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힐링…“마음의 매듭이 풀렸습니다”

  • 백경열,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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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20 07:56  |  수정 2014-01-20 09:29  |  발행일 2014-01-20 제15면
“선생님들이 아파요”
대구지역 초중고 교권침해 사례 2012년 530건…2년간 3배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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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대구 팔공산 국제선수련센터에서 에듀힐링에 참여한 교사들이 촛불 명상에 열중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해 9월 대구 한 고교 3학년 교실. 실내 수업을 이어가던 교사에게 학생들이 야외 활동을 요구했다.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교사는 이를 거부했고, C군(18)이 “XX”라는 욕설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들며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교사는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지만 소용 없었다. 교사가 “계속 떠들면 벌점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C군에게서 돌아온 건 입에 담기도 힘든 심한 욕설이었다. 해당 교사는 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조퇴해 병원 진료를 받았으며, 며칠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비슷한 시기, 대구 한 고교. 교문 앞에서 한 교사는 생활지도 차원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담배 소지 여부를 검사했고 D군을 적발했다. 이에 D군은 해당 교사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항을 전했고, 전화를 받은 부모는 즉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학교를 찾은 부모는 갖은 욕설과 함께 행패를 부렸다. 해당 교사에게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폭언을 쏟았다. 교사는 병원으로 옮겨져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구지역 일선 초·중·고의 교권침해 사례는 2012년 530건에 달했다. 2010년 186건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2년 동안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질병 휴직도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해가 갈수록 상처입는 교원은 늘고 있다.

이태열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장은 “에듀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교권 침해로 고통받는 교원에 대해 정서 및 행정적 도움을 주고 있다. 교원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되찾게 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가 행복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실시한 105개 시범 연수과정에 대구지역 교원 2천946명이 참여했으며, 이 중 2천845명(96.58%)이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바 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대구시 교육청
교사 대상 프로그램
좋은 반응

지난해 12월부터 실시
교직 스트레스 등 상담·치료
힐링 연수도 병행

종교단체 6곳
전문기관 4곳과 업무협약

공동형·선택형·심화형 구분
스트레스 정도 따라
우선 대상자 정해

매년 교원의 20%
프로그램 참여 유도키로


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게 스승의 위상이었다. 스승은 학업은 물론 삶의 소중한 가치를 물심양면으로 전하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학생들은 스승의 그늘 아래서 꿈을 키워나갔고, 그렇게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갔다. 스승은 그런 제자들을 말 없이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만 띨 뿐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교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사이 포근한 스승의 그늘을 느끼지 못하게 돼 버렸다. 급기야 학생들은 스승이라는 나무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밑둥을 찍으며 상처내고 짓밟는다. 변해버린 교육 현실에 스승의 나무는 가지가 꺾여 버렸다. 나이테만큼 시름도 깊어만 간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을 외친다.

◆상처 입은 교권, 힐링이 필요해

14일 오후 7시쯤 대구 팔공산 국제선수련센터 내부. 쥐 죽은 듯 고요한 정적을 깨고 스님의 목탁 소리가 공기를 울린다. 홀연히 서 있는 한 명의 스님 뒤로 20명의 남녀가 합장하고 섰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스님의 목탁 소리와 예불 소리에만 귀를 열었다. 표정이 꿈결인 듯 편안하다.

잠시 뒤, 침묵 행렬에 조명도 동참했다. 노란색 전등불은 사그라들고 칠흑의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내 20명의 남녀 앞에 손톱 크기의 촛불이 하나씩 밝혀졌다. 아른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명의 앞에 앉은 환자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힐링(Healing). 이들은 가지가 꺾인 아픔에도 한 마디 말 못하던, 치유가 필요하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었다.

대구시교육청이 에듀힐링을 위해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간 개최한 템플스테이의 한 장면이다. 교권 침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교원들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전국 최초로 마련됐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대구지역 초·중등 교원 20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처음 교단에 선 새내기 교사부터 교직생활 40년차인 교장까지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상처 입은 마음만은 같았다.

대구 한 초등학교 교사인 A씨(여·54)는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끈 채 산사를 찾았다. 어느덧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지 30년을 훌쩍 넘겼지만 지난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교사직이었지만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까지 먹게 됐다.

이씨는 “이곳에 와서 명상 등을 해보니 내가 참 나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저 습관적으로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운을 뗐다.

이어 “학생들이 2~3명 떼를 지어 나를 찾아와서는 막말을 하기도 하고, 학부모가 찾아와서 도에 넘치는 항의를 할 때도 있었다. 나만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상당수 교사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그럼에도 교육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곳을 찾았다. 내가 치유돼야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B씨(42)는 “치료지원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사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교권 침해로 인한 각종 스트레스를 치유하게 되면 보다 건강한 교단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스트레스 상황을 묻어두고 지나가기 일쑤였는데 마음의 매듭이 확 풀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나 업무를 접하는 마음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교직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밝게 웃었다.

◆상담·치료·연수 병행한 치유프로그램

에듀힐링 프로그램은 지난해 대구시교육청이 교권침해 피해 교원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교직 스트레스,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교원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 및 치료 지원과 힐링 연수를 병행한 전국 최초의 치유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를 위해 시교육청은 지난해 9월부터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 단체 6곳과 도산서원, 스트레스대처연구소 등 4개 전문기관과 함께 교권침해 피해교원 지원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앞으로 힐링 직무연수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6개 병원과의 업무협약 체결에 따라 ‘진단-상담-치료’의 원스톱 치료지원 시스템을 통한 의료 지원도 병행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교단 분위기를 조성해보자는 취지다. 교원의 위기에 주목해 역으로 학생의 학습 결손을 막아보자는 복안이 깔려 있다.

연수 프로그램은 교사 개개인의 희망을 고려해 △공동형 △선택형 △심화형 과정으로 구분돼 실시된다. 교직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우선 대상자를 정해 운영하게 된다.

지난해 실시한 에듀힐링 연수 효과 및 교사효능감 조사 결과 응답자의 93%가 연수를 통해 스트레스가 감소했다고 밝혔으며, 연수에 다시 한 번 참여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교사효능감을 나타낸 지수 역시 월등한 신장세를 보였다. 동료와의 관계 및 교직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대구시교육청은 매년 교원의 20%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또 연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대구교육연수원을 ‘힐링의 성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타 시·도 교육연수원에 에듀힐링 프로그램 개발 노하우를 알리고 보급함으로써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교원들도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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