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더 가까이 알아가고 느끼는 과정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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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21   |  발행일 2014-01-21 제30면   |  수정 2014-01-21
20140121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확산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기다리는 설렘은 사라져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알고 느끼는 것이 인생


얼마 전 대학 시절 동아리 OB모임에서 신년회를 열었다. 모임 공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 ‘채팅창’에서 이뤄졌다. 회장이 장소와 시간 공지를 하고 나머지 회원들이 댓글로 동의하는 수순이 이어졌다. 그런데 모임 당일 제 시간에 약속장소에 나온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사업차 중국에 있다가 새해를 맞아 한국에 잠시 나온 한 선배만 정시에 나왔고 나머지 회원들은 적게는 1시간 뒤, 많게는 2시간 뒤 2차에 합류했다.

‘다들 먼저 모이겠지’라는 생각으로 다른 볼일을 보고 있던 필자도 선배 혼자 식당에 있다는 소식을 채팅창을 통해 보고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향했다. 결국 그날 대구에 살고 있는 OB회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의 인원만이 모임에 참가했다. 10여년 친목을 이어온 모임이었기에 그날의 참석률은 너무나 의외였다. 모임의 화제는 채팅창을 통한 연락이 인간미가 떨어지고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 낮아진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 휴대전화 없이 집전화만으로 연락해도 약속 시간을 지키곤 했던 옛날이 신기했다는 말도 나왔다. 끝에는 요즘 SNS의 대세이며 조금 더 안부를 쉽게 교류할 수 있다는 ‘밴드’를 만들기로 하고 헤어졌다.

동아리 모임의 경우를 들었지만, 비슷한 경험이 적지 않다. ‘스마트’ 한 세상 속에서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채팅창에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없을 때,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좋아요’나 ‘댓글’이 적거나 없으면 머쓱하기만 하다. 메신저를 통해 문자를 보낸 후 상대방이 읽어야 사라지는 ‘1’이라는 숫자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 서양화가 이명미 작가는 ‘1 읽었나요’라는 제목의 작품을 전시장에 내걸어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몇 번을 고쳐 쓴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놓고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은 이제 시간여행을 하지 않으면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이다. 설사 시간여행을 하게 되더라도 ‘기다림’을 진득하게 견뎌낼 수 있을지…. 시간을 묵혀 성숙해진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진 이 시대에 대한 아쉬움에, 많은 사람들이 지난 한 해 동안 그토록 ‘응답하라’를 외쳐댔던 건 아닐까.

며칠 전 아침, 신문에서 통닭을 한 마리 시켜서 반반 나눠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서 먹는 싱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롭게 읽었다. 자기 몫의 닭을 나눠들고 가는 사진 속 여성의 표정은 정말이지 환했다. 아마 그 여성은 예쁘게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와 열심히 채팅을 하며 즐겁게 그 닭을 먹었으리라. 그 여성과 같은 세대는 ‘댓글 없음’도 쿨하게 넘길 것 같다. 소통 부재니 소외니 하는 감상도 이제는 3040 이상의 세대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인터넷 뉴스와 e메일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종이매체가 사라질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쌓이지 않고 채팅창과 SNS를 통해 떠돌다 ‘사라질’ 기록에 대해 걱정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1936년 창간되어 2007년 4월30일자를 마지막으로 인터넷잡지사로 전환된 ‘라이프’지의 모토이다. 비록 종이로,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축적’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 그저 ‘허공으로 사라진’ 것은 아닐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과정’에 목적이 있는 것이니까.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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