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의 걷기 여행 .5] ‘文鄕의 길’ 외씨버선길 영양구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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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5   |  발행일 2014-07-25 제39면   |  수정 2015-01-30
그대 이 길 걷노라면 시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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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집에서 본 ‘장계향 예절관’



● 제4구간(장계향 디미방길·18.3㎞)=청송군 진보면 고현지∼지경마을~두들마을~옥계1리~옥계지~임도삼거리~입암면사무소~선바위관광지

● 제5구간(오일도 시인의 길·11.5㎞)=선바위관광지~산촌생활박물관~학초정~감천마을(오일도생가)~성황당~영양전통시장(영양객주)

●제6구간(조지훈문학길·13.7㎞)=영양전통시장~삼지 연꽃 테마단지~상원3리 마을회관~일월삼거리~이곡교~조지훈 문학관의 주실마을(注谷)

● 아름다운 주실쑤(숲) 지나면 18㎞의 연결구간

● 제7구간(치유의길·8.3㎞)=일월산 자생화공원∼아름다운 숲길 입구~칡밭목 삼거리~우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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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생가가 있는 영양 주실마을 입구의 아름다운 주실쑤(숲). 오른쪽이 주실쑤이며 왼쪽엔 잘 정비된 걷기길이 있다. 주실쑤는 2008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영양사람들은 일월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반변천 맑은 물을 젖줄로 살아가는데, 외씨버선길 영양구간은 모두 5구간(4·5·6·연결·7구간)으로 연장 69.8㎞다.

각 구간의 탐방 명소는 다음과 같다. △제4구간 ‘장계향 디미방길’=만지송(萬枝松), 두들마을의 석계고택, 광산문우, 예절체험관, 음식디미방(知味方) 등 △제5구간 ‘오일도 시인의 길’=선바위(立巖)관광지, 학초정, 오일도 생가와 시공원, 서석지(瑞石池), 봉감5층전탑(鳳甘五層塼塔) 등 △제6구간 ‘조지훈문학길’=주실 마을 호은종택, 옥천종택, 월록서당, 주실쑤(숲), 방우산장, 지훈 시 공원, 조지훈 문학관 등 △제7구간 ‘치유의 길’=희망우체통, 우련전(영양터널 끝 지점, 천주교 성지), 일월산 일자봉, 월자봉, 황씨부인당 등


◆이문열

강준만이 ‘이문열을 보면 한국사회가 보인다’며 이문열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문열이 민주화세력이나 좌파세력으로부터 받는 냉소와 불신은 그의 불행한 성장배경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문열은 영양 두들마을의 재령이씨 석계공파 후손으로 짱짱한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에서 출생하여 부친이 월북한 후 안동, 밀양, 서울 등지를 오가며 성장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에 부친의 월북에 따른 연좌제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고통은 성장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변경’이나 ‘영웅시대’도 자전적인 소설인데, 표면적으로는 매력적이고 정의롭지만 매우 교활한 공산주의의 이면을 부각시키면서 아버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변경’은 광복 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사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조정래의 ‘한강’과 대비하여 자주 거론되는 작품이다. ‘한강’과 비교하면 시대상황을 이해하는 작가의 시각이 좁고, 등장인물의 범위가 가족사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념의 한계가 느껴진다. 조정래가 아버지를 극복하고 시대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 데 비해 이문열은 부친의 덫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보다는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가 역사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들은 공지영이나 이외수를 멘토라 부르며 칭송하고, 이문열을 보수꼴통으로 비하한다. 하지만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 ‘금시조’ ‘새하곡’ ‘그해 겨울’ ‘들소’ ‘시인’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 ‘황제를 위하여’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은 여전히 소설적인 기교나 구성이 뛰어나고 자신의 내면풍경, 부조리한 삶, 실존적인 번민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두들’이나 ‘둔덕’은 언덕을 뜻하는 사투리인데, 두들마을은 1640년 석계 이시명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사직하고 내려와 정착한 재령이씨 집성촌이다. 평평한 언덕에 위치한 두들 마을에 가면 이문열의 집 바로 뒷집이 장계향의 집이다. 17세기에 최초의 한글 조리서를 쓴 장계향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경상도 지방의 음식 146가지의 요리법을 과학적으로 쓴 책이다. 장계향은 시서화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두들마을에는 ‘음식디미방 체험관’ ‘여중군자 장계향 예절관’ 등이 있어 요리법이나 예절교육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문열의 소설 ‘선택’은 뒷집에 살았던 장계향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선택’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하여 아들을 이조판서로 길러낸 안동 장씨를 주인공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이문열의 시각이 문제가 된다.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으며, 가부장적인 사고로 삼종지도(三從之道)나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족쇄를 현대여성에게 지나치게 강요한다고 혹평하며, 페미니스트들은 반페미니즘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라 부르고,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서처럼 이문열 또한 마초기질의 작가라 폄훼한다.

두들마을에 가면 이문열 문학연구소라 할 수 있는 ‘광산문우(匡山文宇)’가 있고, 북카페 ‘두들책사랑’이 있다. 두들마을의 마을길을 따라 걸으면 마을 전체가 진한 문향(文香)이 풍겨 나오고, 고택의 엄숙함으로 걸음걸이가 단정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음식디미방의 맛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고, 정부인 장계향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은 한적하고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이 은은히 퍼져 나그네의 피로가 가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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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도 시 공원’ 전경. 낙안오씨 집성촌인 감천마을 옆에 있다. 앞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조성돼 있고, 못 가엔 소나무가 자태를 뽐낸다.

◆조지훈

학창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조지훈의 글 두 편이 있었다. 수필 ‘지조론’과 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가 그것이다. “지조라는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로 시작되는 그의 수필 ‘지조론’과 4·19혁명 다음날 써서 고려대 신문에 실린 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를 읽으며 가슴 설레던 추억이 새롭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 ‘늬들 마음을 우리는 안다’는 4·19 당시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피 흘리며 죽어간 기개 있는 학생에 비해 늙어가면서 정신마저 썩어가는 스승의 뉘우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따리 장수하던 자신의 기개 없음을 고백하기도 하고, 쉬쉬하며 침묵하던 자신의 비겁을 꾸짖으면서 자유당의 부정에 맞선 젊은이들의 용기를 찬양하고 있다.

조지훈은 ‘고풍의상’으로 정지용이 추천해 문단에 등단했고 ‘승무’ ‘봉황수’ ‘낙화’ ‘석문’ 등을 대표작으로 하는 청록파 시인이다. 그가 평생의 사표로 삼은 분은 한말의 꼿꼿한 선비였던 매천 황현(黃玹)과 시인이자 스님인 만해 한용운(韓龍雲)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병사한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의 시신이 일본경찰의 감시와 보복이 두려워 방치되어 있었는데, 만해가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때 당시 17세의 조지훈이 장례식에 참석한 일화는 유명하다. 장인 김성규(金性奎)도 지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훈은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의 김위남(金渭男, 필명 金蘭姬)과 혼인하는데 신혼기에 예안김씨(선성김씨) 집성촌인 처가 무섬마을을 자주 찾았다. 장인 김성규는 아도서숙(亞島書塾)을 설립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였고, 무섬마을의 분위기나 항일의식은 지훈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무섬마을을 배경으로 남긴 작품이 애틋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시 ‘별리(別離)’이다. 조지훈문학관에 가면 서화가인 부인 김난희 여사의 글씨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주실 마을의 호은종택이 조지훈의 태실(생가)이고, 지훈은 어릴 때부터 주실쑤 앞에 있는 월록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는데, 일제강점기의 어려움과 6·25전쟁 당시 조부의 자결 등을 목격하고 꼿꼿한 선비의 정신을 자연스레 배운 것 같다. 조지훈은 불교에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여 20대 초반에 오대산 월정사 불교전문강원 강사도 역임했다. 선의 세계를 노래하거나 역사적인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고전적인 미를 노래한 시는 이러한 그의 체험과 선비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조지훈의 부끄러움 없는 삶의 행적에서 그는 고려대인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여겨지며, 그가 죽은 40여년이 흐른 2010년부터 고려대는 주실 마을 인근에 고려대연수원 건립을 계획하여 조성 중에 있다.

지훈은 멋을 알고 술을 즐긴 애주가였는데, 바둑의 급수체계와 비슷한 ‘주도유단론(酒道有段論)’을 써서 술꾼의 등급을 18단계(불주, 외주, 민주, 은주, 상주, 색주, 수주, 반주, 학주, 애주, 기주, 탐주, 폭주, 장주, 석주, 낙주, 관주, 폐주)로 분류하여 애주가들에게 음주의 이론적인 기반을 주고 있으며, 애주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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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마을 중앙에 있는 ‘호은종택’. 시인 조지훈의 태실(생가)이다.

◆일월산에서-조지훈의 시 ‘석문(石門)’

미당 서정주(徐廷柱)는 전북 고창 지역에 떠도는 전설을 모아 놓은 ‘질마재 신화’에서 ‘신부(新婦)’라는 시로 생사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을 노래했다.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 입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던 신랑이 뒤가 급했다. 급히 화장실에 가다가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신랑은 신부가 음탕하여 옷을 잡아당긴다 생각하고 도망가 버렸다. 5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신랑이 우연히 집 앞을 지나다가 방문을 열어보니 신부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가 매운재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영양군 일월산의 황씨 부인당 전설도 이와 비슷하다. 정씨 성을 가진 청년이 연적(戀敵)을 물리치고 황씨 처녀와 결혼하게 된다. 신랑은 첫날밤 뒷간에 다녀오다 문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보고 연적이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품고 숨어있다 생각해 도망친다. 평생 신랑을 기다리다 죽은 황씨 처녀는 사당에 모셔진다.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조지훈(趙芝薰)의 시 ‘석문(石門)’의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일월산에 전해 오는 전설이다. 소위 ‘삼불차(三不借)’라는 주실 마을의 조지훈은 만년 야당인 남인(南人) 중에서도 칼과 같은 부류라 ‘검남(劍南)’이라 불린다. ‘석문’은 검남 출신의 방우산장(放牛山莊) 주인 조지훈이 쓴 산문시다. 시인은 검푸른 이끼 낀 석문의 모습을 통해 천년의 한을 간직한 신부의 서러움을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사무친 사랑과 그리움이 원한으로 변해 임의 따뜻한 사랑으로만 열릴 수 있는 차디찬 석문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매운재로 내려앉은 미당의 ‘신부’는 전통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표현이 어떻게 규정되고 억압당해 왔는가를 시적 형상을 통해 보여준다.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이끼 낀 지훈의 ‘석문’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엿보인다.



옛 이야기에서 임을 기다리는 여인네가 돌로 변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망부석이 그 좋은 예다. 돌은 영원한 사랑, 임을 향한 굳은 정절을 나타낸다.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는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백제여인이 등점산(登岾山)에서 망부석이 된다는 얘기다. 전북 고창에 가면 전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백제여인의 애끊는 노래가 선운산(禪雲山) 주변에 울려 퍼진다. 겨울에는 스님을 사랑한 처녀의 넋이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난다. 가을에 피는 꽃무릇, 상사화(相思花)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으니 또 얼마나 애절한가. 시인 최영미의 말처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고,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다.

대구 능인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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