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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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1   |  발행일 2014-04-11 제38면   |  수정 2014-04-11
샛노란 유혹을 누가 마다할 텐가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의 띠띠미 마을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 할아버지가 젊은 소를 훈련시키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400년 전 형성된 봉화의 산수유 마을, 띠띠미.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뒤쪽에서 계곡물이 흐른다고 해서 띠띠미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띠띠미 마을에는 고택이 4채 남아 있다. 봄마다 향토 시인들의 시낭송회가 고택에서 열린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산수유나무는 흙돌담 안팎을 넘나들며 꽃을 피웠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산수유 천국’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꽃이 핀다는 것은 일을 시작한다는 것. 나무 아래 밭고랑이 곡진하다.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0㎞. 서둘러 달음질치던 꽃의 걸음이 이 골짜기에 들자 느려진다. 깊고 높은 골짜기까지, 꽃은 걸음마다 할 일이 많았다. 어룽어룽 햇살을 그러모으고, 고물고물 돋아나는 새싹의 기운도 얻고, 도란도란 시냇물과 나눌 얘기도 많았던 게다. 그래서 이제야 당도한 꽃은 더딘 걸음으로 모은 햇살과 물기와 흙의 기운을 단숨에 뿌려 놓았다. 깊은 산중에 꼭꼭 숨은, 누군가 골짜기에 두고 간 꽃바구니 같은, 여기는 띠띠미 마을이다.

◆길의 끝, 마지막 마을 띠띠미

길을 찾지 못하였다. ‘산수유 마을’을 여쭈었더니 ‘띠띠미’라 답하신다. “띠띠미 갈라꼬? 조 앞에 삼거리서 우회전해가 쭉 올라가. 고목이 나오면 쪼매난 다리가 놓인 옆길이 있어. 글로 새면 안 돼. 그냥 계속 쭉 바로 가. 길 끝까지.”

두동삼거리에서 골짜기를 향해 달린다. 고목과 옆길을 지나친다. 도로의 한가운데를 막아선 작은 금강송 숲을 살짝 휘돌고, 거대한 느티나무도 지난다. 시나브로 오르던 길이 굽이지며 상승하다 마을을 만나 흩어진다. 여기가 길의 끝, 띠띠미 마을이다.

띠띠미 마을의 행정명은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연꽃 모양의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막을 두(杜)자가 들어간 마을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의 진산’이라 기록되어 있는 문수산 자락의 마지막 동네다. 마을은 가운데가 옴폭 패인 바구니 같은 땅에 좁은 들머리길만 열려있다. 꽉 막힌 산으로 에워싸여 있다 해서 ‘뒷듬’, 혹은 마을 뒤에서 물이 흐른다고 해서 뒤뜨물(後谷)이라 불리던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뒷듬마, 뒷드물, 뒤뜨미, 디뜨미 등으로 변해 띠띠미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벼슬하지 말고 이 열매만 따서 먹어라

띠띠미 마을은 남양홍씨 집성촌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400여년 전 병자호란 때. 개절공 두곡 홍우정 선생은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해 은둔을 택했고, 온통 다래 덤불로 뒤덮여 있던 이 골짜기로 들어왔다. 그때 선생의 손에는 산수유 묘목 몇 그루가 들려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골짜기의 척박한 땅에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우리 자손은 벼슬하지 말고 이 열매만 따서 먹어라’ 했다 한다. 그 후 그의 자손이 대대로 뿌리를 내렸고, 지금도 두 집 가운데 한 집은 남양홍씨다. 그가 처음 심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마을 서쪽을 흐르는 개울 옆에 살아 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의 연원도 그의 호 ‘두곡’에 있는 듯하다.

띠띠미 마을의 산수유나무는 5천그루 이상. 대부분 100년이 넘었다. 의성의 산수유도 여기서 분양받아 나간 것이라고 한다. 산수유 세 그루면 자식학비 걱정 없던 때가 있었다. 벼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봄꽃과 가을 열매가 함께 매달린 광경은 더는 기이한 일이 아니다. 중국산 산수유 열매는 고단하지만 값졌던 수확의 노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두곡 선생은 400년 훗날을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띠띠미 마을은 20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가고 노인만 남았다. 그러나 아직 산수유 농사를 짓는다. 수확하는 양보다 포기하는 것이 더 많지만, 품삯도 나오지 않지만, 정성으로 심고 키운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할아버지가 젊은 소를 훈련시키던 장면이 이 마을에서 촬영되었다. 산수유는, 워낭의 소리와 같다고 느낀다.

◆지금 띠띠미는 노란 꽃바구니

띠띠미 마을의 산수유는 전국에서 가장 늦게 꽃핀다. 경북의 북단인 데다 해발고도가 높아서다. 마을의 산수유는 지금 만개다. 마을을 에워싼 문수산 자락도, 장독대 옆에도 개울가도 고샅도 모두 노랑이다. 단아한 고택의 흙돌담도 노랗게 물들었고 한미한 폐가의 지붕도 노랗게 덮이었다. 노란 꽃구름 아래 손바닥만 한 땅을 갈아놓은 밭고랑이 곡진하다. 꽃이 핀다는 것은 일을 시작한다는 뜻이랬다. 거름 포대도 곳곳에 쌓여 있고 벌써 파릇하니 오른 부지런한 푸성귀도 눈에 띈다.

조금 높은 산자락을 기어오른다. 마을이 제법 너르게 보이는 곳까지. 키 작은 봄꽃들도, 꽃그늘 속에 앉아있던 고양이도, 가지런한 밭고랑들도, 단정한 마당들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몇 안 되는 지붕들만 빼꼼할 뿐, 온통 노랑이다. 누군가 이 골짜기에 두고 간 꽃바구니 같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영주IC로 나가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로 간다. 봉화군청 쪽으로 나가 내성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 삼계 회전교차로에서 닭실마을 방향 다덕로를 따라 계속 직진한다. 동양삼거리에서 천성사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 2㎞ 정도 계속 직진하면 띠띠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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