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락의 풍수로 본 명당] 이순신 혼 깃든 통영 충렬사의 명당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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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2   |  발행일 2014-08-22 제36면   |  수정 2014-08-22
[박재락의 풍수로 본 명당] 이순신 혼 깃든 통영 충렬사의 명당지기

연일 영웅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료뿐만 아니라 기업체에서도 임직원에게 관람을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3명 중 1명은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보도가 나오니 이러한 열기는 요즘 시대가 하수상하여 지속되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무릇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이 한마디는 지금의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로 여겨진다. 그리고 ‘바다를 버리는 것이 조선을 버리는 것’이라는 이순신·권율 장군의 호국관은 기성세대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살고 있는 지금의 청장년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세계사에 길이 남을 해전은 ‘한산대첩’과 ‘노량해전’을 들 수가 있으며, 이곳은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지금의 통영시 근처가 된다. 그래서 한산대첩을 이룩한 구국의 현장인 통영시에는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충렬사가 자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선조 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하였으며, 현종 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국가는 영웅 충무공의 혼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오면서 보살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금의 영웅 이순신 장군 신드롬도 충렬사의 입지가 명당의 기를 받고 있는 곳인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 충렬사 터를 이룬 용맥은 백두대간의 종산인 지리산의 연화봉에서 분맥한 낙남정맥이 남하하면서 대곡산(545m)에서 분맥하여 통영지맥을 이룬 후, 내룡맥은 고성으로 행룡하면서 도덕산(302m)과 제석봉(274m)을 세우면서 통영시의 주산인 망일봉(148m)을 기봉하였다.

둘째, 충렬사의 지세는 통영시의 주산인 망일봉의 용맥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국이다. 먼저 망일봉의 용맥은 서쪽으로 몸을 틀어 ‘선무원종공신’ 염언상 묘를 지나면서 한 가지맥은 남쪽으로 뻗어내려 좌청룡인 남망산을 이루었다. 또 다른 주용맥은 충렬사가 의지하는 현무봉을 이루고 있으며, 그중심룡맥은 생룡으로 이어져 현충사의 혈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현무봉에서 개장한 우선지맥은 크게 한포하면서 충렬사 터를 감싸듯이 뻗어내려 우백호를 이루고 있으며, 충렬사와 마주하는 안산은 한산도의 망산(295m)으로 나타난다.

셋째, 충렬사의 형국은 좌우 산세는 장군의 양팔을 상징하며 중앙동의 도심지역은 병영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안산인 한려해상공원의 여러 섬은 군영의 깃발을 상징하므로 충렬사의 터는 편안히 앉은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충렬사의 터는 이순신 장군의 혼이 사후에도 조선의 바다를 지키려는 염원이 내재된 공간이므로, 풍수지리학적으로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넷째, 충렬사를 에워싸고 있는 사신사를 살펴보면, 주산인 망일봉에는 ‘이순신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북쪽의 현무봉 정상은 예전의 통영성지(統營城址)를 이룬 곳으로, 지금은 ‘북포루’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청룡자락의 남망산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안산인 망산에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인 ‘제승당’이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설계는 충무공의 영혼이 충렬사에 항상 머물면서 구국의 정신을 널리 표출할 수 있는 지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스타는 조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다. 풍수도의 청룡자락 중심에 표시된 공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봉해진 염언상(廉彦詳)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분은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전쟁에 참여해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인 거제 옥포대첩에서 적선 30여척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한산도대첩에서도 공을 세웠다. 이처럼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러한 민초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사후에도 충렬사의 용맥을 의지하는 곳에 유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무공을 곁에서 보좌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것을 여실히 나타내는 입지가 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통영시 한산면의 이 충무공의 유적지인 제승당은 1593년 8월에 충무공이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1597년 2월 파직될 때까지 3년7개월간 삼도수군을 지휘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이곳 유적지 내에는 충무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충무사와 활터인 한산정, 충무공의 ‘한산도가’ 시조 액자가 걸린 수루 등의 건물과 비각이 즐비하다. 이곳은 충렬사 터에서 마주하는 안산을 이루는 곳의 망산을 의지하고 있는 입지로 나타난다. 즉, 충무공이 바다를 사수해야 한다는 호국정신을 서로 조응·반사·응집하기 위한 공간과 좌향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명당공간입지가 되는 곳이다.

따라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이참에 스크린의 감동보다 자녀들에게 영웅 이순신 장군의 정기를 몸소 체험시켜봄으로써 자녀들 스스로가 나라사랑을 위한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통영시로 한번 발품을 팔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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