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눈물을 詩로 토해내고 있는 노동운동가 겸 시인 조선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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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2   |  발행일 2014-08-22 제37면   |  수정 2014-08-22
내 삶은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다…그래서 행복하다
20140822
참여문학이 추락하고 있는 요즈음, 한국 시단에 새로운 참여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조선남 시인이 건설노동자를 위한 투쟁 일변도의 무채색의 일상과는 달리 원초적 색채를 담고 있는 그림을 배경으로 앉아 쉬 다가서지 않는 노동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의 심벌이 되는 날을 갈구하는 눈빛을 뿜어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사용자와 노동자로 양분돼 있다.

노동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쪼개져 있다. 존 롤스적 정의관에 따른다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고통에 더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속을 들여다보면 정규직은 갈수록 ‘공룡’ 같고 비정규직의 힘은 ‘개미’보다 더 미약하다. 있는 노동이 ‘없는 노동’을 소외시키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조선남 시인(49)은 그 질식의 중심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고 싶어한다. 자신도 한때 건설노동자였기 때문이다. 1989년 제1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던 그날, 그는 대구 남선알미늄 논공지부 파업 주도 건으로 감옥에 있었다. 고교를 중퇴한 그의 첫 직장은 대구 제3공단의 한 용접공장. 25세부터 전업 노동운동가 겸 시인이 된다. 그의 문학은 한때 명맥이 끊길 뻔했던 노동자문학의 혈통을 꿋꿋하게 잇는다. 14년째 전국 현장노동자 글쓰기 모임체인 ‘해방글터’를 이끌고 있다. 이젠 1946년 대구 10·1사건을 기리는 10월문학회에도 간여하고 있다.

2006년엔 전국에선 처음으로 지역 건설노동자 2천500명과 함께 총파업을 했다. 그 때문에 또 1년여 감옥생활을 했다. 그의 문학은 더 야물어져 갔다. 재야운동가 백기완씨가 그에게 ‘조선남 시인에게 보내는 글월’이란 제목의 격려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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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을 탈퇴했다는데…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도움 절실한 이들에겐
희망 줄 수 없는 조직’
탈퇴 강요받고 나와
비정규 노동자와 함께
새로운 노동운동 전개


조선남에게 있어서 詩는
지금의 문단은 권력화
‘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일하는 사람의 발바닥’
시는 시대의 滿身 되어야


대학생 딸도 투쟁가의 길
중학교 다닐 때 수제인 딸
어느날 갑자기 투사로 변해
고교땐 청소년 인권운동
밀양송전탑 반대투쟁에도


‘(초·중략) 꿈도 깨지고 사랑도 깨진 그 팍삭 위를 살다보면/ 그래도 끝내 하나는 남더라/ 노여운 불씨다 참을 수 없는 분노/ 바로 그거다 그것이 바로 어둠에 맞설 불씨라/ 그리움까지 갇혀버린 사랑아/ 새벽이 와도 새벽 같은 건 아예 기다리질 마시라/ 차라리 마지막 남은 피눈물 한 방울까지 다 쏟아/ 그 불씨를 지펴라/ 알알이 바사져 보면 모든 게 콩가루가 되어보면/ 앞이 안 보이는 어두움은 절로 가셔지는 게 아니더냐/ 온몸이 기름이 되어 왕창 사르는 것이더라/ 왕창’

그는 현재 2013년 서재 동화주택 타워크레인 점거 농성 사건으로, 본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나 전직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검사 구형 2년을 받고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했던가. 현재 서울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학년생인 큰딸(은별)은 고교 2학년 때 스스로 자퇴, 2년간 청소년인권운동을 벌이다가 밀양송전탑 투쟁에 나서 검사구형 2년을 받고 현재 밀양지법에 소송계류 중이다. 조씨는 민주노총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현재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를 위한 협동조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소의 뿔처럼 가고 있는 그를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내 한 카페에서 만나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와 시(詩) 정신의 미래에 대해 알아보았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받는 노동자들

-원하는 세상이 뭔가요.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인 세상입니다.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기 바란다’고 말씀했어요. 지금 제주 강정에서부터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세월호, 쌍용자동차, 그리고 우리 건설노동자들의 온갖 문제는 자본의 폭력·야만·약탈적인 이윤축적과 맞물려 있습니다.”


-한국의 건설노동자의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건설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건설현장은 현재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입니다. 다단계 하도급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고질적인 임금착취와 체불, 4대보험에서의 제외 등 각종 차별이 그들을 질식시키고 있죠. 한때 건설노동자들을 ‘산업역군’으로 불렀죠. ‘노태우 정권 시절 주택 200만가구를 짓는다고 할 때 하루 20만~30만원 너끈하게 벌었다’면서 지금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자기 집도 없고 노후대책도 전무합니다. 국민연금과 개인 연금 가입률도 1% 미만입니다. 일손을 놓는 순간 곧바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겁니다. 아무도 이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가도, 건설 자본도, 지자체도, 심지어는 노동조합까지 연세드신 형님들을 탈퇴시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 우리가 출퇴근하는 공장과 회사 등이 건설노동자의 손으로 지어졌지만 이제 그들은 건설폐기물처럼 방치됐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어떤 젊은이들이 건설 현장에서 기술을 배워 일을 하겠습니까? 이미 건설현장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업자와 외국인에게 장악당했습니다. 산재로 죽어가는 사람이 1년에 700명이 넘습니다.

◆민주노총도 그를 버렸다

-민주노총을 왜 탈퇴하셨나요.

“전노협 발기인, 민주노총의 발기인이기도 했던 제가 스스로 민주노총을 탈퇴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노동조합에서 회사와 이미 저희들을 해고하기로 사전에 조율했습니다. 그 사실은 은폐하고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탈퇴를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죠. 정말 노동조합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미조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노동조합 가입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운동의 가치를 생산하고자 합니다.”

-비정규직을 위한 협동조합운동,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좀 알려주세요.

“빌라를 짓거나, 원룸을 짓는 공사현장에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미치는 일반 현장에 비해 노동강도는 훨씬 강하고 임금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런 현장 건설회사들은 다들 영세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근로기준법대로 요구한다면 이들은 공사를 포기하고 말겁니다. 대안은 협동조합인 것 같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몇 개월 전에 ‘모범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범기업이 어떤 건가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협동조합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씨가 ‘참 신나는 옷’이란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일하고 4대보험을 적용받습니다. 누구나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마을·노동공동체를 파괴하고 생산수단을 독점합니다. 그리고 모든 생산의 가치는 독점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합니다. 노동자들은 굶어 죽을 자유와 착취당할 자유만 보장됩니다. 수많은 협동조합이 있지만 그중 건설 기능공 협동조합은 가장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죠.

“왜냐하면 건설현장은 기본적으로 2중·3중의 착취구조(다단계하도급)의 구조입니다. 노동직거래, 마치 농산물직거래처럼 건설노동자와 건설 기능공을 필요로 하는 건축주 건설회사와 직거래된다면 경쟁력이 있지요.”

◆교집합 못 찾는 보수와 진보

-현재 대한민국의 가치관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말 다양하게 분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과 나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과 나는 다르니까 함께할 수 없다. 그러면 끊임없는 분열뿐이겠지요.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제거한다면 누가 남겠습니까.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파가 부패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진보진영의 분열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절망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2006년 총파업을 시작한 날입니다. 300여명의 조직으로 2천500명의 파업대오를 이끌어 내던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건설노동조합 운동을 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일하는 곳도 다르고, 일하는 직종도 서로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그러나 전국 최초로 지역적 구속력이 있는 지역 단체협약을 쟁취했습니다. 가장 절망했던 순간은 전노협 발기인으로, 그리고 민주노조 발기인으로 대구에서 건설 노동자를 조직했는데 조직으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노동조합 탈퇴를 요구받았던 순간입니다. 얼마전,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 관련, ‘동행’이란 1박2일 문화제를 위해 몇 편의 시를 들고 갔지만 건설노조에서 압력을 넣어 저를 무대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차치하고 노동시인을 노동조합의 권력으로 짓밟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참 세상이 그렇습니다. 한 줌 권력이 뭔지.”

-‘감옥 가면 유명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천가가 특별한 존재, 좀 우상화된 존재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존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허명에 들뜨면 여지없이 망가지게 되지요. 자신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망가뜨립니다.”

◆대한민국 시인을 정론직필하다

-시인이 무슨 감투인 세상인 것 같습니다.

“문단의 권력이 시인을 죽이고, 그놈의 문학상들이 시를 시궁창에 빠트린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내용보다도 시의 진정성보다도 인맥·지연·학연·문맥에 휘둘리고, 시 한 편 발표하기 위해 누굴 찾아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시인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것입니다. 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일하는 사람의 발바닥과 밭을 가는 농민들, 말없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의 손끝, 공장에서 쫓겨나 90일이 넘도록 굴뚝에 매달려 있는 해고자, 지금도 광화문 앞에서 단식하는 사람들의 배고픔 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돈 있는 재단의 들러리가 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시로 상을 받는 시는 이미 죽은 시인의 영혼으로 쓴 시입니다. 시는 시대의 만신(滿身)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눈물, 가슴 쓰라린 기억을 문학으로 승화해내고, 문학적으로 민족사의 비극을 복원해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지만 정말 필생에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구 10·1항쟁에 대한 서사시 한 권쯤은 쓰고 싶네요.”

-딸도 투쟁가의 길로 들어선 것 같은데.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모였기에, 저도 어쩔 수 없는 꼰대였기에 제 딸만은 저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란 적은 있습니다. 딸은 중학교 때 수제였는데 어느 날 투사로 변해 있더군요.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딸이 살아가야 할 삶이 어떤 삶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투쟁 일선에서 벗어나 집에 와 잠을 청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만약 제 길이 고행이거나, 누구를 위한 일이라면 저는 아마 중간에 그만두었을 겁니다. 이 일을 만약 아내가 반대했다면 저는 아마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제가 살아온 삶의 가치를 보상받아야 한다거나 위로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을 다니다 운동을 했다면, 저도 역시 복학을 하고 정치권에 선을 대거나, 전공을 살려 노동자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살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 꿈과 삶을 지금 저와 함께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꿈과 일치시키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가난한 노동자 시인, 가난한 50대 노동자에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이 있겠습니까?”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조선남은

고교 중퇴후 대구 제3공단서 용접공 일해…25세부터 노동운동가 겸 시인의 길로…14년째 노동자 글쓰기 모임 이끌어…2006년 건설노조 총파업 1년여 수감…현재 비정규직 건설노동자 위한 협동조합운동 전개

취재후기

민주노총과 선을 그었다. 정규직한테 소외받고 있는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협동조합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신념. 그게 ‘조선남표 행복’아닐까. 사용자와 노동자의 갈등으로 자본담론을 풀던 기존 분석틀과 확실히 다른 ‘신 노노(勞勞) 갈등’의 식별안도 엿볼 수 있었다. 2006년 그가 대구교도소 독방에 있을 때 적은 ‘푸른감옥’이란 시 중 ‘봄을 불러와야겠어/ 높은 교도소의 담장이나/ 날카로운 금속성의 마찰음/ 늙은 수인의 절망 같은 기침 소리도/ 막아설 수 없는/ 봄을 불러와야겠어’ 구절처럼 그는 이미 ‘희망의 씨앗’. 모두 이기적 성공 지상주의를 외칠 때 그는 김민기의 노래 ‘친구’ 중 한 대목처럼 조용히 일어나 ‘이타적 성공 지상주의’를 외친다. 그의 글이 궁금하면 다음 블로그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클릭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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