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대구시교육청 공동기획 교육, 청렴을 말하다] 말썽 부린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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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18 08:04  |  수정 2014-08-18 08:04  |  발행일 2014-08-18 제16면
[영남일보-대구시교육청 공동기획 교육, 청렴을 말하다] 말썽 부린 화분

얼마 전, 올해 학부모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학부모회 임원으로 몇 년째 각종 행사에 다녔지만 막상 회장이 되고 보니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면 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 측과 여러 가지 의논할 것을 생각해서 임원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찾아가려니 회장이 되기도 했고 또 임원진도 새로 구성되었는데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꽃집에 들러 자그마한 화분을 하나 교장실로 배달시켰다. 나름대로 작은 성의 표시도 되고 도리를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운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남자 목소리가 쩌렁쩌렁 귀를 울렸다.

“학교에서 화분을 도로 가져가라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조금 전의 그 꽃집 아저씨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다급하게 쏘아붙였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교장실로 가보니 화분을 가운데 놓고 교장, 교감, 교무부장 선생님과 꽃집 아저씨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교장실로 막 들어서는 순간, 교장선생님은 화분을 받을 수 없으니 도로 가져가게 하라고 처리를 부탁하셨다. 일단 꽃집 아저씨한테 화분을 되가져 갈 것을 부탁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전에 이 작은 화분 하나로 이러는 건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기분이 상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신 듯 교장선생님은 그제야 반갑게 맞이해주시고는 현관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가셨다. 현관 입구에 길게 세워둔 홍보용 배너가 있었는데 그것을 가리키며 같이 읽어보라 하셨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와 민원인들로부터 어떠한 금품·향응을 제공받지 않습니다’라고 게시된 글을 멋쩍어하며 조심조심 읽었다. 학교 설명회 때의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에 대한 연수가 그제야 떠올라 우리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어머님, 학교에 상담하러 오실 때 빵집 들러 조각 케이크 하나라도 사오시면 바로 교무실로 고발당하십니다.”

그때 교무부장 선생님의 그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연수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새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학교 측에서 보내는 ‘청렴’ ‘촌지 근절’ 등과 관련된 통신문, 문자메시지 등을 계속 접해 와서 부담 없이 학교에 오곤 했지만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다 보니 이 정도는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런 생각마저 말끔히 지우게 되었다.

차를 마시며 교장선생님의 청렴에 대한 충고 몇 마디 더 들었지만 언짢은 마음보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득해지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닌 듯했다.

꽃집에 들러 말썽부린 그 화분을 찾아 집으로 들고 오면서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학교에 대한 신뢰감, 이 하나만으로도 꿈드림단(학부모봉사단) 활동에 더 힘을 쏟으리라 마음먹었다.

김미양 <대구 효신초등 학부모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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