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이로정과 관수정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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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27   |  발행일 2014-06-27 제38면   |  수정 2014-06-27
장쾌한 낙동강이 앞마당…옛 선비의 풍류 되살아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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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이로정 앞 낙동강은 바다로 가고 건너편에는 청룡산이 보인다. 오른쪽은 이로정의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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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 앞마당에서 본 낙동강. 도동서원의 주차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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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보는 정자 관수루. 도동서원의 옆 마을 꼭대기에 고독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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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정’ 현판과 ‘제일강산’ 현판. 기둥에는 김굉필과 정여창의 시가 걸려 있다.

맞은편 강변은 눈부신 백사장이었다 한다. ‘참 장관이었지’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있으니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이다. 지금은 초록의 키 낮은 수풀이 넓은 띠 모양으로 강변에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부드러운 곡선의 청록색 청룡산이 솟아 있다.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리고 강이 흐른다. 먼 곳으로 떠나는 모습으로. 이 풍경을 보며 옛날 두 노인이 ‘제일강산’이라 했다.

◆ 두 노인의 정자, 제일강산 이로정

달성 산업단지의 휑한 도로를 질주한다. 드디어 가로수가 무성한 왕복 2차로 도로를 만나면 오래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낮은 집들이 보이고, 이제 강이 가까워졌구나 생각한다. 구지면 내2리. 일명 모정마을의 안쪽에 낙동강을 앞마당으로 둔 절벽이 있다. 도로에서 5분이면 족하고 길도 넉넉하지만 절벽에 서면 마치 섬에 당도한 기분이다. 카랑카랑 몇 마리 개 짖는 소리가 오히려 고요를 부추긴다. 절벽 앞쪽은 중단된 공사가 흉한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자전거 길을 잇는 공사다.

절벽 위에 정자가 있다.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안정감 있게 물러나 앉았지만 전경은 고스란히 들이는 딱 그 자리에 정자는 자리한다. 두 노인의 정자, 이로정이다. 두 노인은 누구인가.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다. 함양의 일두 선생은 현풍의 한훤당 선생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고, 두 분은 여기서 함께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한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이 있다. 두 사람이 주인이기에 건물은 대칭을 이룬다. 기둥에는 두 분의 시가 앞뒤로 걸려 있다. 앞쪽에는 한훤당 선생의 시다. ‘공부를 업으로 삼았어도 하늘의 기미 몰랐거늘 / 소학 공부 해보니 이제까지의 잘못 깨닫고 / 지금부터 정성껏 자식도리 다하련다 / 구차하게 어찌 잘 사는 것 부러워하랴.’ 뒤쪽에는 일두 선생의 시다. ‘부들에 바람 살랑살랑 가볍게 나부끼고 / 사월의 화개땅엔 이미 보리 벨 때라 / 두륜산 천만봉 다 보았는데 / 한척 배는 또 아래 큰 강으로 흘러간다.’

두 분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모두 1498년 무오사화 때 화를 입었다. 일두 선생은 종성으로 유배되어 1504년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한훤당 선생 역시 평안도 회천으로 유배, 2년 뒤 순천으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1504년 돌아가셨다. 안내문에는 ‘1504년 이곳에서 만났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곳에서의 교우는 성균관에 입학하기 전, 김종직의 제자였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확인되지는 않는다.

정자에는 ‘이로정’ 현판과 ‘제일강산’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제일강산이라. 산은 높다고 높은 것이 아니고, 강은 깊다고 깊은 것이 아니니, 조선조 도학의 맥을 잇는 두 노인의 기풍이 여기에 살아있기에 ‘제일강산’이란 의미다.

◆ 들꽃 만발한 강변

이로정에서 도동서원 쪽으로 향한다. 강변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을 듯한데 도로는 모정마을 초입에서 막혀 있다. 무슨 공사를 하는 건지 바리케이드가 서 있고 길을 내어달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외지인에게는 아쉬움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함의 박탈과 불편함일 것이다.

다시 산업단지를 횡단하고 길을 에둘러 도동에 들어서서야 강변길이다. 강변은 들꽃 천지다. 그 가운데로 자전거 탄 사람 몇몇이 빠르게 달려간다. 푸다닥 소리 나는 곳을 유심히 살폈더니 고라니 한 마리가 꽃 속으로 사라진다. 만발한 들꽃 속에 수달의 서식처도 있고 옛 나루터도 있다. 그렇게 강과 꽃을 따라 도동서원에 닿는다.

◆ 물을 보는 정자, 관수정

도동서원 옆 마을의 꼭대기에 물을 보는 정자, 관수정이 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함께 공을 세운 사우당 김대진 선생이 경상도 감사 이민구와 향토 사림의 협조를 받아 1624년에 건립한 것이라 한다. 이후 1721년에 없어졌으나 고종 3년인 1866년에 후손 김규한이 다시 지었다.

여기서 도동서원의 내부가 잘 보여 서원을 관리할 목적으로 지었다고 추정되지만 수목이 무성한 지금 같은 계절에는 다만 가만히 물 보기 좋은 곳이다. 맹자가 말했다. ‘원천에 근본이 있고 반드시 그 하류의 물길을 본다’고. 관수정의 의미는 여기서 왔다. 여기서 강은 저 아래 멀리에 있고 하늘빛이다. 서원 앞에서 바짝 내려다보았던 푸르죽죽한 강 빛은 외면하기는 쉬워도 잊기는 어렵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화원과 옥포를 지나 현풍, 창녕 방향 5번 국도를 타고 간다. 현풍에서 달성2차 산업단지 안으로 들어가 달성 2차로를 따라가면 이로정이다. 이로정에서 구지면 소재지로 간 후 도동2리 쪽으로 가 강변길로 계속 가면 도동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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