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3] 안동 정재종가 ‘송화주’

  • 김봉규
  • |
  • 입력 2014-07-24   |  발행일 2014-07-24 제18면   |  수정 2014-07-24
은은한 솔향과 국화향, 손님 반기는 종부의 마음같네
20140724
정재종가 김영한 종부가 가양주인 ‘송화주’와 함께 차린 술상. 육회, 청포채, 견과류 등이 안주로 오른다. <정재종가 제공>
20140724

정재(定齋) 류치명(1777~1861) 가문의 종택인 정재종택(안동시 임동면 경동로)은 임하호가 내려다보이는 구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류치명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계승, 18세기 영남 성리학을 꽃피운 대학자다.

정재종택 건물은 류치명의 고조부인 양파(陽坡) 류관현(1692~1764)이 1735년에 창건했다. 그래서 ‘양파구려(陽坡舊廬)’로도 불리었고, 그 편액이 지금도 걸려 있다. 원래 종택건물은 임동면 한들에 있었으나, 임하댐이 생기면서 1987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됐다.

종택은 넓은 마당과 대문채,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종택 근처에 정자 만우정(晩愚亭)이 있는데, 이 정자는 류치명 생존 당시에 그의 문인과 자제들이 건립했다. 류치명이 만년에 독서를 하고 후학들과 학문을 토론하던 공간이었다.

정재종택에는 현재 류치명의 6대손인 류성호 종손 부부가 살고 있다. 종손 부부는 텃밭을 일구고 종택을 돌보면서, 정재 류치명(불천위)의 제사를 비롯한 조상들의 제사를 모시며 종가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이 정재종가의 종부들이 200년이 넘게 대를 이어오며 빚어온 가양주가 있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송화주’다.


◆ 200여년 동안 대를 이어 빚어온 가양주

20140724
20140724
맑은 갈색을 띠는 송화주. 알코올 도수는 16도 정도 된다.

정재종가에서 대를 이어오며 빚고 있는 가양주는 현재 ‘송화주(松花酒)’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1993년에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송화’라는 이름 때문에 소나무 꽃을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는 소나무 꽃인 송화(松花)가 아니라 솔잎을 사용하고 있다. 솔잎과 함께 국화 등의 꽃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나무 ‘송(松)’자와 꽃 ‘화(花)’자를 합해 송화주로 지은 것이다. 당시 급하게 정한 이름인데, 적절한 명칭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류성호 종손의 설명이다.


가을에 말린 국화와 솔잎 넣고
200여년 전통 그대로 담근 술
빚는 데만 3개월 정성 가득

찬물에 섞어 마시는 이화주
여름철 별미로 즐겨


정재종가 가양주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정재 류치명이 생존할 당시부터 빚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한 종부(1953년생)는 정재종택을 처음 지은 양파 류관현 생존 당시부터 빚기 시작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가양주는 김영한 종부가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빚어 제주(祭酒)와 손님접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판매용으로는 빚지도 않고, ‘송화주’ 이름을 단 술병도 따로 없다.

김영한 종부는 별세한 시어머니(이숙경)로부터 가양주 빚는 법을 전수했다. 이숙경 전 종부는 또 그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다.

다른 종가도 비슷했겠지만 정재종가는 특히 그 가양주가 맛이 좋아 정재종택을 찾는 친척이나 손님들 사이에 유명했다고 한다. 정재종가는 그런 좋은 술을 빚고 그 술과 함께 차려 내는 술상을 마련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김영한 종부가 처음 시집와서 법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술상을 준비했을 때, 서툰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어머니가 술상을 보고는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술상을 절대 함부로 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준 적이 있다고 종부가 들려줬다. 집안의 범절을 나타내는 것인 만큼 술상 차리는 일을 각별히 신경 쓰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가양주는 봄과 가을에 주로 담그지만, 여름에도 접빈용으로 담그기도 했다. 예전에는 담그는 양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송화주를 빚는 데는 3개월 정도 걸리는데, 전통방식으로 재료를 장만하고 발효를 시키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이숙경 전 종부는 1963년 길사(吉祀: 종가에서 종손이 부친 3년상을 마친 후 사당에 모시는 조상의 신위를 세대교체할 때 지내는 제례) 때 600여명의 손님에게 가양주를 빚어 접대한 일도 있었다. 종택을 찾는, 수많은 손님을 위해 엄청난 양의 가양주를 빚어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을까 싶다.

김영한 종부는 그런 과정을 보고 겪으면서 시어머니가 별세하고 나면 가양주 담그는 일은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물론 종가문화를 지키는 소중한 일로 생각하고, 며느리와 자식들에게도 가르치며 가양주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다.


◆ 가양주 빚는 법과 술 안주

송화주 재료는 멥쌀과 찹쌀, 누룩, 솔잎, 재래종 야생 국화 등이다. 국화는 가을에 종택 주변에 핀 꽃을 따서 말린 뒤 사용한다. 이맘때 술을 담그는 경우에는 이 시기에 피는 금은화(인동초꽃)를 사용하기도 한다.

술은 밑술과 덧술 두 차례에 걸쳐 담근다. 먼저 멥쌀 고두밥과 누룩으로 밑술을 담가 3일 정도 발효시킨다. 3일 후 이 밑술에다 찹쌀과 멥쌀로 찐 고두밥, 솔잎, 국화 등을 섞어 덧술을 담근다. 2~3주 발효시킨 후 술독에 용수(맑은 술을 거르는 도구인데 대나무로 만듦)를 박아둔 채 숙성을 기다린다. 덧술 숙성은 3개월 정도 걸린다.

술의 도수는 14~18도 되는 청주. 청주와 함께 도수가 50도 정도 되는 증류주(소주)로 뽑아 사용하기도 한다.

맑은 갈색 빛깔의 청주의 술맛은 감칠맛이 도는 가운데 솔향과 국화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솔향이 배어나는 소주 맛도 아주 좋다. 송화주는 쌀 한 말을 쓰면 7되 정도 나온다.

40여 년간 매년 술을 서너 차례 빚어온 김영한 종부는 모든 과정에 노하우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온도와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매번 술 빚는 일이나 발효시키는 일이 언제나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재종가는 가양주 담그는 전 과정이 전통 방식을 따르고, 도구도 옛날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종택 안채에 있는 한 창고를 보니 거름망인 체를 비롯해 용수, 주걱, 멍석 등 가양주 담그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 가득했다. 빚은 지 오래된 송화주도 있고, 소주도 있었다. 지난 가을에 채취해 말린 국화도 유리병에 가득했다. 오랜 가양주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송화주 안주로는 육회, 청포채, 참가오리회, 견과류 등을 장만해 내놓는다.

김영한 종부는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무조건 가양주 술상을 내놓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과상을 내는 경우가 더 많다. 당일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간혹 자고 가는 손님이 오면 술상을 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 또 다른 가양주 ‘이화주’

여름 술로 ‘이화주’가 있다. 이화주라는 이름은 술이 배꽃같이 희어서, 또는 누룩 만드는 시기가 배꽃 필 무렵이어서 붙인 것이라 한다.

이화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빚은 술로 빛깔이 희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할 정도로 걸쭉하다. 된죽과 같아 그냥 떠먹기도 하고, 한여름에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 특별한 술이다. 보통 술과 달리 멥쌀로 누룩을 만드는 데다 멥쌀가루로 구멍떡이나 설기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유기산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정재종가는 여름 술로 이 이화주를 담가 사용한다. 늦은 봄에 멥쌀 누룩과 멥쌀을 주재료로 해 담가 1~2개월 숙성시켜 완성한다. 알코올 도수는 4도 정도이고 가족이 여름 술로 즐기며,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한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