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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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5   |  발행일 2014-07-25 제38면   |  수정 2014-07-25
옛길, 유쾌하거나 인정스럽거나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이야기가 있는 옛길의 담장은 다양한 벽화로 꾸몄다. 자전거 바퀴는 폐자재를 이용한 것.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골목길 모서리마다 작은 포켓 정원이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수원 화성의 장안동과 신풍동은 사람중심의 생태교통 마을을 꿈꾼다. 특화거리에 위치한 문화공간과 조형물.

창문을 열면 성곽이 보인다. 집들은 낮고 골목은 좁다. 그래서 햇살을 오래 머금는 마당은 꽃과 나무가 풍성하다. 오래전에는 선비들이 살았다. 이후 세계문화유산인 성곽에 둘러싸여 개발이 제한되었기에 정취는 보존되었고 발전의 시각에서는 낙후되었다. 수원 화성의 신풍동과 장안동은 그런 곳이었다.


◆ 이야기가 있는 옛길

신풍동은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왔다. 신풍골, 신풍리라고도 했다. 장안동은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에서 왔다. 장안문의 남서쪽에 자리한 동네가 장안동이다. 신풍동과 장안동은 옆구리를 딱 붙이고 있는데, 그 꼭짓점인 신풍루 앞의 행궁 광장과 장안문, 서문인 화서문을 연결하면 거의 삼각형 모양이 된다. 여기에는, 화성을 축성할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화성을 짓기 전, 정조는 팔달산에 올라 산 아래 장안동 일대를 바라보았다. 천호가 넘는 민가와 5천명이 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성을 건설하려면, 저 집들을 헐어야 했다. 왕은 말했다. “성을 세 번 구부렸다 폈다 해서라도 장안동 일대의 민가를 모두 성 안으로 수용하라.” 그때부터의 길이다.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고, 왕이 행차하던 길이다. 18세기부터 오늘까지, 수백 년 거듭된 걸음으로 다져진 길이다. 그러니 역사와 상상력이 동원된 마음으로는 낙후와 정취의 모호한 시소타기에서 정취 쪽으로 조금 더 기우는 게 본심이다.



마을 사람들도 그랬을까. 그 오래된 길에 이름을 주고 이야기가 있는 옛길로 단장했다. 장안문 옛길, 화서문 옛길이 그것이고, 나혜석 옛길도 여기에 속한다. 이 세 개의 옛길은 교차되기도 하고, 하나의 길에서 다른 길이 시작되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통과하기도 한다.

골목길의 담벼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폐자재를 이용한 유쾌한 작품들도 있다. 길바닥에는 사방놀이 판이 그려져 있고, 벽 그림 속의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다. 길 모서리마다 아주 작은 포켓정원이 가꾸어져 있다. 담장을 허물고 녹지로 개방한 곳, 가건물을 철거해 공원으로 만든 곳도 있다. 군데군데 놓인 평상은 공동체와 소통을 말한다. 어느 집 담장은 매끄당한 호박을 달롱달롱 메고 있다. 그림일까 진짤까 싶은 진짜 꽃도 있고 진짤까 그림일까 싶은 꽃그림도 있다.



단장된 골목에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손길이다. 그것은 정성을 뜻한다. 기침이나 사랑처럼 금세 알아볼 수 있는, 따뜻함을 뜻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특화거리인 신풍로 옆에 위치한 화령전.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수원 장안동과 신풍동
행궁광장 옆 건물에서 ET와 엘리어트가 자전거를 타고 날아간다.

◆ 사람중심의 생태교통마을을 꿈꾸는, 화서문로와 신풍로

이야기가 있는 옛길의 조성은 2013년 장안동과 신풍동이 ‘생태교통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다. 생태교통 시범이란 화석 연료가 고갈된 상황을 실제로 실험해보는 일종의 ‘불편 체험’으로 수원시와 이클레이(ICLEI, 세계 지방정부), 유엔-해비타트(UN-Habitat, 인간주거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행사였다.



옛길의 재생과 함께 장안동과 신풍동의 큰길 격인 화서문로와 신풍로에 특화거리도 만들어졌다. 차가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는 곡선의 좁은 차도와, 아주 널찍하구나 싶은 인도가 설치되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꽃 화분이 놓였다. 길가에는 그늘을 드리우는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심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던 전선은 지하로 들어갔고, 거리의 가겟집들은 산뜻하게 정비되었다. 특화거리와 옛길이 만나는 작은 공간 6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놓였고, 자전거와 느림보 거북이 등의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리고 2013년 9월 한 달 동안 4천300명의 주민과 그들의 자동차 1천500대, 그리고 100만명의 방문객이 차 없는 ‘불편체험’에 동참했다 한다. 지금은 물론 화서문로와 신풍로에 차가 달린다. 조금은 느리게.

신풍로와 화서문로에는 행궁아트센터와 수원시민소극장, 신풍초등학교와 정조의 영전이었던 화령전이 있다. 이층 양옥집을 개조한 새마을문고와 행궁동 주민센터, 수원 문학인의 집, 그리고 누구나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문화공간인 행궁동 문화슈퍼도 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달려 나오고 자전거 탄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따금 자동차도 지나간다.

길은 그 자체로 마을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박하고 예쁜 드라마 같다. 차 없는 마을을 유지하자는 여론도 있고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과 반발도 있다. 수원시는 2011년부터 사람중심, 보행중심, 녹색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어왔고, 장안동과 신풍동의 내일은 주민들의 합의에 맡겼다.


여행정보

대구에서 수원까지는 기차가 편리하다. 수원역에서 화성행궁까지는 버스로 30분, 택시로 5천원 미만 정도의 거리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수원역 앞에서 버스 13번을 타고 팔달구청, 화성행궁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행궁광장 옆 정조로를 따라 올라가면 신풍로 초입인 행궁아트센터가 있고, 마을 안내도를 바로 찾을 수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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