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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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15   |  발행일 2014-08-15 제38면   |  수정 2014-08-15
짠한 전설 깃든 때문일까…담장의 그림에도 계곡 물소리에도 純情이 묻어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산 높고 깊은 대구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 벽화마을’. 도시와 산들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마비정 벽화마을은 달성2번 버스의 종점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마을 골목길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사랑의 약속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던 옛 우물. 지금은 공동 집수장의 물을 이용한다.


공기가 달다. 매미 소리 아우성이다. 바람도 없는데, 어린 감이 내 등 뒤에서 툭 떨어진다. 토마토가 서서히 익어간다.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수세미가 싱싱하게도 자라고 있다. 햇살은 폭발 직후처럼 뜨거운데, 고샅길엔 그늘이 많고 내내 계곡물 소리가 난다. 담장에는 누렁소와 가마솥과 지게와 꽃, 장독, 절구 따위가 그려져 있다. 흙냄새 나는 이 그림들은 향토라든가 토속이라는 단어가 아닌 계곡물 소리와 달콤한 공기의 맛 속에서 만족스러운 영상이 된다.

◆ 죽은 말을 기리는 순정한 마음, 마비정(馬飛亭)

잠시 달렸을 뿐인데 들이다. 2차로 도로는 어느 순간 차선을 지우고 산을 오른다. 잠시 올랐을 뿐인데 산이 깊다. 나무들 사이로 푸른 밭이 보이고, 풀들이 무성한 계곡도 보이고, 어떻게 찾아들어왔을까 싶은 집들도 보인다. 그리고 여러 번 굽이지고 서서히 올라 제법 넓고 평평한 버스 종점에 닿는다. 달성2번 버스가 마지막으로 서는 곳, 마비정 벽화마을이다.

마비정, 독특한 이름이다. 이 이름에 담긴 전설은 ‘옛날 한 장군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장군은 마을의 앞산에 올라가 건너편 산의 바위를 향해 활을 쏘고는 말에게 ‘화살보다 늦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말은 날듯이 달렸지만 화살을 앞지르지는 못한다. 결국 말은 죽임을 당했고,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말을 불쌍히 여겨 ‘마비정(馬飛亭)’을 세우고 추모했다 한다. 언제인지, 어느 장군인지도 모를 만큼 마을은 오래되었을 것이고, 그때는 저 기막힌 시합을 명령한 장군을 기억하기보다 말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순정한 시대였을 것이다.

참 무구한 마음으로 이어져 온 ‘마비정’ 마을은 벽화로 이름이 나면서 ‘마비정 벽화마을’이 되었다. 벽화들은 우리의 옛 모습을 담고 있는데, 활을 쏘는 장군과 말의 모습도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낮은 담장 위에는 어린애들이 박처럼 웃고 있고 처마 밑에는 메주가 매달려 있다. 높은 돌담 옆으로는 외양간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림은 전체적인 색감에 일관성이 있고 내용도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롯이 한 사람이 석 달 밤낮을 매달려 완성했다 한다.

◆ 사람도 말도 쉬어가는 마을, 마비정(馬飛井)

마을에는 100년이 되었다는 느티나무와 돌배나무의 연리목, 역시 100년이 넘었다는 살구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옻나무가 자라고 있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나무들에는 모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30년 된 줄사철나무는 겨울날 눈이 내리면 아름답다는 이야기, 누가 누가 심었다는 다정스러운 이야기도 적혀 있다.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대나무 터널도 있고, 콸콸 힘찬 소리로 돌아가는 물레방아도 있다.

부침개와 국수를 파는 식당이 여럿이다. 두부와 도토리묵을 파는 무인 판매대도 있고, 어느 집 평상에는 오이 등을 한두 소쿠리 내어놓았다. 집과 집 사이에는 텃밭이 있고 마당에도 온갖 푸성귀를 키운다. 마을은 산의 기울기 그대로 들어앉았기에 윗집의 텃밭이 아랫집의 지붕과 나란하기도 하다. 쓰임 없는 양지를 좇아 뿌리를 내린 풀들과 군데군데 남아있는 높은 돌담이 적막하게 강렬하고, 계곡물 소리와 골목길을 누비는 아이들의 재잘댐이 청정하다.

마을의 가장 위쪽에는 우물이 있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많지만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어 주었던 우물이다. 마비정은 지금도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전통자연부락이다. 현재는 마을 뒤쪽에 있는 공동 집수장의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우물에 ‘마비정’ 마을 이름에 관한 좀 더 사실임 직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부터 청도와 가창의 사람들이 한양이나 화원장을 다닐 때 이 마을을 지나며 쉬어갔다고 한다. 사람도 말도 피로한 여정이었지만, 이곳의 물로 원기를 회복하고 더욱 빨리 달려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옛길은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 마비정 마을에서 가창의 정대리로 이어지는 달성 누리길이다. 마을은 대구 수목원으로도 연결되고, 화원 휴양림으로도 연결된다. 누리길의 중심에서 쉬어가기 좋은 곳이 마비정이다. 우물 앞을 돌아 내려오면 보인다. 산 아래 저 먼 도시와 또 다른 먼 산들이. 그리고 새삼 흐뭇해진다. 이처럼 가까운 곳에, 이처럼 깊은 골짜기가 있구나, 공기가 달아서 한숨 쉬어가기 좋은 마을이구나 하고.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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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나 화원 쪽으로 가다가 본리리, 남평문씨 세거지 쪽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대구수목원 앞에서 우회전해 가도 된다. 남평문씨 세거지를 지나면 길은 단출해지고 안내판도 잘 되어 있다. 지하철 1호선 진천역에서 달성2번 버스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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