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부서 러닝 鐵女로’ 이연숙씨의 마라톤 스토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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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04   |  발행일 2014-04-04 제35면   |  수정 2014-04-04
지옥의 7種훈련 극복…전국 서브스리 女傑 30인 당당히
‘평범한 주부서 러닝 鐵女로’ 이연숙씨의 마라톤 스토리
마라톤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올해 서울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59분3초로 남성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서브스리를 달성한 이연숙씨.

지난 3월16일 서울 동아마라톤대회.

이날 지역의 한 40대 아마추어 여성 마라토너에 의해 경이로운 기록이 탄생한다. 남성도 달성하기 힘들다는 서브스리(풀코스를 3시간 내에 주파)를 달성한 이연숙씨(43). 평소보다 얇은 러닝화를 신고 눈까지 흩뿌린 궂은 날씨 탓에 34㎞ 지점에서 치명타를 입는다. 체력의 한계를 지났다. 극심한 통증이 왔고 이후 체력을 완전 소진했다. 그녀는 귀신에 홀린 듯 진물이 난 발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2시간59분3초.

대구 지역에서 여성으로 서브스리를 돌파한 사람은 대구마라톤클럽의 최진영과 유금숙 등 모두 5명이다.

◆ 느림보 다리를 가진 마라토너

마라톤을 처음 시작할 때 그의 100m 기록은 30초였다.

그렇게 느린 다리를 가진 그가 어떻게 초인적인 기록을 낼 수 있었을까. 지옥 같은 연습과정을 지켜보면 그 기록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부업으로 나가던 장갑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먹게 되고 살이 쪘다. 수영장에 다녔다. 한 회원이 마라톤을 권했다. 얼떨결에 달서구 상인동 경북기계공고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냥 달렸다. 마구잡이로 달렸다. 대뜸 비슬산참꽃마라톤대회를 목표로 잡았다. 연습할수록 숨겨져 있던 마라톤에 대한 재능이 발견됐다. 그 대회에서 10㎞를 53분에 달려 18등을 했다. 부상으로 토마토 한 상자를 받았다. 마라톤이 생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자 더 자신감이 솟구쳤다. 곧 이어 영남일보 마라톤대회에서 10㎞를 48분에 돌파한다. 30대 부문에서 2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남편은 “여자가 마라톤하면 소는 누가 키우냐”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 주경야독하며 연습에 올인

“10㎞에 재미를 붙였는데 주위에선 자꾸 풀코스를 완주하지 않으면 진짜 마라토너가 아니라고 압력을 넣었어요. 오기가 발동해 결국 풀코스에 도전하게 됩니다.”

연습 코스는 달성군 화원 일원. 화원 마비정마을, 용문사 등을 거쳐 23㎞ 정도의 산악 트레킹 코스를 스스로 만들었다. 부업을 하면서 틈틈이 달렸다. 남편은 아내의 열정을 대수롭지 않게 봤다. 하지만 등산로에서 만난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박수갈채를 보낸다. 더 피가 뜨거워졌다.

혹독한 연습은 빼어난 성적으로 꽃이 폈다. 포항해병대 혹서기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를 3시간31분에 달려 2등을 차지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6개월 만이었다. 2008년 9월 경주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3시간26분. 여성 서브스리였다.

그때까지도 독학이었다. 대구마라톤협회 성서지부에서 그녀에게 러브콜을 한다. 2009년 협회에 가입한다. 여성 서브스리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남성 서브스리’에 도전할 작정이었다. 30여분을 더 단축하기 위해선 마라톤의 기본기를 다시 다져야만 했다. 당장 헬스클럽에 가입했다. 하루 윗몸일으키기를 300회 이상, 러닝용 자전거를 30분 이상 했다. 점심엔 체력강화를 하고 저녁엔 달렸다. 기본기를 위해 5㎞부터 다시 달렸다. 3시간 안에 들어오기 위해선 5㎞를 20분 안에 달려야만 했다. 이어 10㎞를 40분 초반대에 돌파하기로 한다. 2009년 경남 고성마라톤대회에서 3시간19분 기록을 세운다. 그해 5월 지부에서 명인식을 열어주었다. “그때서야 남편이 ‘우리 마누라 대단하구나’라고 인정해주더군요.”

◆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목표 달성

남편까지 마라톤에 가세했다.

집 근처 운동장을 매일 10~15바퀴 돌았다. 하지만 남편은 금세 포기했다. 석 달도 안돼 중도하차한다. 체력이 문제였다.

서브스리로 가기 전에 일단 싱글(3시간10분 안에 주파하는 것)부터 도전했다. 하지만 2010년 5월 옥천마라톤에서 절망한다. 3시간23분이었다. 기록이 맴돌았다. 여기가 끝일까?

“속으로 난 풀코스 체질이 아니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속으로 많이 울었죠.”

이후로는 10㎞에만 매진한다. 다시 2년 만에 40분대를 돌파한다. 그 과정에 극심한 체력저하로 병원에 신세를 진다.

“항생제 치료를 받는 동안 축적해둔 근육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마라톤을 계속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은 계속하면 죽는다고 극구 말렸습니다.”

이 광경을 딱하게 보던 한 남성 마라토너가 “당신은 서브스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응원을 했다. 퇴원 후 45일 만에 다시 지옥연습에 나선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더 통증이 밀려왔다. 특전단 특수훈련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연습이 이어진다. 이때 대구마라톤클럽 명인1호인 정찬우씨가 훈련을 진두지휘했다.

“서브스리를 하려면 한 달에 평균 300㎞를 달려야 한다고 하지만 실은 양보다 구간별 정밀한 주법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400m 트랙을 평균 100초 안에 달렸다. 2013년 진주마라톤대회에 나갔다. 하프코스를 1시간27분에 달린다. 자신감을 얻는다. 다음 대회에서 서브스리를 달성하지 못하면 은퇴하자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다시 조깅, 산악훈련, 헬스, 도로 달리기 등 모두 7종의 연습라인을 극복해 낸다. 지난달 16일 꿈을 달성한 그녀. 하지만 그 덕분에 더욱 행복한 현모양처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재 남성 서브스리를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여성 마라토너는 이씨를 포함, 전국에 30여명이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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