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최환석, 대한민국 교육에 돌직구

  • 박진관
  • |
  • 입력 2014-01-17   |  발행일 2014-01-17 제37면   |  수정 2014-03-21
‘나는 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 책 발간
“나는 ‘과외금지’ 찬성론자…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으니까”
20140117
정신과 의사 최환석씨가 최근 책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를 냈다. 그는 “궁극적으로 복지가 확대돼야 교육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가 ‘교육 책’ 낸 계기는

정신과 병동 여중생 상담
개인의 심리차원 아니라
사회병리 문제라고 확신


우리 교육이 터널에 갇혔다?

하나의 사고와 행동만 요구
극소수만 빠져나올 수 있어

한국교육을 게임에 비유했는데…

남을 앞서야 한다는 강박증
패배하면 희망이 사라지는
카지노보다 더 지독한 게임

왜 이렇게 됐나

과도한 사교육이 가장 큰 원인
사육 지경이 돼도 사회는 방관

해결책은 뭔가

특목고·자사고 등 폐지하고
서울대級 대학 30곳 설립을


바야흐로 분화에서 융합의 시대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전문가보다 비전문가가 어떤 문제점에 대해 훨씬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있다.

병이 든 ‘시대정신’을 처방하고 치유하는 의사는 없을까. 시대에 ‘정신’이라는 말이 들어있으니 정신과 의사가 주치의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의 면담이나 각종 뇌기능검사 등을 통해 인간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다. 저술활동이나 TV출연 등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정신과 의사는 대부분 개인의 정신적, 심리적 질환을 치료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유명해진 경우다. 하지만 사회적 공공질환, 특히 브레이크 없이 ‘정신없이 막 나가는 시대’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한 정신과 의사는 드물다.

정신과 의사 최환석씨(45)는 개인보다 사회문제, 특히 교육문제에 천착하다, 지난해 12월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는 20년 경력의 의사로 한국의 교육이 터널에 갇혔다고 주장한다. 또 경제보다 교육이 훨씬 비효율적이라며 세례 요한처럼 일갈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7년 전 ‘정신과 의사의 깨는 주식투자법’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가 왜 주식에 몰두하다 다시 대한민국 교육에 돌직구를 던지며 책까지 냈을까. 지난 10일 그가 근무하고 있는 대구 허병원 진료실에서 그를 만났다.

-책을 쓴 계기가 무엇인가.

“어느 사회나 청소년이 자살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사회는 그것이 너무 잦고, 연령대도 너무 어린 나이까지 내려왔다. 오래전 정신과병동에 입원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상담했다. 질이 나쁜 또래 아이들과 본드흡입도 하고 패싸움을 일삼아 경찰서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부모가 경찰에게 부탁해 정신병동으로 입원시켰다. 품행장애로 진단이 나왔는데 도대체 무슨 품행에 장애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착한 아이였다. 또 병원 생활도 잘 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아이의 어머니가 자녀교육상담전문가였다는 사실이다. 정작 자신의 딸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들여보냈으니 뭔가 잘못된 교육구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삐뚤어지는 건 공부 때문이 아니라 사회병리문제 때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40~50대 남성들이 예전보다 정신과를 많이 찾는 이유가 잘못된 교육제도 때문이라고 했는데.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으면서 다들 남성갱년기가 아닌가 하고 자가 진단하더라. 슬며시 ‘노후준비는 잘 돼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죽어라 해도 돈이 안 모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집 사고, 차 사는 것 외에 교육비가 과도하게 지출되는 문제에 대해선 대부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하더라. 우리사회 중년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교육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비용을 교육에 소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에듀푸어’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이대로 가면 중산층은 다 무너진다.”

-그래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칭찬하더라.

“왜곡하지 마라. 오바마가 부러워한 건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아니라 교육열이다.”

-책에서 아랍의 자살테러와 우리교육이 닮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아리엘 메라리가 자살테러를 시도하다 실패한 테러리스트를 인터뷰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미치지도, 광신도이지도, 어리석지도 않은 데다 상당수가 부유하거나 특권층 출신이고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 연구 끝에 그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터널에 갇혀있다고 봤다.”

-어떤 터널인가.

“입구가 매우 좁은 터널이다. 억지로라도 다 들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소수만 빠져나올 수 있는 터널이다. 그런 터널에 갇힌 사람은 자신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오로지 하나의 사고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개방된 사회에서는 여러 견해가 충돌하고 고민하면서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터널에 갇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나 자신의 이마에 프로스포츠 구단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광팬과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게 우리나라 교육과 어떤 상관이 있나.

“우리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넘게 형성된 터널에 갇혀 있다. 이 터널 안에서 주어진 이념이나 행동강령이 진실이라고 믿고 처절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이 터널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으며, 잡아 뜯고 밟으며 살아가고 있다. 탈출하는 방법은 한 가지, 터널을 허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을 게임에 비교했던데.

“한 실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한국 어머니는 ‘자녀가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남과 비교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잘 하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 미국의 어머니와는 전혀 상반된 결과다. 우리사회는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회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게임이다. 하지만 이 교육게임은 누군가가 비호하고 계속 유지시키고자 한다. 우리교육은 카지노보다 더 지독한 게임이다. 여기서 지면 희망이 없어지는 무서운 사회다.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아이들을 교육게임으로 내몬다. 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한다. 왕따와 자살증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증후군과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증가가 이로부터 파생된다. 이제 청소년 ADHD도 사교육처럼 하나의 큰 산업으로 진화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과도한 사교육 때문이다. 학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수익기관이다. 2000년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조치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학원의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어떤 경쟁이냐 하면 첫째, 레벨테스트라는 걸 만들어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 둘째, 심리학적으로 후광효과를 이용해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받아들인다는 서열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셋째, 선행학습을 해서 공부를 잘 한다는 그릇된 편견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넷째, 수학 같은 경우 창의 수학을 하려면 영재수학까지 해야 한다는 식의 끼워 팔기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사교육이 아니라 사육수준으로 아이를 내몰고 있는데도 사회는 방관한다.”

20140117

-사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사교육이 공교육이 하지 못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맞춤식 교육이 가능하며 부모와 학생의 욕구가 다양해져 사교육 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사교육이라고 주장하는데 사교육을 옹호하든 해결책을 제시하든 대학입시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에 대해 해결책은 있나.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오스트리아와 같은 나라처럼 고교를 졸업하면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다만 졸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평준화를 어떻게 보는가.

“하향평준화니, 붕어빵 교육이니, 벽돌로 찍어낸다는 말은 교육평준화정책에 대해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관념을 심어주고 있다. 학원재벌, 사학재단, 서울대, 조·중·동 보수언론 등이 연결돼 교육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 다른 기득권 수혜자는 미국이다. 어학연수에다 영어캠프, 심지어 기러기아빠까지 양산하고 있지 않나. 전두환 전 대통령시절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486세대가 벽돌로 찍어 낸 세대인가. 아니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과외금지조치를 지지한다. 비록 극소수가 ‘몰래과외’를 했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유일한 시기였다.”

-우리나라 교육의 패러다임이 오랫동안 안 바뀌었는데.

“근대 일본의 침략을 당하지 않고 서양의 교육방법과 철학이 이식됐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제가 심어놓은 교육방식과 철학은 일왕에게 복종하는 황국신민화교육이다. 군대식교육에다 출세(出世)교육이 중심이 됐다. 출세는 원래 승려가 되기 위해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지만 일제의 교육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출세는 곧 사회적 성공과 동일시됐다. 아직까지 쓰고 있는 ‘내신(Secret Letter)’이란 용어도 그때 생긴 잔재다. 이후 지금까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교육 본래의 목적보다 신분상승의 수단으로만 교육을 이용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비판한 내용이 교육을 시장에 맡김으로써 발생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부조리한 현상을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은 없나.

“영어시험을 폐지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어를 잘 해야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 영어를 잘 하는 나라가 더 잘 산다는 정말 잘못된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영어가 의사소통을 넘어 종교수준이 돼버렸다. 영어를 쓰는 필리핀이 우리보다 더 잘사는가. 우리의 영어공부는 오로지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다. 핀란드의 경우 1980년대까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영어를 가장 못 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후 문법위주, 시험위주의 영어공부를 실용영어로 바꾸고 거의 모든 시험을 폐지하자 영어실력이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21위다. 또 교육부를 해체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학재단과 연결된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전·현직 교육마피아가 교육을 망치고 있다. 이들은 비리의 온상이다. 외고와 자사고를 편애할 뿐만 아니라 기숙형공립고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밖에 다른 대안은 없나.

“특목고, 자사고 등을 폐지하고 고교평준화를 복구해야 한다. 또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통해 서울대 같은 대학을 30개 이상 만들면 된다. 대학을 평준화하더라도 이미 고교평준화가 하향평준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다. 프랑스의 경우 일반대학은 모두 평준화시켰지만 ‘그랑제콜’이라는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대학교육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도 그래머스쿨 등이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나라는 없다. 영국과 프랑스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사회적 비판이 만만치 않다. 마지막으로 교육복지정책을 확대하면 된다. 정책입안자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