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대구 스크린경마장 가보니

  • 명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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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8 07:21  |  수정 2014-07-28 08:49  |  발행일 2014-07-28 제3면
일당 벌러 온 사람들…“달려라 달려” 열광은 잠시 뒤 한숨으로
20140728
25일 대구시 달성군의 일명 ‘가창 TV 경마장’에서 경마팬들이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 자리 잡은 ‘가창 스크린 경마장’. 정확한 명칭은 한국마사회 대구지사의 ‘마권장외발매소’이다.

이곳에서 경마가 열리는 금·토·일요일마다 환성과 아쉬운 탄식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2002년 문을 연 가창 스크린 경마장은 서울·부산·제주에 있는 실제 경마장을 중계하면서 운영되고 있다. 3곳에서 번갈아 열리는 경기를 스크린으로 지켜보면서 베팅을 하는 곳이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경마팬’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도박 개념과 결부돼 사행심리를 조장하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따가운 시선과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낙관적 시선이 묘하게 공존하는 스크린 경마장. 취재 기자는 제주 현지 경기가 생중계된 지난 25일 가창 스크린 경마장을 직접 찾았다.

이날 낮 12시쯤 스크린 경마장. 경기시작 90분이나 남았지만, 수백여명의 경마팬이 일찌감치 스크린 앞 좌석에 진을 쳤다. 손에는 하나같이 ‘경기 예상지’가 들려 있었다. 시험을 앞둔 입시생처럼 이들은 예상지에 줄까지 그어가며 심취해 있었다. 25분마다 경기가 열리는 때문에 쉽게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끼니는 경마장내 편의점에서 구입한 도시락(2천300원~3천800원)으로 해결했다. 편의점 관계자는 “도시락은 진열장에 채워넣기 바쁘게 금세 동이 나 버린다”고 했다.


스크린 앞 좌석엔 경기시작 90분 전 수백여 명 진을 쳐
경기 예상지에 줄까지 그어가며 수험생처럼 심취
사행심 논란에도 일부 주민들은 “경제 활성화 도움”
“소액 베팅이라도 중독되기 쉬워” 전문가들은 경고


오후 1시15분. 첫 경기 마권발매가 시작되자 치열한 눈치작전이 시작됐다. 스크린상에 게시되는 배당률을 실시간 체크하며 구매표(OMR카드 형식) 기입에 신중을 기했다. 15분 뒤 경기시작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한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경기모습을 숨죽인 채 지켜보던 경마팬들은 경주마가 코스를 한 바퀴쯤 돌자 ‘뛰어라! 뛰어라!’ ‘2다(2번 말이다), 2다!’라며 고함을 쳤다. 하지만 이 함성은 경기가 끝나자 한숨으로 바뀌었다. 실망한 경마팬들은 마권을 그 자리에서 찢기도 했다.

김모씨(63)는 “예상지를 들여다보고, 아무리 공부해도 안되는 게 경마”라며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돈을 조금씩 따겠다는 심산으로 베팅한다”고 말했다.

실제 경마장에서 만난 이들은 ‘불로소득’이라기보다는 하루 돈벌이를 할 요량으로 이곳을 찾고 있었다.

5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는 일용직 노동자 박모씨(53)는 “온종일 땡볕에서 일해봐야 손에 몇 푼 쥐지도 못하는데 경마는 눈치 싸움만 잘하면 일당을 금세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마를 일당벌이 차원으로 가볍게 생각하다가 중독될 수도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김영호 을지대 교수(중독재활복지학과)는 “경마를 즐기다보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생각이 고착화된다. 이는 근로의욕 저하와 한탕주의 함몰, 현실도피로 이어져 불행한 삶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스크린 경마장은 대구시의 알짜배기 세수 확보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대구시는 경마장으로부터 레저세와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의 명목으로 매년 수익의 약 10%를 세금으로 걷고 있다. 2011년 117억4천100만원, 2012년 125억3천600만원, 2013년 130억7천700만원 등 세금이 최근 3년간 꾸준히 늘었다.

마사회는 스크린 경마장이 위치한 달성군과 인접 수성구에 복지지원금 명목으로 2002년부터 해마다 1억원을 기부하고 있다. 하루 평균 1천900명이 찾고 있는 덕에 인근 상인들도 쾌재를 부른다.

김정자씨(여·65)는 “처음엔 마을사람들이 도박에 빠질까봐 반대했지만, 막상 개장된 후에는 그 같은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주현 한국마사회 대구지사 대구문화공감센터 담당은 “가창 스크린 경마장은 대구 외곽지역인 가창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생 시설로 인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 가창 스크린 경마장 연도별 실적
연도 매출액 입장인원
2003년 955억7천200만원 27만8천415명
2004년 786억4천300만원 20만7천415명
2005년 790억4천600만원 19만2천254명
2006년 770억9천만원 20만7천117명
2007년 1천29억5천600만원 26만1천547명
2008년 1천250억5천800만원 30만3천174명
2009년 1천243억1천500만원 35만1천537명
2010년 1천356억4천400만원 34만6천988명
2011년 1천477억6천만원 31만2천708명
2012년 1천567억200만원 30만2천551명
2013년 1천647억5천700만원 28만2천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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