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6)만촌동 해피타운

  • 이은경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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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9   |  발행일 2014-07-29 제8면   |  수정 2014-07-29
재개발 뒤의 재발견
이웃을 잃었다면, 이 웃음 잃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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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지와 유휴공간을 재정비하여 만든 만촌동 마을텃밭에서 동네 주민들이 채소를 가꾸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晩村洞)은 이름 그대로 ‘느린 동네’다. 모 심는 것, 콩 심는 것이 늦었고 비가 와도 물이 가장 늦게 빠지는, 모든 것이 다 느린 곳이었다. 멀리서 보면 생긴 모양조차 개와 소가 옆으로 누우려는 듯 느즈러진 모습이다.

이 느즈러진 골짜기에서, 느리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칼국수를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안동댁 정화분씨, 정원 가득 야생화를 키우고 있는 이미근씨, ‘만촌 옥편’이라 불리는 진일문구의 강형구씨, 골목 모퉁이 동네 사랑방이 된 스마일 세탁소의 김용배씨 등등. 이들이 함께 모이고, 함께 배우며, 함께 가꾸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마을, 그곳은 ‘해피타운’이다.


◆청석 위에 선 ‘느지 사람’

지난 22일 만촌동 주민 커뮤니티 공간 ‘느지마루’. 동네의 옛 지명을 딴 이곳에서는 문인화 강좌가 한창이다. ‘느지마루’에서는 탁구, 기타, 장구, 요가, 요리 등의 다양한 강좌가 한 주 내내 열린다. 이곳에서는 가르치는 강사도 배우는 수강생도 모두 마을 사람이다. 아내가 사 준 기타 선물로 웬만한 뮤지션 못잖은 실력을 갖추게 된 김재현씨는 기타 강사로 나섰고, 눈 깜빡할 새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마술사’ 김순이씨는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 강사가 됐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히고 가장 늦게 불을 끄는 아람슈퍼 안주인 안춘화씨는 솜씨 좋은 뜨게질 강사다.

배우고 익힌 솜씨들은 매년 열리고 있는 ‘해피촌 마을잔치’에서 주민들에게 선보인다. 온 마을이 하나되는 이 축제에서는 동아리 공연과 함께 체험 프로그램, 벼룩시장, 먹거리 마당 등이 열린다.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은 ‘느지마루공동체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조합에서는 먹거리를 판매하는 ‘마을밥집’을 운영하고 도농 교류를 통한 친환경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열고 있다. 마을 내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마을밥집에서는 만촌동 주민 정정희씨의 버섯 들깨탕과 문어밥, 국수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부엌에 따로 국수방까지 만들어놓은 정화분씨의 손칼국수를 비롯해 이상화씨의 약밥, 최순희씨의 팥죽, 임상술씨의 오징어 식해, 구도희씨의 영양 뭉치 등 마을에서 건져낸 다양한 레시피들이 선보인다.

만촌동 해피타운 마을공동체 사업을 주관하는 <사>인문사회연구소 신동호 소장은 “마을 만들기의 가장 큰 목적은 주민의 삶이 변화되는 것과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이라면서 “마을 주민의 욕구를 반영하고 의견 수렴을 통해 주민을 기초로,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마을의 가능성을 읽다

재개발 사업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개발이라는 천편일률적 공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몇십 년, 더러는 대를 물려 살아오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아파트에 입주하는 행운은 열명 중 한두명에게만 주어질 뿐이었다. 마을의 정체성과 고유성은 사라지고 개발 이익을 둘러싼 주민간의 갈등만 남았다. 그렇게 살던 집이 사라졌고 이웃을 잃어버렸다.

만촌 1·2동에도 어김없이 재개발의 광풍은 불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높디 높은 언덕과 온통 청석으로 이뤄진 지반은 구조적으로 재개발이 불가능했다. 아파트를 포기한 마을은 ‘해피타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색다른 형식의 ‘재개발’에 들어갔다.

해피타운 프로젝트는 주민 스스로 마을공동체 생태계를 만들고, 행정기관에서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도시 재생 사업이다.

중앙초등학교 남동쪽 일대와 동원초등학교 주변으로 대표되는 만촌 1·2동에는 대부분 25년 이상된 2층 이하 단독주택 건물이 밀집해 있다. 도로 경사는 급하고 담은 낡았다.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았으며, 골목은 늘 어두웠다.

2010년 7월부터 40억원을 들여 저층 단독주택 밀집지역 800여가구를 대상으로 도시가스, CCTV, 주차장 등 다양한 마을 기반 시설을 만들었다. 담을 허물고 공터에는 마을 공용 주차장도 만들었다. 도로를 개선하고 옹벽에는 벽화를 그려넣었다.

마을이 ‘외관상’ 그럴 듯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시설 중심 마을 환경 개선 사업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된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유지다. 관 주도의 마을공동체 사업이 행정의 성과지향적 관행이나 마을 특성과 무관한 기존 사례 답습으로 ‘무늬만 마을공동체’를 양산하고 있다는 반성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촌동 해피타운 프로젝트의 미덕은 주민 스스로의 공동체 의식과 사업 실천 의지에서 나온다. 주민 주도형·주민 참여형 마을, 역사를 간직한 지속가능한 마을, 새로운 대안사회로서 마을. 해피타운 프로젝트가 만들어가려는 마을의 모습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느림 뒤의 누림

재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사라질뻔한 우리 동네. 마을 사람이 주체가 되는 마을공동체가 됐지요. 느린 생활 속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가꾸고 함께 나누는 이곳은 ‘해피타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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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커뮤니티공간 ‘느지마루’에서 문인화를 배우는 주민들, 동원초등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정비된 생활 골목길, 마을텃밭 ‘하늘정원’(위쪽부터). 만촌동 해피타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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