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도 끊임없이 줄 서서 서명해 준 곳은 대구밖에 없었습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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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8   |  발행일 2014-07-18 제36면   |  수정 2014-07-18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서명’ 대구 방문記
“처음엔 보수도시 대구여서 호응해 줄까 걱정
시민들 진심어린 위로에 감동받고 용기 얻어
지하철 참사 유족 만나 동병상련의 정도 나눠”
“평일에도 끊임없이 줄 서서 서명해 준 곳은 대구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들의 유가족이 지난 9일 대구를 방문해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평일에도 끊임없이 줄 서서 서명해 준 곳은 대구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의 유가족이 입고 온 티셔츠에는 26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평일에도 끊임없이 줄 서서 서명해 준 곳은 대구밖에 없었습니다”
고(故) 신승희 학생의 아버지 신현호씨가 휴대폰으로 딸과 문자메시지를 나눴던 글. 승희양이 오전 10시9분까지 삶의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막상 대구에 간다고 하니 다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곳이라 우리를 좋아하지 않을 거란 선입견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대구시민은 오늘 저를 세 번이나 울렸어요.”

태풍 너구리가 오던 지난 9일, 대구를 찾은 세월호참사 단원고 2학년 3반 희생자 유가족 대표 유영민씨(46·혜원이 아빠)가 울먹였다. 유씨는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현장에서 1년 가까이 대구에 머무르며 일을 하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한 어머니가 1만명의 대구시민이 세월호참사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한 용지를 편지와 함께 저에게 건네줬어요. 지난 5월 단원고 2학년 2반 희생자 학부모가 서명을 받으러 왔을 때 그냥 지나쳐서 너무 미안했다고 하더군요. 편지에는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어요. 오후에는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을 만났는데, 제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지 사고를 당해서야 알았다’면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11년이 지나 그분들께 사과를 하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지난 2일부터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이 반별로 전국순회를 하며 서명을 받고 있는데 저희 3반은 지금까지 광주, 전주, 춘천, 원주, 제주를 돌았어요. 평일인데도 이렇게 끊임없이 줄을 서서 서명을 한 데는 대구밖에 없었어요. 역시 대구가 유서 깊은 도시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대구를 찾은 단원고 2학년 3반 희생자의 부모는 모두 18명. 이 가운데에는 3반 담임이었던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도 함께 있었다. 희생자 유족은 숨진 학생들의 이름으로 숫자 ‘3’이 그려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혜원이는 참사 6일 만에 진도 앞바다에서 발견됐습니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 효녀였어요. 제가 지체장애 4급인데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용돈을 많이 줄 수가 없었어요. 혜원이가 한 달 교통비 2만원을 아끼려고 40분이나 걸리는 학교를 매일 걸어 다녔다고 그래요. 그런데도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답니다. 늦은 시간에 차도 안 다니는 횡단보도를 건너 갈 때도 파란불이 아니면 건너가지 않은 아이에요. 그래서 친구들이 혜원이를 보고 ‘거북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대요. 블락비를 좋아했던 착한 딸입니다.”

유 대표는 세월호국정조사에 불만을 표시했다.

“속이 터지고 답답해요. 국정조사를 하려는 건지 하지 않으려는 건지 국회의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싶어요. 국정조사를 하면서 자는 국회의원이 없나 말끝 하나 꼬투리 잡아 국정조사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버티는 국회의원도 있으니 참담해요. 국민들도 보시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세월호참사특별법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건 딱 세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둘째는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셋째는 안전한 국가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신현호씨(44·승희 아빠)는 아내와 함께 대구를 찾았다. 고향 친구가 대구에 더러 있어 대구라는 도시가 낯설지는 않다고 했다.

“승희는 올해 수업료전액면제를 받은 장학생이에요. 장래 목표가 뚜렷하고 매사 똑 부러지는 착한 딸이에요. 사고 당일인 4월16일 오전 9시57분에 통화를 했어요. ‘빨리 배 밖으로 나오라’고 하니 ‘아빠 걱정하지 마. 곧 구조될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게 마지막 통화에요. 10시9분에 ‘구조 될 거야, 꼭. 지금은 한명 움직이면 다 움직여서 절대 안 돼’라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제가 쌍욕을 해서라도 나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흑흑흑.”

신씨는 사고 초기의 슬픔이 이젠 분노로 변했다. 남은 가족도 역시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승희 언니가 고3이에요. 동생과 함께 방을 썼는데 동생 옷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해요. 운전을 하다 네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을 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어요. 멍한 상태였습니다. 유가족 중에 버스운전기사가 한 분 계시는데 이분도 저랑 똑같은 경험을 해 버스회사를 그만뒀어요. 자칫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신씨는 대구시민이 매우 따뜻하게 대해 준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젯밤 늦게 도착해 달서구 월배성당에서 하루를 묵었어요. 우리를 맞이하는 분들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아프더라고요.”

박혜영씨(52·윤민이 아빠)는 남편과 함께 대구에 왔다. 윤민이는 딸 셋 중 막내다. 35세에 낳은 늦둥이라 더 애틋하지만 이번 참사에 희생을 당했다.

“제가 직장을 다니느라 같이 자주 못 놀아 준 게 후회가 돼요. 윤민이가 엄마 걱정 안 시키려고 23일 배에서 나올 때도 목에 학생증을 걸고 나왔어요. 휴대폰도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짐도 제가 싸주지 못 했어요. 캐리어 안에는 중학생 때 학생증도 있었어요. 심성이 착한 아이라 사진을 찍어도 늘 뒤에 서 있는 아이였답니다.”

세월호는 지금까지 304명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 11명이 실종됐다. 실종된 사람은 5명의 학생, 2명의 교사, 1명의 승무원, 3명의 일반승객이다.

“저는 이번 사고가 사실 그대로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대통령께서도, 여야도 특별법에 합의 했잖아요.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박씨는 지금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세상이 사람을 점점 독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김성욱씨(56)는 2학년 3반 담임이었던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다. 김씨는 희생 학생의 부모와 함께 전국을 돌며 세월호특별법 서명을 받고 있다.

“희생 당한 학생들의 부모에게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사고 전날 초원이의 생일이어서 아이들이 함께 모여 사진촬영을 했더군요. 인솔을 잘 못해서 그랬다는 죄책감이 드는데 ‘선생님이 뭘 잘 못했어요’ 하니 더 슬프죠.”

현재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희생자 학생들은 함께 납골당에 있다.

이날 오후 유족들은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가 마련한 저녁식사를 하고 밤 늦게 청주로 출발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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