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8) 팔공산 음식공방 ‘노고추’ 배명자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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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8   |  발행일 2014-04-18 제41면   |  수정 2014-04-18
민들레·달래 갖고도 김치를 만드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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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사범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가계가 기울어 하는 수 없이 식품사업에 뛰어든 ‘노고추’의 오너셰프 배명자 대표. 식당 앞 잔디 마당에 지천으로 돋아난 민들레꽃과 제비꽃을 한 쟁반 가득히 담아 올렸다. 항상 사계절이 묻은 음식공방 인프라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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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에 갓 돋아난 참두릅으로 만든 두릅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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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액젓을 베이스로 담근 ‘명이잎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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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김치국물을 베이스로 파래와 배를 곁들여 만든 ‘해초물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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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의 감각과 사찰음식의 기운, 그리고 약선요리의 궁합이 가미된 팔공산 힐링푸드 한상차림. 배명자 오너셰프가 갓 돋아난 채소와 야생초, 나물류로 질박한 밥상을 차려냈다.

사찰 음식 전문가 선재스님에
전통장류·신토불이 음식 배워
식품회사 설립, 발효음식 제조
2005년 식당 차려 요리에 접목
해초물김치…톳배추김치…
발상의 전환, 이색김치 개발

팔공산의 지맥인 명마산 자락에 앉은 만선암(萬善庵)의 초봄 두릅의 안부가 궁금했다.

명마산은 김유신의 삼국통일 열망이 스며 있는 암산(岩山)이다. 근처 불굴사 토굴에서 100일 기도를 마치고 앞을 바라볼 때 백마가 울면서 승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산 이름. 그렇다고 만선암이 무슨 암자 이름은 아니다. 사찰음식과 제철음식, 그리고 약선음식을 하나로 묶는 실험적 한식연구 공간인 음식공방 ‘노고추(老古錐)’의 본부다.

대구시 동구 능성동과 경산시 와촌면 경계에 있는 노고추. ‘오래 된 송곳’이란 상호인데 제법 운치가 있다. 갈수록 자연이 담긴 ‘제철음식 1번지’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여기는 대구 도심보다 보름 정도 늦게 봄이 도착한다. 이즈음 두릅의 싹에는 겨울과 봄의 기운이 혼재한다.

주차장 주변은 두릅과 엄나무가 휘감고 있다.

초입의 25개 돌계단이 미학적 곡선을 품어낸다. 져버린 동백 한 그루가 애처롭게 가는 겨울을 추억해준다. 돌계단 옆은 자그마한 계곡. 그 곁에 조성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두릅밭이 있다. 그 옆에 조릿대와 비슷하게 생긴 시누대가 집채만 한 군락을 이룬다.

이를 어쩌나!

잔디 마당은 민들레와 제비꽃 군단에 점령돼 가고 있다. 그런데 배명자 대표(61)는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Let it be’ 정신으로 일관한다. ‘힐링캠프에 농약이 웬말이냐’란 표정이다.

잔디 반 잡초 반 형국. 드문드문 흰 민들레가 교태로운 자태를 보여준다.

노고추 외형은 별장, 내부는 한옥 스타일. 대청 한편에 현악기 소리를 잘 뿜어내는 탄노이 스피커가 보인다. 마당엔 200여개의 옹기가 장관을 연출한다. 옹기마다 장과 메주 담근 날짜가 적혀있다. 그녀의 치밀함이다.

◆ 원래 조신한 다도 사범이었다

원래 식당 주인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를 일. 남편 하던 일이 잘못되면서 자신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형편이 좋았을 때는 다도에 심취했다. 20년 이상 명정차회를 통해 지역 차문화를 선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었다. 폼을 잡지 말고 일을 잡자고 결심한다. 원래 차공부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다식에 간여하고, 그런 과정에서 한식에 대한 나름의 안목이 형성된다.

팔공산 일대에 널리 깔린 풀들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한 건 10여 년 전. 당시 팔공산 중턱의 시야가 넓게 트인 산 한 자락에 별장을 두고 있었다. 지천에 나고 있는 풀들을 음식에 접목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재료별 효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발효, 효소의 중요성에 대한 정보를 얻은 그는 2003년에 발효식품회사 ‘와촌식품’을 설립, 발효식품을 손수 만들어 선보이기 시작한다. 노고추는 2005년 4월, 와촌식품의 홍보와 겸해 그 식품을 음식에 접목시키고 응용하는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게 된 것.

1999년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 스님과의 인연을 다음 해 ‘차와 사찰음식’이란 행사로 그려낸다. 자기 몸속에 음식본능이 있다는 걸 자각한다.

그녀는 자기 음식에 네 가지 힘이 들어가 있다고 고백한다.

“친정어머니가 몸소 보여주신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가짐, 시부모가 가르쳐주신 요리법, 선재 스님이 알려주신 전통장류와 신토불이 음식의 중요성, 그리고 마지막엔 다도생활을 통해 배운 중용(中庸)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처음부터 요리를 잘한 것으로 착각한다.

“시어머니는 역시 고수입니다. ‘빈대떡은 식용유가 아니고 꼭 돼지기름에 부쳐야 맛있다’ ‘고기를 삶을 때는 항상 고기에 간이 배야 맛있다’고 귀띔해주었어요. 이런 안목은 절대 요리책과 학원에선 못 배우죠.”

한식연구가답게 효소와 장아찌, 그리고 된장·고추장·간장·김치는 물론 심지어 액젓까지 직접 만들어 팔고 있다. 만선암 바로 북측 뒤란 돌틈에 실험적으로 심어 본 차나무가 이젠 잘 자란다. 이제 녹차는 물론 뽕잎, 쑥, 민들레 등도 뜯어 차를 직접 만든다.



◆ 노고추 요리팁

원래 바쁜 나날.

그런데 몇 년 전 어떤 인연 때문에 난데없이 요리책 펴내는 데 진을 다 빼버렸다.

2011년 12월에 요리연구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문성실씨가 지인을 데리고 노고추에 놀러왔다. 그녀가 자기만 알고 있는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국을 이 잡듯 뒤지면서 한국푸드스토리를 추적하고 있는 조경자·박인경·황승희씨가 배 대표를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상당한 음식정보가 들어 있는 ‘시골 엄마밥’(상상출판 간)이 지난해 5월에 출간된다.

그 책을 정독했다.

‘열두 달 열두 가지 나물 이야기’ 대목에 요긴한 정보가 듬뿍 담겨 있었다.

거론된 나물은 시래기, 아주까리, 세발나물, 토란대, 톳나물, 다래순, 가지, 달래, 취나물, 뽕잎, 엄나무, 냉이 등이다.

나물은 어떻게 삶아야 할까.

말린 나물은 육안으로는 부드러운 것과 뻣뻣하고 거친 것을 구별하기 힘들다. 말린 나물은 찬물에 담가 삶는데, 이때 나물의 상태를 보아가며 시간을 조절한다. 억센 나물은 40~50분, 부드러운 건 10~20분이면 충분하다. 줄기를 손톱으로 눌러 손톱이 들어가면 충분히 익은 것이다. 냄비에 나물을 삶을 때는 불을 끄고 물이 식을 때까지 그대로 둬야 나물이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톳의 경우 마른 것과 생톳이 있는데 생톳은 살짝 데쳐 사용하면 되지만 마른 건 찬물에 30분 이상 불려 삶아 조리하고, 짠맛이 있어 간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맛국물의 비법도 알려준다.

육수는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그녀의 육수 비법은 채소를 넣지 않는 것. 멸치,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만으로 끓인다. 보통 무, 대파, 양파 등의 채소를 넣어 끓이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집에서 한 번 육수를 끓이면 때에 따라 며칠씩 두고 먹는 경우가 많은데 채소가 들어가면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나 양파의 단맛이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소는 요리에 따라 즉석에서 넣어 먹는 게 더 맛있다.

맛국물은 모든 국물 요리의 기본이다.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해야 쓴맛이나 잡맛이 없다. 곰솥에 물 600㎖를 넣고 젖은 면포로 깨끗이 닦은 다시마를 넣어 1시간 정도 불려 불에 올려 끓인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니 끓기 시작하면 조금 후에 건져내야 한다. 마른 팬에 볶아 수분을 없앤 멸치와 표고버섯을 넣고 다시 끓여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로 줄여 30분 정도 더 끓인다. 포고는 생것보다 마른 것이 향과 맛이 더 진하다.

만들어 사용하는 효소 종류만 40여 가지.

근처에서 자연적으로 난 매실, 산초, 가죽, 두릅, 냉이, 쑥, 초피, 대나무 죽순, 오미자, 도라지, 돌배 등을 활용해 효소나 장아찌 등을 만든다.

청은 설탕과 청 재료를 1대 1 비율로 담그면 된다. 일반적으로 담근 후 100일이 지나 건더기를 건져내고 액만 발효시켜 먹는다.

초피액젓은 꽤 마니아가 많다.

초피액젓은 일명 ‘멸치액젓’. 초피는 경상도에선 ‘재피’라고 불리며, 추어탕이나 어탕 등의 비린 맛을 없애고 매운맛을 돋우는 힘을 갖고 있다. 남해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멸치와 간수를 뺀 천일염과 초피를 장독에 넣고 1년 이상 숙성시키면 비린 향이나 비린 맛이 나지 않는 액젓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생선소스’와도 비슷하다. 이 액젓은 감칠맛이 뛰어나 봄철 나물 요리에는 필수로 사용하고 미역국이나 북엇국의 간에도 도움을 준다.

이춘호기자leekh@yeongnam.com

● 취재 후기

그녀가 금세 밥상을 차려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당근과 무를 갈아 만든 부침개였다. 또한 묵은 김치국물을 베이스로 채 썬 배와 파래를 갖고 오이냉채국 같은 물김치를 올려놓았다. 그녀는 민들레는 물론 달래, 냉이, 씀바귀 등 봄풀을 갖고 샐러드·겉절이 같은 이색김치를 잘 만든다. 곧 김치 관련 책이 한 권 더 나온다.

그녀가 지난해 펴낸 책 속의 이색적인 메뉴를 적어본다.

가지냉국, 마된장국, 마른오징어뭇국, 원추리된장국, 채계장, 초교탕, 토마토탕, 청둥호박 넣은 배추김치, 우엉김치, 톳배추김치…. 문리가 트이면 응용은 무한정이다.

아들이 그녀의 음식비법을 이어받고 있다. 호주에서 유학하던 한 대학생이 그녀한테 한식을 배우려고 요즘 별채에 머물고 있다.

부디 사계절 버전의 ‘노고추 비빔밥’까지 개발했으면 좋겠다. 경산시 와촌면 음양리 940. (053)853-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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