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다.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54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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