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 김천을 이야기 하다 .15] 김천 모티길 - 인현왕후길

  • 임훈 박현주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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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14   |  발행일 2014-08-14 제11면   |  수정 2014-11-21
짙은 綠陰 속 ‘비운의 국모’ 숨결… 역사의 숨은 페이지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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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증산면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인현왕후가 머물렀던 청암사 사이에 인현왕후길이 자리잡고 있다. 인현왕후길은 9㎞ 구간으로 길을 걷는데는 총 2시간4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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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인현왕후길을 걷고 있다. 인현왕후길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어 햇살을 피하기 쉽고,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코스가 많아 체력부담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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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투리로 모퉁이길을 뜻하는 ‘모티길’이 김천시 일원에 조성돼 지친 도시인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고 있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황점리의 ‘인현왕후길’ ‘수도녹색숲모티길’과, 대항면 운수·향천리의 ‘사명대사길’ 등이 김천의 대표적인 모티길이다. 김천의 모티길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굽이굽이 굽은 길 사이로 옛 사람의 사연과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한다. 이는 김천의 모티길이 지역의 역사자원과 연계한 데다 문화와 자연이 살아있는 탐방로로 꾸며졌기에 가능하다. 덕분에 김천 모티길을 찾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김천시 역시 모티길 조성을 통해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스토리의 寶庫 김천을 이야기하다’ 15편은 조선후기 정치적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비운의 여인 인현왕후와 그가 거닐었을 김천 모티길의 한 코스, 인현왕후길에 관한 이야기다. 인현왕후길은 인현왕후라는 인물의 역사적 현장을 기리기 위해 2013년 김천시가 조성한 것이다.

수도암과 청암사 사이 총 9㎞ 숲길
굽이굽이 솔향 그윽한 ‘힐링 산책로’
무흘구곡 일부 절경도 감상할 수 있어

◆비운의 여인 인현왕후

조선의 왕비 중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만큼 유명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지아비인 숙종(肅宗, 1661~1720)을 두고 인현왕후와 장희빈 간에 벌어진 사랑과 갈등은 수많은 영화와 TV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궁중 암투와 비극적 사랑은 두 여인의 삶을 기구하게 만들었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일원의 수도산 자락에는 인현왕후의 이름을 딴 인현왕후길이 있다. 은은한 소나무향과 함께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인현왕후길에는 권력다툼의 희생양으로 왕비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던 인현왕후의 안타까운 사연이 서려있다.

인현왕후는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계비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인현왕후는 ‘장희빈’으로 잘 알려진 희빈 장씨의 아들 원자(元子) 정호(定號)의 세자 책봉 문제로 남인이 서인(西人)을 조정에서 축출한 기사환국(1689) 때 폐서인(廢庶人) 되는 운명을 맞았다.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반대세력의 해코지가 두렵기도 했지만 인현왕후를 도우려 선뜻 나서는 이도 없었다. 결국 인현왕후는 자신의 어머니(은진송씨) 집인 외가와 인연이 닿았다. 인현왕후는 외가가 있는 상주 인근의 김천 청암사로 자신의 거처를 정한다. 과거 상주와 김천은 한 생활권이었기에 외가의 도움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권력다툼에서 패했기에 장희빈의 세력으로부터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백두대간의 사찰을 정했을 개연성도 크다.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당시, 절에서는 국모였던 인현왕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경내에 한옥을 새로 지어 인현왕후를 모셨는데, 지금의 청암사 극락전이다. 또한 42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을 지어 복위기도처를 제공했다. 당시 인현왕후는 상주의 외가에서 보내준 시녀와 함께 수도산 곳곳을 거닐며 시문을 지었다고 한다.

1694년, 인현왕후의 복위를 반대하던 남인세력이 권력을 잃으면서 인현왕후는 왕비의 자리를 되찾는다. 인현왕후는 복위 후에도 청암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인현왕후는 청암사에 감사편지를 보냈는데 ‘큰스님 덕분에 대업을 이루었다’는 내용의 글귀가 적혀있다. 폐서인의 몸이 되었음에도 극진히 자신을 보살펴준 스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보낸 편지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편지에는 향, 비녀 등 신물 세 가지를 보낸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또한 인현왕후는 청암사 주변 수도산을 국가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사찰에 전답을 하사했다. 지금도 인현왕후길을 걷다보면 청암사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인현왕후는 복위한 지 7년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훗날 청암사 극락전을 중창할 때 발견된 시주록에는 궁중상궁 26인의 이름이 올라있다. 정치적 격변기 때 인현왕후의 복위를 예견한 궁중상궁들이 청암사에 시주를 했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청암사와 왕실은 조선말기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인현왕후의 숨결을 느끼다

17세기 후반 인현왕후가 거닐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인현왕후길이 조성되어 있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인현왕후가 머물렀던 청암사 사이에 인현왕후길이 자리 잡고 있다. 인현왕후길은 총 9㎞ 구간으로 길을 걷는 데는 2시간40분이 소요된다.

인현왕후가 김천에 머물렀을 당시 수도암과 청암사는 인근 쌍계사 소속이었고, 많은 스님도 이 길을 이용했다. 인현왕후 역시 이 길 이외에는 다닐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산 능선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울분을 삭혔을 것이다. 향토사학계는 인현왕후가 수도암과 청암사를 오가며 기도를 올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현왕후길은 수도계곡 주변의 길과 수도산 능선을 따라 둥근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일부 코스는 기존 도로를 편입시킨 것이지만 도로구간에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일부를 감상할 수 있으며, 수도계곡의 절경을 즐길 수도 있다.

수도계곡 상류 수도리주차장은 인현왕후길의 출발·도착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뒤 길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현왕후길 구간 대부분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다. 길의 폭은 3m 내외로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길 주변에는 고라니와 함께 흔히 보기 어려운 노루가 살고 있다. ‘우욱 우욱’ 하는 노루의 울음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길 곳곳에는 침목을 대어 토사의 유출을 막았고, 경사가 심한 곳에는 안전 펜스를 설치해 탐방객들의 안전을 챙겼다. 길 곳곳에는 벤치 등의 휴식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등반을 좋아하는 탐방객이라면 수도계곡 인근의 또 다른 입구를 통해 수도암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흘구곡의 제9곡 용추(龍湫) 하류의 도로변에 입구가 위치해 있다. 도로변에는 ‘인현왕후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수도암으로 향할 수 있다. 당초 청암사에서 출발하는 인현왕후길을 조성하려 했지만 청암사가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이기 때문에 길을 돌려 냈다. 20여분 만 산을 오르면 능선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큰 체력소모 없이 인현왕후길을 걸을 수 있다.

인현왕후길에는 화전민이 살던 집터도 남아있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돌담만이 남아 옛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짐작하게 한다. 집터 주변에는 작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에 살던 이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었을 것이다.

인현왕후길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인현왕후가 길을 거닐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버림받은 왕비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도움말=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공동기획: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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