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여성, 그 잔혹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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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9   |  발행일 2014-08-29 제33면   |  수정 2014-08-29
미리보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Women 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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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할머니처럼 인자하게 생긴 시리아 여성 파트마 압둘 라하만이 시리아 도심인 알 아트라브 자택 근처에서 소총을 들고 있다. 2012년 8월11일. 사진은 미국 출신의 하이디 리빈의 작품. 현재도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걸고 죽음의 기록을 촬영하고 있다. 한때 그녀의 취재 베이스였던 이곳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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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18세 소녀의 눈에 맺힌 눈물속에 분쟁지역의 처참함과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8년 2월 콩고의 고마시 케셰로 병원에 입원한 이마퀼레는 마시시 지역에서 후투족 반군 3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을 했다. 하지만 마을 보건소 의사의 실수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다가 부인성 피스툴라 증상을 앓게 된다. 사진을 찍은 정은진씨는 서양 백인기자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세계 보도 사진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몇 안되는 여성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이다.


갈등(Conflict)!

이게 물리적으로 부딪히면 ‘전쟁’으로 곪는다.

전쟁은 종국엔 휴·종전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앙금’이 남는다. 또 다른 분쟁·분열·분단이란 후유증이 ‘흉터’처럼 박히게 된다.

세계1·2차대전까지는 국가끼리 치고받았다. 이때 비극은 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현대로 접어들자 국가간 전면전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민족과 종교 갈등이 각종 지역 분쟁의 도화선이 된다.

국가·민족·종교가 합일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국가 안에 갈등적 다수 민족과 종교가 혼재한다면 지진대에 위치한 국가처럼 앞날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흘이 멀다 하고 분쟁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종군기자

우린 오랫동안 전쟁 이야기를 종군기자 등을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하에 움직였던 그 시절 종군기자의 뉴스는 잔인하게 검열당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었다. 불리한 정보는 모두 사장됐다. AP, AFP, UPI, 로이터 등 세계 4대 통신사가 등장한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뉴스가 있는지를 알 게 된다. 프랑스통신사(AFP)는 1832년 샤를 루이 아바가 해외의 신문 기사를 번역하여 파리와 지방 신문에 공급했던 아바 사무소에서 시작되었고 3년 뒤 아바 사무소는 아바 통신사가 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최초 통신사였다.

하지만 이들 뉴스도 인력·기술의 한계 등으로 인해 참상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하지 못한다. 1936년 라이프(LIFE)에 이어 룩(LOOK), 사진전문통신사 매그넘(Magnum) 등이 잇따라 창간되면서 사진이 글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로버터 카파, 데이비드 시모,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이 ‘그래프 저널리즘(Graph journalism)’의 기린아로 등극한다.

1980년 6월1일.

이날 세계 뉴스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경이로운 방송사가 등장한다. 기업인 테드 터너에 의해서 창립된 ‘CNN’이다. 본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 있었다. 테드 터너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뉴스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세계 최초 24시간 뉴스 채널을 설립한다. 세계가 CNN에 처음 눈길을 돌린 건 80년 12월8일,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이 뉴욕에서 총격을 당했을 때였다. 90년 8월2일 걸프전쟁이 발발하여 미국의 전투기들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맹폭격할 때도 지구촌은 CNN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급습

멀리서 보는 풍경과 눈앞의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쟁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게 등장한다. 바로 ‘테러’다. 테러는 ‘미궁’ 같다.

예전엔 주 희생자가 군인이었다. 이젠 민간인이 주로 희생을 당한다. 난민의 비극은 거의 묻혀버린다. 미국 9·11테러 사건 이후부터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 등은 기자까지도 공격했다. 심지어 참수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유포하면서까지 저항한다. 유수 신문방송사에 빨간불이 켜진다. 소속 기자들을 현장에서 철수시켰다. 대다수 국가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여행은 물론 취재도 불허했다. 이 틈새를 파고든 모험가가 있다. 바로 ‘스턴트맨’ 같은 포스의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다. 대구 출신의 정문태씨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종군기자란 용어 대신 ‘전선기자’란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그는 90년부터 23년간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40여개국을 훑은 국제분쟁지역 전문기자로 ‘2004년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란 저서를 펴낸다.

많은 기자가 분쟁지역에서 죽고 있다.

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사진으로 남긴 세계적인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는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당시 나이 41세.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34년 역사의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올해 분쟁지역 등에서 목숨을 잃은 기자는 32명. 지난해엔 70명, 재작년엔 74명이 죽었다. 특히 지난해엔 실종된 사람도 65명이나 된 데다 더 많은 수의 기자가 투옥됐다. 현재 이집트에만 13명의 기자가 갇혀 있단다.


◆다큐멘터리계의 여전사들

99년 동티모르 여대생이 내전으로 희생당한 기사를 읽고 무작정 동티모르로 떠난 여성이 있다. 이때 찍은 영상이 SBS 특집 다큐멘터리 ‘동티모르 푸른 천사’로 방영되었고, 일순간 평범한 아줌마에서 분쟁지역 전문 다큐멘터리 PD로 변신한 김영미씨다. 그녀는 소말리아 해적 소굴이나 탈레반 본거지 등을 혈혈단신으로 누벼 저널리스트 사이에서는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2004년 태국 쓰나미 발생 이후 상황을 찍은 사진이 뉴욕 타임스 1면에 장식됐던 정은진씨도 세계 보도 사진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로 불린다.

오는 9월12일~10월1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중구 수창동 예술발전소 등에서 열리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요 전시 중 하나인 ‘위민 인 워(Women in war)’가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전쟁의 주변인이 아닌 전쟁의 중심에 여성을 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사진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18명의 세계 각국 사진가가 찍은 322장의 사진만으로도 분쟁 현장 여성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어 미리 지상중계해 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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