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지혜’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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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2   |  발행일 2014-04-12 제16면   |  수정 2014-04-12
건강불안 부추기는 ‘보이지 않는 손’
의료비는 솟구치고 관련 산업은 번창
떨어지는 건강 수치, 모두 자신 탓일까
‘의료화 사회’ 숨겨진 쟁점·진실 파헤쳐
의료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지혜’

저자의 할머니는 1950년대에 치료를 받지 못해 병에 걸린 어린 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러한 과거 때문에 할머니는 약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의사를 신 같은 존재로 여긴다고 한다. 병원에서 받아 간 약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며 계속 복용한다. 할머니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의사가 가진 고도의 전문성 덕에 많은 사람이 병이 주는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2014년 현재, 의료계와 의료정책에는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의료계 검은 커넥션이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의료과잉을 부추기는 시대’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수년간 직장 정기 건강검진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이들은 부쩍 많아지는 추세다. 전문의들은 이에 대한 원인을 두고 스트레스가 늘어난 근무환경과 잘못된 식생활, 심각한 환경오염 등 다양한 원인을 제기한다. 과연 그것뿐일까.

의료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지혜’
건강의 배신//이노우에 요시야스 엮음/ 김경원 옮김/ 돌베개/ 354쪽/ 1만5천원

저자는 이에 대한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이유로 ‘기준치의 변경’을 지적한다. 한 가지 예로 일본에서 혈압의 기준치는 1987년에 180/100㎜Hg 이상이었는데, 그 후 기준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2008년 한 건강검진의 ‘건강검진 장려’의 진단 기준은 140/90㎜Hg이었으며, 나아가 ‘보건 지도’ 판정은 130/85㎜Hg까지 내려가 있다. 이렇듯 ‘이상’이 많이 나오도록 기준이 점차 엄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혈압을 내려야 할 치료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혈압약 등 약제의 사용량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일부 전문의들은 혈압 약을 과용하는 것이 도리어 뇌혈전이 생기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몸의 치료를 위해 복용하게 되는 약이 오히려 몸에 이상을 부르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해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혈압 기준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콜레스테롤 수치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의약계 전반적으로 상품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의료 세계 전반에 수많은 돈의 흐름이 발생하고 있고, 거기에는 당연히 다양한 이권이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눈을 돌려 TV를 바라보면 쭉쭉빵빵의 늘씬한 미녀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의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통통하고 불룩한 우리 자신의 몸매가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비정상적일 것 같은 불안함이 들고, 심하면 병원에 가서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할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불안함은 어쩌면 건강불안, 더 나은 의료라는 허울 좋은 광고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킨 것에서 온 것은 아닐까. 끝없이 건강을 추구하라고 사람들을 몰아대고, 이런 배경에서 의료비는 솟구치고, 관련산업은 번창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쉽게 깨질 수 없는 견고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의사를 꼭짓점으로 하는 위계질서 속에 몸담고 있으면 쉽게 의료를 비판할 수 없다. 의심스럽다고 여겨도 내부고발을 하기는 어려워진다. 용기를 갖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사는 그 사회에서 내쫓길 것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건강과 직결된 의료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검토가 필요할까. 저자는 “현재 건강불안이나 더 나은 의료가 상품화되어 세상에 횡행한 결과 도리어 사람들의 건강이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역설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강이며 의료인가, 극단적으로 말해 건강을 위해 죽어도 좋을 바보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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