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새마을운동 경북을 넘어 세계로! .2] 필리핀 산타크루즈市 롬보이 마을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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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3   |  발행일 2014-07-23 제13면   |  수정 2014-07-23
화려한 수도에 가린 오지마을…‘새마을’로 희망이 싹튼다

지난 15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외국인인 기자에게 비친 마닐라의 첫 모습은 높은 빌딩과 수많은 상점, 도로 위에 넘쳐나는 차들이었다. 그러나 복잡하고 화려한 마닐라는 필리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9시간여를 달렸다.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필리핀의 광활한 자연과 전통적인 가옥형태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치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 같았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지고, 거친 비바람에 시야는 흐려졌다. 도로 곳곳에 생긴 누런 물웅덩이에 차 바퀴가 푹푹 빠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과 바다는 무서울 정도로 물이 불어나 있었다.

태풍이 온 것이다.

최근 경북도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로 지정된 필리핀 잠발레스주 산타크루즈시 롬보이 마을로 가는 길은 이처럼 멀고도 험했다.


주민 절반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사
아플 땐 자전거로 직접 시내까지 가야…
한국 최신 농업기술 도입 기대감 나타내


◆ 하늘만 의지하는 천수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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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보이 마을 입구에는 경북도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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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아친 롬보이 마을 도로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취재진의 운전기사가 나무를 치우고 있다.

롬보이 마을은 산타크루즈시 중심가에서 6.2㎞가량 떨어져 있다. 롬보이 마을은 인근 지역 주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다.

마을까지 가는 버스 등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현지인은 주로 차나 트라이시클(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교통수단)을 타고 가야 한다. 그나마도 차나 트라이시클을 탈 수 있는 주민은 형편이 좋은 이들이다.

차를 타고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반가운 팻말이 보였다. ‘Saemaeul Undong Model Barangay’. ‘바랑가이(Barangay)’는 우리나라 동(洞)보다 약간 큰 행정구역 단위로, 롬보이 마을이 지난해부터 새마을운동 농촌시범마을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팻말이었다.

필리핀을 덮친 태풍 ‘람마순’의 영향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롬보이 마을로 가는 도로는 태풍이 한바탕 할퀴고 간 뒤였다. 사람이 오가는 길 위에 나무가 쓰러져 있었지만, 누구하나 치우지 않았다. 강풍이 지나간 뒤 다른 나무도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도로 위에 뿌리째 쓰러져 있는 나무 몇 그루를 치우고 나서야 마을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을은 그야말로 오지였다. 덩그러니 서있는 학교 이외에 마켓이나 보건소 등의 생활 편의시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롬보이 주민은 몸이라도 아프면 산타크루즈시 중심가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롬보이 마을의 인구 수는 420여 가구, 17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농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농업용수 공급이 안정적인 곳은 전체 경지면적(229.43㏊)의 절반가량인 125.23㏊에 불과했다. 마을 주민 절반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사’를 짓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소나 닭, 돼지 등을 키우지만 소규모인 탓에 가축도 이렇다 할 소득원이 되지 못했다.


◆ 굶주림과 가난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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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보이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구역의 아이들. 이곳에는 배가 고파 망고나무의 농약가루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롬보이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 예닐곱살 정도된 여자아이가 길 한중간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는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집이 60% 미만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마을 아무 곳에서 대소변을 해결한다. 당연히 위생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벽돌과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다 쓰러져가는 집 안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 구역이 우리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입니다.” 마을 이장이 설명했다.

대나무 자르는 일을 하는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기 일쑤고, 어머니는 도망을 친 탓에 아이들은 거의 고아처럼 지낸다고 했다. 또 이곳의 집은 홍수라도 나면 창문까지 물이 찰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예전에 이 구역에 사는 아이들 몇 명이 망고나무에 치는 농약가루를 먹고 죽었대요. 흰 농약가루를 우유가루로 착각해서 먹은 거죠. 너무 배가 고파서….” 취재진과 동행한 산타크루즈시 공무원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 다른 가정집을 찾았다. 아직 19세밖에 되지 않은 여성이 두 아이를 안고 있었다.

한국에선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아이 엄마가 된 것. 피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낙태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린 나이부터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은 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가난한 사정 탓에 아이들은 공부를 많이 못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 다시 부모가 되고….’ 롬보이 마을을 비롯한 필리핀 오지에선 이렇게 오랫동안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 당신은 우리의 희망

기나긴 가난과 절망의 역사를 가진 롬보이 마을에도 조금씩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새마을봉사단원인 박춘근씨(66)가 올 봄부터 롬보이 마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다음달부턴 새마을리더 해외봉사단 4명이 더 투입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북도 농업기술원에서 20여년을 근무한 박씨는 지난 2월부터 숙소인 산타크루즈시와 롬보이 마을을 부지런히 오가며 봉사의 터를 닦고 있다.

박씨는 영농교육과 마을 기반조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산타크루즈시에서 만난 많은 필리핀인이 박씨와 새마을봉사단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롬보이 마을 이장 도밍고 마키오씨(63)는 “봉사단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마을 사람이 협조를 하며 잘 따르고 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마을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코린 마티 산타크루즈 시장(60)도 새마을봉사단의 활동에 큰 기대감을 보였다.

시장실에서 만난 코린 시장은 “롬보이 마을의 소득은 산타크루즈시 25개 마을 중에서도 매우 낮은 편이다. 롬보이 마을에 한국의 최신 농업기술이 도입되면 농사를 훨씬 잘 짓고 소득도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가난하고 못사는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영된 것’이라고 정의한 코린 시장은 새마을봉사단이 앞으로 롬보이 마을 아이에게 한국의 교육방식을 전수해주기를 희망했다.

그는 “지금껏 롬보이 아이들은 대부분 자라서 단순 노동자가 되거나 살 길을 찾아 마을을 떠나야 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곳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직업을 갖고, 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사진=필리핀 산타크루즈시에서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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