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로 세계문학상 받은 정재민 대구가정법원 판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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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8   |  발행일 2014-07-18 제37면   |  수정 2015-01-30
판사와 소설가…거짓 속에서 진실 찾으니 둘은 닮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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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대구가정법원 판사가 대구지법 서부지원 정문 화단에 있는 동상 앞에서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명한 화가다. 하지만 그는 의학, 물리, 천문, 지리 등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알버트 슈바이처 역시 훌륭한 의사였지만 신학자이자 철학자였으며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였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팔방미인이 많다. 세종대왕과 정약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 뛰어난 재능과 솜씨를 가진 사람을 일컬어 르네상스맨, 혹은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숨겨진 재능을 가지고 있다. 신은 인간에게 한 가지의 재능만을 준 건 아니다. 각자가 재능을 발견해 꾸준히 갈고닦으면 멋진 보석이 될 수 있다.

정재민 대구가정법원 판사(37).

그는 현직판사이자 소설가다. 지난달 ‘보헤미안 랩소디’로 세계문학상을 받아 문단을 놀라게 했다. 그는 또한 ‘독도판사’로 불릴 만큼 독도문제전문가다. 2009년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출간해 사법부 사상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독도법률자문관’자격으로 외교부에 파견되기도 했다.

정 판사는 법관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점에서 법관과 소설가는 닮았다. 양쪽 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가 텍스트와 기술을 압도한다”고 했다.

지난 10일 대구가정법원에서 그를 만났다. 온화하고 차분한 이미지, 그러면서 바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법관생활과 글쓰기
글 쓸 시간 늘 부족하지만
골프·음주 등 멀리하고
그 시간에 글쓰기 매달려

독도 전문가
군법무관 시절 본격 연구
2009년作 ‘독도 인 더…’
외교부 간부들 필독서로

전업작가는…
소설만 쓴다면 끔찍할 듯
판사직업 갈수록 사명감
올바른 판결 내리는 데
글쓰기 작업 큰 도움 줘

-늦었지만 수상을 축하한다. 언제,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됐나.

“대학(서울법대) 3학년 때 독문학 수업을 듣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유희’를 보게 됐다. 처음엔 유리알이 뭔지 몰랐다. ‘유리알유희’는 종교와 사상, 문학과 예술 등 정신적 문명을 통합하는 그 무엇이다. 나도 유리알유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법시험엔 언제 합격했나. 고시공부를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5학년 재학 중에 됐다. 공부에만 열중한다고 공부가 잘되는 건 아니다. 짬짬이 습작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공부에 도움이 되더라.”

-첫 작품은 무엇인가.

“사법연수원 시절 ‘배려’란 단편소설을 썼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신춘문예와 대학 내 문학상에 출품했는데 다 떨어졌다. 그런데 후에 행정자치부 문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엄청 기뻤는데, 말 그대로 장려가 됐다.”

-어릴 때 글쓰기를 좋아했나.

“수학이나 과학에는 흥미가 많았는데 국어는 사실 재미가 없었다. 책읽기는 좋아했으나 글을 써서 상을 타리란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고등학교(포항제철고) 때 문예반을 했는데. 원해서 한 건 아니고 배치됐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웃음)

-그다음에 쓴 소설은 무엇인가.

“2004년 군법무관을 하면서 ‘농땡이 사법연수생의 짜장면 비비는 법’이란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경험한 현실과 허구를 섞어 만든 소설이다. 연수원 시절은 숨이 막히고 빡빡했다.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지만 재미있게 썼다.”

-얼마쯤 팔렸나.

“2쇄까지 찍었고, KBS라디오극장 극화로 한 달 간 방송됐다. 드라마로 제작사에 판권이 팔렸는데 드라마로 제작되진 못 했다. 나중에 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그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는 것을 알고 기뻤다.”

-세 번째 소설이 2009년에 펴낸 ‘독도 인 더 헤이그’인 걸로 알고 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2009년 한·일 간 독도국제소송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본명 대신 하지환이라는 필명으로 냈다. 독도문제로 한국과 일본정부가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는 내용을 다뤘는데, 주인공은 여자외교관이다. 법정에서 한·일 간 불꽃 튀는 공방을 하면서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이다. 일본이 어느 날 독도를 포위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한국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ICJ로 갈 수밖에 없었다.”

-독도에 가보고 썼나.

“아니다. 소설을 쓰고 난 뒤 한 번 가보았다.”

-언제부터 독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나.

“군법무관 시절 국제정책팀에서 일을 했다. 보통 1년만 하는 자리인데 1년을 더하라고 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2년간 했다. 국제정책은 국방부의 핵심적인 자리다. 독도분쟁이 생기면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답변을 해야 했는데 답변 자료를 준비하다 독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연구를 해보니 어떻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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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나 상당히 복잡했다. 양국의 역사가 얽혀있어 더 그러하다. 섣불리 건드려선 안 될 일이다. 일반대중에 독도에 관한 사실을 알리려면 소설로 발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더욱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독도교육용 부교재로 사용해도 될 만큼 쉽게 쓰고 싶었다.”

-사법부에서 어떻게 외교부로 파견근무를 가게 됐나.

“2009년 책이 나왔는데 2011년 초 지금 네덜란드대사로 재직하고 있는 이기철 대사가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면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 자연스레 외교부 간부들에게 소설이 알려지고 ‘독도 인 더 헤이그’가 필독서가 됐다고 들었다. 이후 외교부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으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법원에서 이례적으로 배려해 주었다. 1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돼 있었는데 1년이 더 연장돼 외교부에서 2013년까지 일했다.”

-주로 어떤 일을 했나.

“독도와 일본군강제위안부에 관한 국제법적인 연구를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2012년 서울에 생겼다. 그때 한국현대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집필진은 전문분야별로 10명이 초빙됐다. 나는 독도에 대해 썼다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가 그 결과물이다. 역사박물관에도 비치돼 있고 서점에서도 판다. 독도에 관한 대부분의 책은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 쓰인 게 많은데 난 객관적으로 쓰고자 했다. 대중에 과장된 논리로 역사와 법을 비약시키면 안 된다. 이 책에는 독도뿐만 아니라 한·일 근현대사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일본의 아베 내각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해석을 변경함으로써 독도에 무력으로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럴 경우의 수는 낮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명박정부 때 외교부서에서 일을 했는데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본 자민당과 아베의 집권, 평화헌법 수정 등을 소설 속에서 예견했다. 소설이 현실화되는 상황이 소름끼칠 정도다.”

-소설 ‘이사부’는 언제 썼나.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법관생활을 하면서 썼다. 단순히 우산국을 정벌한 ‘신라장군 이사부’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 그는 대단한 인물이다. 신라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한 진흥왕이 6살 때 즉위했는데, 이사부는 그때부터 20년간 병부령(국방부장관)을 했다. 이사부는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와 연인관계다. 이사부는 또 미실의 시아버지이며, 이차돈의 삼촌이다. 이사부가 없었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계기로 이사부를 쓰게 됐나. 역사소설인데.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 이사부에 천착하게 됐다. 쓰는 과정에서 이사부에 관한 소설이 나오긴 했어도 그간 이사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하나 없더라. 인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어쩌면 도자기 같은 역사유물을 발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이사부’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독도 인 더 헤이그’로 여러 문학상에 응모했는데 다 떨어졌다. 6~7년간 공을 들여 썼는데도 그랬다(그는 지금도 11년째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수정해 쓰고 있는 중이다). 이후 책을 낸 다음에야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이 처음 생겼다. 만약 문학상이 ‘독도 인 더 헤이그’가 나오기 전에 생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다. 이사부는 4개월간 썼는데 주말과 휴일 바다를 보면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썼다.”

-상금이 1억원이었다. 어디에 썼나.

“재산이 처음으로 플러스가 됐다.(웃음) 빚도 갚고, 포항 쪽에 상금의 일부를 기부했다.”

-법관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닐 텐데.

“소설을 낼 때마다 흰머리가 한 움큼씩 늘어난다. 책을 내고 나면 다시는 안 쓰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다. 사실 쓸 시간이 늘 부족하다. 남들은 언제 글을 쓰느냐고 하는데 골프, 당구 같은 잡기를 하지 않고 음주 같은 걸 좋아하지 않으니 그 시간에 글을 쓴다.”

-재판과 글쓰기 말고 하는 일은.

“산책이나 명상, 수영을 한다.”

-지난달 ‘보헤미안 랩소디’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어떤 소설인가.

“대학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일기장을 남겼다. 그 일기장의 문장을 소설로 쓴 것이다. 10년전 제1회 세계문학상 때 작가를 선망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공동저자명으로 ‘기린의 죽음’을 응모했지만 낙선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기린의 죽음’을 깊이 있게 내면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록그룹 ‘퀸’의 대표작이다. 책 제목을 보헤미안 랩소디로 한 이유는.

“어릴 때 보헤미안 랩소디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소개됐다. 이 음반은 원래 1975년에 나온 것인데 영국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다. 91년 미국 빌보드차트에서 다시 2위를 했는데 너무도 인상 깊게 들었다. 소설이 출간되고 배철수씨와 통화도 했다. 이 책은 소리에 대한 집중이 많은 책이다. 사실 목소리를 들어야 영혼과 접촉하는 느낌이 든다. 눈빛도 중요하지만 목소리도 중요하다. 영혼은 신이 사람에게 불어넣은 숨결이고, 숨결은 목소리에 담긴다.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담겨 있다. 소설에도 그런 모티프가 있다. 소설과 관련해 심사위원으로부터 독창성과 가독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내용인가.

“소설은 판사 하지환이 어머니가 의료사고로 사망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사회의 불의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이야기다. 뜻을 이루지 못한 하지환은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을 짓눌렀던 억압의 실체를 짚는데 실제 자전적 소설이다. 지난 10년간 사기꾼 의사도 만나고, 여러 충격적인 일을 많이 겪었다. 재판을 잘하기 위해 정신분석기관에서 정신분석가로부터 정신분석 상담도 1년 정도 받았다. 재판을 하는데 있어 심리학이 도움이 되더라. 타인을 잘 보려면 트라우마나 왜곡이 없어야 한다. 재판을 하면서 문학적으로 도움이 됐다. 사회의 부정이나 불의를 다룬 소설은 많은데, 이 소설은 불의한 사회 속에 처한 개인의 내면과 무의식을 정신분석학을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전업 작가로 전환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소설만 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웃음) 판사란 직업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진다. 사람을 만나면 진면목을 보기 어려운데 재판정에선 굉장히 내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판사는 일종의 감정노동자다. 인간을 깊고 폭넓게 이해해야 하니 문학과 재판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소설을 쓸 때 가까운 사람은 말리고, 멀리 있는 사람은 ‘판결문이나 잘 쓰지’라고 비웃었는데 순수문학상을 받고 나니 위로가 됐다. 아내도 내가 글쓰는 재주가 없다고 했는데 대우가 달라지더라. 이젠 주변에서 비웃지 않는다.”(웃음)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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