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국가대표 꿈 접었지만 금융전문가 향해 날개 펼 거예요

  • 백경열,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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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8 07:54  |  수정 2014-07-28 13:33  |  발행일 2014-07-28 제15면
[아이들 희망을 품다] ‘열정 1등’ 상서고 2년 최유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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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최유리양이 금융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말쑥한 교복 차림의 평범한 고교생, 최유리양(17·상서고2). 하지만 여느 여교생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앙다문 입술이 인상적이다. 그런 최양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가지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지만, 이내 또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국가대표 탁구선수의 꿈을 꿨지만 부상을 당해 접어야 했다.

지금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최양은 ‘공부 1등’이 살아남는 시대에 유독 돋보이는 ‘열정 1등’ 학생이었다.

운동선수의 삶을 살던 최양과 현재의 그가 가상으로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중학 2년까지
대구에서
세손가락 안에
드는 탁구실력
부상으로 포기

그래도 좌절않고공부는
최고 되지않아도괜찮으니
도전해보자 다짐

고등학교 입학때
금융과 49명 중
3등으로 입학
장학금도 받아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도


◆외롭고 힘든 싸움

금융인재 최유리(이하 최금융): 오랜만이야, 짧게 올린 바가지 머리스타일. 탁구라는 운동, 참으로 힘들었지?

탁구선수 최유리(이하 최탁구): 응.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2살 위인 사촌언니도 탁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운동생활을 시작했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탁구채를 잡았는데, 같이 어울리던 사람은 같은 부원밖에 없을 정도였어.

최금융: 운동을 꽤나 잘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였어? 학교수업도 제대로 못 들었겠구나?

최탁구: 뭐, 거의 운동만이 전부였으니까. 생활의 유일한 엔도르핀이었어. 난 승부가 갈리는 게 참 짜릿해. 이 쾌감을 위해 탁구를 시작해 중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내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유지했어(웃음). 지는 건 정말이지 싫었거든. 초등학교 때는 다른 또래들이 6교시까지 수업을 들었지만, 난 4교시까지만 의자에 앉아 있었어. 끝나자마자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어. 이마저도 학기 내내 무수한 대회를 치르느라 연습기간에는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어. 이게 중학교 탁구부 시절까지 이어졌는데, 한번 책을 놓으니까 다시 잡기 힘들더라고. 언니는 공부를 곧잘 한다며?

최금융: 사실 나도 승부욕이 상당한 편이거든. 지금은 나름 만족하고 있긴 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금융과를 선택했는데, 149명의 입학생 중 세 번째로 높은 성적을 받았지. 덕분에 장학금도 받았어. 공부도 해 보니까 상당히 재밌더라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느낌도 좋고. 자격증도 많이 따고, 대회에도 자주 모습을 비추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나저나 국가대표를 목표로 합숙생활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너 정말 독하구나?

최탁구: 사정이 생겨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랑 살게 됐어. 이마저도 길지 않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숙소생활을 시작했지. 체력적으로도 많이 부담됐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운동부 특유의 엄한 군기였어. 상하관계가 상당히 엄격했는데, 오전 6시30분에 일어난 후 각종 청소와 훈련이 무수히 반복됐어. 하루 3시간 정도 듣는 수업시간은 나에겐 그저 달콤한 ‘휴식시간’일 정도였어. 또, 타지에서 탁구선수가 되기 위해 온 사람이 많았지. 울산에서 건너온 동기 2명이 있었는데, 얘들은 초등학교 내내 중국에서 탁구를 배워 우리말도 서툴렀고 정서도 사뭇 달랐어. 의지할 곳이 없었어. 함께 있지만, 혼자 있었지.

최금융: 아, 대구출신이 너밖에 없었다더니. 다른 부원들의 시샘이 상당했겠다….

최탁구: 응. 주말마다 집으로 갔는데, 역시나 다른 친구들이 질투의 눈초리로 나를 봤어. 집도 이 근천데 왜 숙소에 있냐고 따지듯이 묻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어. 남의 속도 모르고. 아버지는 주말에도 생계에 바빴고, 나만 홀로 집을 지켜야 했어.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와 가끔 전화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책을 읽는 정도가 유일한 위안이었어. 그때 생각하니 눈물나네, 그만하자. 그나저나 언니는 처음부터 공부를 잘했던거야?

최금융: 아냐. 공부도 쉽지 않더라고. 본격적으로 펜을 잡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때부터였어. 시험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일주일 정도 공부를 했지. 너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계획을 세우고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걸 참 좋아하거든. 7일동안, 학교 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도서관으로 직행했지. 문을 닫을 때까지 4~5시간을 공부했는데, 요령이라곤 없어서 그저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쓰며 익혔어. 그렇게 아는 듯 모르는 듯, 시험을 치른 후 난생 처음 받아본 성적표. 땀의 힘을 알았지만, 반에서 35명 중 30등을 하는 게 전부였어. 내 뒤에는 소위 ‘공부하기를 포기한’ 친구들 뿐이었다는 사실에 조금 충격을 받았지. 이후 EBS교재도 보고, 길을 더듬으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중학교를 마칠 때 쯤에는 어느새 전교 70등 정도까지 성적이 올라있더라. 음, 그럼 이제 탁구는 어떻게 그만두게 됐는지 얘기해줄래?



◆꿈을 접고, 꿈을 꾸다

최탁구: 중학교 2학년, 대통령기 대회를 일주일 앞둔 4월의 어느날이었어. 평소처럼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과 무릎이 엄청나게 아픈거야. 무리해서였겠거니 생각하고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더 이상의 연습은 무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됐어. 당연히 대회에도 못 나가게 됐고. 이후 나는 탁구부에 속해 있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연습 상대가 돼 주거나 공을 주워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어.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는데, 그때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어. 학생이었지만 책이라곤 들여다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 운동밖에 몰랐던 나에게 ‘국가대표 탁구선수’의 꿈을 접으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지.

최금융: 참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촉망받는 선수였던 만큼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은데? 부상에서 회복되면 다시 운동할 수 있잖아.

최탁구: 언니도 그렇겠지만, 난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거든. 같은 시간에 연습도 못하고 나만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에 정말 답답했어. 탁구부 담당 선생님은 내 치맛자락이라도 붙잡을 태세였어. 하지만 결국 난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지. 난 담담하게 내가 그만둬야만 하는 이유를 편지지에 써 내려갔어. 이 편지를 선생님께 드리고, 간곡히 설득했어. ‘운동은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공부는 굳이 최고가 될 필요없으니 한번 도전해보겠다’는 게 요지였지. 난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거든. 그런 면에서 언니의 노력도 참 대단하게 느껴져. 요즘엔 봉사활동도 나간다며? 대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거야?

최금융: 응. 우리 학교에 홍민지 선생님이라고 있는데, 나의 멘토셔. 지금은 내가 세상 누구보다 의지하고 따르는 분이지. 일도 잘하시고, 매사에 열정적인 모습도 참 닮고 싶어. 무엇보다 통솔력이 뛰어나서 내가 꼭 됐으면 하는 모습을 고루 갖고 계신 분이야. 난 또 소외계층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중학교때 친구와 함께 우연히 요양원을 찾았다가 봉사활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 어른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자 나도 즐거운 거야. 이후 주말마다 요양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게 됐어. 요즘엔 또 다른 곳으로도 봉사를 나가. 이번 여름방학에는 시간을 쪼개서 ‘사랑의밥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왜 공원 등지에서 어려운 분들에게 무료로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거 있잖아. 돈이 중요한 게 아냐. 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얼마만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뭐든 내가 먼저 해보고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멋진 리더가 되고 싶어. 너도 꼭 나처럼 될 수 있을거야, 반드시.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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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이 자신이 이제껏 받은 금융분야 상장과 자격증을 들어보이며 한껏 웃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최유리양은?

▨리더십이 있다= 탁구부 시절에는 주장을 도맡았다. 이후 고교 1학년 때 반장, 2학년인 지금은 전교 부회장을 맡고 있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친구들이 ‘엄마’라고 부를 정도.

▨열정적이다= 교내 1등급 성적은 물론, 한국주택금융공사 입사라는 목표를 세운 뒤 불과 6개월 사이에 많은 자격증(전산회계 운용사, 전산회계, 컴퓨터활용, 은행텔러 등)을 땄다. 교내 댄스부에서 활동하며 대상을 타기도 했다.

▨능력까지 갖췄다= 각종 수상실적도 화려하다. 모범학생, 봉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표창을 시작으로 △ICT활용창의성 경진대회 장려상 △대통령기 제33회 국민독서경진 달서구예선대회 최우수상 △현장형 진로직업체험 소감문작성대회 우수상(2위) △대통령기 제33회 국민독서경진 대구시예선대회 우수상을 차지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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