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영화 ‘시선’으로 19년만에 컴백한 이장호 감독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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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8   |  발행일 2014-04-18 제37면   |  수정 2014-04-18
옛날엔 나를 위해 영화 만들었지만 이젠 관객을 위해 만들고 싶어
그것을 깨닫기까지 27년이 걸렸다
[시네토크] 영화 ‘시선’으로 19년만에 컴백한 이장호 감독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의 귀환.

존재감 하나로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고 있는 이장호 감독이 19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기대와 관심이 증폭된다. 그가 누군가. ‘별들의 고향’(1974)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바보 선언’(1984) 등으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초석을 닦았던 장본인이 아닌가.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온 그와 그의 복귀작에 초점이 모아지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의 20번째 작품이 된 ‘시선’은 해외 선교 봉사활동을 떠난 9인의 한국인이 극한의 피랍 상황을 겪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갈등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이장호는 ‘시선’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 그래서일까. 영화에는 인간 본연의 내밀한 심리묘사가 시종 밀도 있게 담겨진다. 이는 삶의 관록과 원숙함이 녹아있는, 노장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올 로케이션 촬영과 현지인 캐스팅을 통해 사실감과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영화 ‘시선’과 보편적 이타성에 대한 이야기로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한 이장호 감독을 만났다.

-19년 만의 복귀다.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그간 내 인생에서 영화가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나라는 염려와 걱정 속에서 지내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너무 소중하고 고맙다. 이전에는 돈과 명예를 의식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전적으로 내 이기심이 우선이 된 거지. 그러다 하느님의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먹고사는 문제만 쫓다보면 하느님이 원하는 것을 놓칠 수가 있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타심만 있으면 된다. 나 역시 그동안 나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제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버려야 한다. 27년이 돼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탄생했다. 그동안 영화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안 됐다. 오랜 슬럼프였다. 지나고보니 슬럼프가 나쁜게 아니라 나에게 아주 유익한 거였고,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영화 만드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시선’은 그 도약대가 될 듯하다. 흥행도 어느 정도 예상한다. 그렇다고 대박나는 흥행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에 필요한 관객은 충분히 흡수할 것 같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당신 영화를 부정하는 건가.

“부정할 수밖에 없다. 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욕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전작들은 모두 내 이기심에서 나온 거고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영화다. 대마초 사건으로 영화현장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때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느끼고 리얼리즘을 회복하려했던 일은 있지만 그것조차도 어떻게 보면 내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철저히 떠나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느님의 입장에서 나를 개조하고, 또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중에게도 권하고 싶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 입장에선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네가 왜 나를 계몽하려고 해’ ‘왜 개조시키려고 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고, 난 어쨌든 이타심으로 접근할 것이다.”

-종교적으로 심취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종교와의 만남은 굉장히 오래됐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 날’을 만들었는데 당시 그 제목처럼 이상하게 많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교회를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1987년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뜨거운 맛을 보았다. 성경공부는 92년에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내 종교관이 성장했다고 본다. 종교를 얘기하면 무신론자들은 뜨악하게 생각할 텐데, 나는 그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문제를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됐다. 사람마다 영혼이 있다. 동물과는 달라서 사람의 영혼은 거의 신적영혼이라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을 끄집어내지 않기 때문에 동물적으로 살고 있다. 그런 게 안타깝다.”

-19년 만의 현장이 많이 낯설 듯하다.

“영화했던 사람이라 적응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우선 나는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라 여유가 없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필름이 항상 부족했다. 때문에 아직도 필름을 아끼는 버릇이 남아 있다. 현장에서 조급하게 컷을 외치면 현재 시스템에 익숙한 젊은 스태프들은 좀 더 여유를 갖고 하라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한다. 그런데 이게 버릇이 되다보니까 쉽지 않더라. 그래서 조감독에게 나 대신 컷을 하라고 시켰다. 시작은 내가 하지만 컷은 조감독이 담당했다. 그리고 영화는 반드시 동시녹음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특히 모니터가 있으니 편하더라. 예전에는 감독이 이리 뛰고 저리뛰고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없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앉아서 편하게 체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거 늙어도 영화 만들기가 쉽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현장에서 편집도 할 수 있으니 이제는 영화를 못 만드는 게 이상한 거다.”

-외부적인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멀티플렉스를 가진 대기업이 배급과 투자, 제작까지 맡고 있는 시스템이다. 돈은 풍부하지만 그만큼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건 비극이다. 대기업 위주의 시스템에 감독의 슬픔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슬픔을 못 느끼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제정신이면 슬픔을 느껴야한다. 지금은 철두철미한 자본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여기서 숨 좀 쉬어보겠다, 예술적인 욕망을 펼쳐보겠다는 건 허락이 안 된다. 내가 이 영화를 들고 나온 것도 그래서다.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된다면 이런 영화가 큰돈 바라지 않고 감독의 자존심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관객들도 나중에는 이런 영화를 더 원하게 될지 모른다.”


[시네토크] 영화 ‘시선’으로 19년만에 컴백한 이장호 감독

오랜 슬럼프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92년부터 성경공부, 인간영혼에 관심
복귀작도 하느님의 시선 담는 데 초점
봉준호의 설국열차 ‘의미심장한 작품’
소설가 최인호 죽음 보며 참인생 생각
소유욕 없어져 집도 아내 명의로 바꿔

-사실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그런 점들이 항상 화두가 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시스템에서 한국영화의 활황이 이뤄졌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산업적으로 외형을 키워 할리우드와 같은 높은 성을 쌓으려는 거지. 그런데 언젠가는 분명 힘든 상황이 닥쳐올 것이다. 미국의 모기지론이 전 세계 불황을 몰고 왔듯, 어느 날 할리우드가 붕괴되는 시점이 오면 똑같이 붕괴된다. 미국이 기존 상업 영화를 거부하며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태동시켰듯이 우리도 독립영화를 키워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영화가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꼭 보고 싶은 영화도 많지 않다. 최근 본 건 ‘신이 보낸 사람’이다. 영화를 보고 연출한 김진무 감독과 껴안고 울었다. 동병상련의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영화도 좋아한다. ‘설국열차’ 같은 경우는 오락영화지만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제와 테마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 다양한 미장센 때문에라도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을 보면서 몇몇 능력 있는 후배들이 왜 활동을 안 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이명세가 지니고 있는 창의력, 리얼리즘 영화의 재능이 있는 장선우, 배창호는 나와 비슷한 감각이어서 이 친구도 좀 빨리 달라진 시각의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읽다가 문득 그 소설의 귀결장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동을 받았다.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피랍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그 과정에서 실제 피랍되었던 사람들의 수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 분들의 수기 속에서 발견한 건 이 사회가 이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을 알게 됐다. 시나리오에는 없던 소년 병사와 그 누이동생 이야기는 그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러고보면 당신의 삶은 이제 종교를 접하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

“그렇다. 내가 옛날에 아주 좋아하던 사람 중에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형이 있다. 그 형이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서 연출도 하고 시나리오도 썼다. 그런데 형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그때 속으로 ‘이젠 형도 끝났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하느님을 믿으면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가 오기 때문에 지금껏 잘해오던 것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긍정적인 변화이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변화인데 말이다.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 특히 영화하는 사람들은 큰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고맙다는 거다. 지금 죽어도 좋다는 게 딱 이거다. 작가 최인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처럼 자기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글을 써서 많은 돈을 벌었다. 배용준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도 그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최인호가 침샘암에 걸렸을 때 정작 내가 당황한 것은 그가 인생을 헛살았다고 말해서다. 5년간 투병을 했는데 최인호에게 있어서 그 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기였다는 거다. 이게 아주 기가 막힌 거다. 내가 그의 투병기를 읽고 하느님에게 기도했다. 내가 죽을 때도 최인호처럼 죽게 해달라고 말이다. 하느님이 최인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침샘암이었다. 어느 누가 그처럼 인생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영화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최정상에서의 기쁨도 맛보았고 나락에 떨어지는 좌절도 맛보았다.

“그래서 다 헛되고 부질없다는 거다. 잠깐이면 사라진다. 내 나이가 되면 이전의 과거는 볼품없고 다 없어진다. 다행히 나는 미래가 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희망을 발견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 이미 내가 씨를 뿌렸기 때문에 후배감독들이 그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이다.”

-개봉을 하게 되면 많은 관객들이 볼 텐데.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나.

“미리 영화를 접한 크리스천들은 약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좋았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더라. 비크리스천들은 이전 종교영화들과는 다른 뭔가를 자기 몸속에서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바라는 바다. 우리는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살다 보니 가시적인 것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그런 것은 잠깐 사이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인데,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은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러한 바람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비크리스천이 이 영화를 볼 때는 무언가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서 돌아보게 하고, 잃어버린 본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시작이다. 내가 조금씩 노하우가 축적되면 나중에 그 사람들에게 더 호소하게 되고, 비크리스천에게 하느님의 시각을 전달하는 과정이 더욱 세련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첫길에 잘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데 굉장히 건강하다.

“하느님에게 감사하고 있다. 특별히 건강을 위해 애쓰는 건 없다. 운동도 하지 않고 게으른 편이다. 대신 내 몸 안의 문제는 자연치유되도록 놔둔다. 병이 나도 병원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만약 나에게 암이 발견된다면 그날로 나는 죽을 준비를 할 것이다. 최인호가 미리 보여줬기 때문에 항암, 방사능 치료는 절대 안 할 것이다. 그건 자연치유를 막는 일이다. 중요한 건 정신적인 거다. 암도 내가 감사하게 받아들일 거다. 인생을 정리할 수 있게 하느님이 선물을 내려 주셨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버킷 리스트를 쓴다면.

“일단 머리를 기르고 있다.(웃음) 단순하다. 신앙으로 인해 가치관이 바뀐 후부터 나는 소유욕도 없어졌다. 집도 아내 명의로 해놓았다. 그래서 난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 요즘에는 이 시대에 없는 순교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달라고 아직 기도를 드리지는 않았다.”

-즉흥적이고 즉감적인 연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현장에서도 콘티 없이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노골적으로 그런 방식을 택했다. 내 주장이나 의견 대신, 배우들에게 대사를 스스로의 입에 맞게, 캐릭터에 맞게 준비해 오라고 숙제를 냈다. 그랬더니 신이 나서 준비를 해오더라. 오히려 당황한 건 스태프들이다. 스토리보드 없이 진행되니 답답하겠지. 나중에는 포기했는지 잘 따라오더라.”(웃음)

-차기작이 궁금하다.

“차기작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고, 시나리오도 여러 번 만진 작품이다. 85년 남지나해에서 조난당한 96명의 보트피플을 구조한 원양어선 선장 전재용씨의 이야기다. 직접적으로 종교를 다루지는 않지만 이타심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종교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오는 8월14~15일 이틀간 ‘해방둥이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다. 장소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다. 해방둥이는 조국광복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해방둥이가 주인공이 돼서 신나게 판을 벌일 생각이다. 물론 해방둥이가 아니어도 일반인들은 구경꾼으로 참여하면 된다.”

글·사진=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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