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표적 인문학 모임 <사>대구작가콜로퀴엄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박재열 이사장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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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9   |  발행일 2014-08-29 제37면   |  수정 2015-01-30
작가콜로퀴엄은 지적 탐구심의 산물…가장 열정적인 청강생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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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교수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박재열 대구작가콜로퀴엄 이사장이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가 없는 이론은 공허하고, 이론이 없는 실제는 경박하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풍부한 지식과 체험을 통해 축적된 삶의 깊이와 성찰은 문학을 하는 데 좋은 토양이 된다. 이런 지식과 체험은 독점을 하기보다 함께 나누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사>대구작가콜로퀴엄은 지식과 체험을 나누는 단체다. 그 가운데 박재열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 단체를 15년간 꾸준하게 이끌고 온 산증인이다.

박 교수는 작가콜로퀴엄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이 단체를 ‘작가의 산실’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콜로퀴엄을 통해 대구지역의 인문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콜로퀴엄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철학, 미학, 영화, 무용에 이르기까지 학자나 예술가에게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경북대에서 35년 6개월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하고 올 8월에 정년퇴직한다.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서가에 있는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투가 인상 깊었다.

-며칠 후 퇴직을 한다. 섭섭하지 않나. 퇴직 후 계획은.

“섭섭하다. 이별연습이란 시도 있는데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인생은 3단계로 요약되는 것 같다. 태어나서 자신의 일을 하기 전이 1단계라면, 취업이나 사업을 할 때가 2단계, 나머지 3단계는 업무에서 손을 떼거나 퇴직 후 인생이다. 난 이제 3단계에 막 들어섰다. 퇴직 후엔 논문보단 책을 쓰고자 한다. 특히 20년 전부터 생각한 바이런 전기를 쓰고 싶다.”

-척박한 인문학 환경에서 작가콜로퀴엄이 15년째를 맞고 있다. 어떤 계기로 콜로퀴엄을 설립하게 됐나.

문학을 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창조정신과 실험정신을 함양하고 대구예술 창달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창립했다. 쉽게 말해 학문과 창작을 연결시키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창작하는 사람은 자칫 자기만의 아류(我流)에 빠지기 쉽다. 자기방식대로만 예술을 한다. 그러나 자기만의 방식에 고착하면 문학은 쪼그라들고 후퇴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영감과 새로운 지식, 실험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 강좌를 만들었다. 처음 문예창작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중 한 프로그램이 작가콜로퀴엄이었다. 작가콜로퀴엄 설립에 앞서 1년 전 계명대 이중희 교수가 ‘한국화의 특색’을 시작으로 매달 인문·예술분야의 콜로퀴엄을 실시해오고 있었다. 교수들이 중심이 됐으며 지금까지 500회를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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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구작가콜로퀴엄

1999년 3월, 글쓰기와 글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모든 사람이 좀 더 창의적으로 글을 읽고, 쓰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됐다. 콜로퀴엄은 라틴어로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지식과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데 창립목적이 있다.

콜로퀴엄의 장수 비결
지식에 대한 호기심 충만
최고의 전문가 초청 특강
구미·울산 등서도 찾아와

위기의 인문학
'인문학을 축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않는 시대다’
인간의 정서나 지적세계
넓혀줄 학문 축소 말아야

교수생활 마감을 앞두고
이별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
논문보다 책을 쓰고 싶어
'바이런 전기’ 집필 계획


-대구작가콜로퀴엄 설립에 참여한 작가는 누구누구였나.

“문인과 교수 등 27명이었다. 적극 참여해 기금을 모았던 분은 권혜숙·김숙자·박국현·박미영·유귀녀·정화숙·최보경·허명희씨 등이었다. 작가대학의 강의는 문인수·김선굉·이진흥·양선규·윤장근·구모룡·하청호씨 등이 맡았다. 첫 강의는 대구 수성구 지산2동 동사무소 2층(264㎡)에서 열렸다. 이후 문학도서관도 개관하고 문예창작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도서관은 4천권에서 출발해 1만5천권의 장서를 보유하게 됐다. 도서관에서 작가대학을 열고 주부독서반도 운영했다. 회원과 수성구 주민들이 주로 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다. 지금은 대구시 중구 동덕로 141 ‘분홍빛으로병원’ 9층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7~9시에 한다.(010-8074-0027)

-작가콜로퀴엄을 어떻게 운영했나. 또 프로그램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나.

“기성작가를 위한 문학연구발표회, 예술창작활동 지원, 문예지 등 발표 공간 제공, 문예창작프로그램 운영 같은 사업을 추진했다. 대구문학의 발전을 위해 박완서, 오정희, 김춘수 등 이름이 알려진 분들을 초청했다.”

-다른 지역에도 콜로퀴엄과 같은 모임이 있나.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

“서울에서 온 한 작가가 ‘서울에도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대구에는 목요철학회 같은 철학세미나는 있지만 문학, 철학, 역사, 예술을 통섭하는 모임은 없었다. 강연에 앞서 강사가 책을 추천하면 다들 열심히 읽어온다. 매주 진행되는 강연엔 3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포항, 구미, 울산 등지에서도 온다. 강연은 보통 1시간30분 정도 하고 20~30분은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엉뚱한 질문에서 수준 높은 질문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불교의 사상에 대해 강연을 했는데 ‘공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종교, 미술, 영화 같은 주제를 정해 두 달 이상 할 때도 있다. 진행할 특강 프로그램을 미리 짠다. 박미영 국장이 섭외를 하는데 고생이 많다.”

-강사료는 넉넉하게 주나.(웃음)

“거마비 정도만 주는데 그게 늘 마음에 걸린다. 광주, 군산, 서울 등 멀리서 강사가 와 강의하고 밤차로 떠날 때도 있다. 열정이 대단하다.”

-어느 모임이든 늘 참석하는 사람만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지역신문의 문화면을 활용해 홍보를 하는데 더 많은 사람이 강의를 들으러 와 강의실이 꽉 찼으면 좋겠다.(웃음)

-어떤 분들이 주로 참석하나.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40~70대가 많다. 의사, 교수, 기업인도 온다. 이 가운데 작가로 등단한 사람도 있다. 작품을 써 와서 토론도 한다. 논문을 쓰고 창작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산자로서의 콜로퀴엄이다. 가능한한 학문의 본령에 가깝게 하고자 한다.”

-수강료는 얼마인가.

“통상 10회 강의에 20만원이다. 공식적으로 뒤풀이는 없으나 가끔 술 한 잔씩 할 때도 있다.”

-15년 이상 유지된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아일랜드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앞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했다. 정치보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철학, 예술에 대해 연구한다. 전국 어느 곳에 있든지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내 초청한다. 대부분 전공자와 교수가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의 특강 중에서 의미가 깊었다는 강의는 어떤 게 있나.

“이슬람교에 대한 특강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강좌를 짰는데, 전문가가 그 취지를 알고 다시 짜주었다. 이슬람 세계를 아는 데 정말 중요하다. 생활방식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사람들은 하마스 같은 테러단체만 보고 이슬람에 대해 편견을 갖는다. 전 세계 인구의 20%가 이슬람교인이고, 40여개 국가가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고 있다. 전주에 있는 시리아 출신의 이맙을 초청하기도 했다. 대구의 경우 이슬람연구가 전무하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전공한 사람이 있는데 상형문자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자세하게 알게 됐다.”

-콜로퀴엄이 지금까지 많은 행사를 했다. 기억에 남는 행사는 어떤 게 있나.

“세계문학제 준비단계로 2002년 11월1~3일 대구에서 한국문학인대회를 연 것이 기억에 남는다. 김종길, 조동일, 김우창 교수가 세계 속의 한국문학에 대해 발표를 하고 소설가 한승원, 시인 김춘수, 연변에서 온 정몽호 교수가 발표를 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도 많이 왔다.”

-인문학이 위기인 시대다.

“수년 전 경북지역에 있는 한 대학이 이탈리어학과를 폐지하고 영어과로 통합했다. 일반회사에선 독문학, 불문학 스페인문학 전공자를 쓰기보다 영어회화가 가능한 도구적 인간을 원한다. 인문학은 테크놀로지보다 인간이 중심이다. 인문학을 비롯한 교양을 축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난 주로 영시를 가르쳤는데 시 과목은 폐강이 잘 된다. 학생들은 영어교수법같이 임용시험에 나오는 과목을 많이 수강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정서나 지적세계를 넓혀줄 수 있는 과목이 축소돼선 안 된다. 80년대 대학 1학년 영어교과인 프레시맨 잉글리시엔 좋은 내용이 많았다. 지금은 교과서도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다.”

-정부의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보나.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학자들에 대한 연구비지원은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에 비해선 상당히 적은 액수다.”

-작가로 등단했다고 들었다.

“197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달빛’이라는 시로 등단했다. 78년 현대문학에 시집 ‘퀄퀄퀄퀄 물소리’ ‘은유를 떼기치다’ 등이 추천됐다.”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갈 생각은 없었나.

“한때 작가의 꿈을 가졌다. 경북대에 부임한 뒤 학생들 가르치고, 논문 발표하느라 창작할 여유가 나지 않더라. 요즘의 대학은 학문 외적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다. 공부하는 머리로는 시가 안 되고, 시 쓰는 머리로는 공부가 안 된다. 학문은 지성인데 시는 머리+가슴(정서)+감각+본능(생리)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집을 3권밖에 못 냈다. 재주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 작가의 길은 안 가본 길이니 미련이 있을 수 있다. 98년에 6년간 ‘시와 반시’를 하다 그만뒀다. 계간으로 ‘낯선 시’를 창간했다 폐간했는데 아쉽다. 낯선 시에는 우리나라의 시를 다 읽고, 낯선 시만 다시 수록했다. 시단에 구태의연한 시가 많다. 낯선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개척하는 것이다. 계명대 이성복 교수(문예창작과)가 교재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작가콜로퀴엄은 박 이사장한테 어떤 의미인가.

“작가콜로퀴엄의 가장 열정적인 청강생이 바로 나다. 나와 공통분모다.”

-회원들과 해외에도 여러 차례 갔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5차례 탐방을 했다. 제1차로 중국 실크로드를 갔고, 2차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갔다. 3차는 터키, 4차는 이란에 갔다. 올해에는 지난달 러시아를 다녀왔다. 그냥 놀러 가는 게 아니고 전문가를 모시고 가서 공부를 한다.”

-대구지역의 고대사나 근현대사를 다룬 적은 있나.

“대구만 따로 한 건 없다. 통일신라와 당나라의 관계, 또는 전라도 지역에 신라인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연구해보고 싶다. 앞으로 고조선이나 홍산 문화 강의를 10강 정도 할 생각이다.”

-작가콜로퀴엄과는 관계가 없는 질문이다. 대학에서 30여 년간 영어를 가르치고 곧 퇴임하는데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지나치다고 할 만큼 영어교육이 과열돼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 필리핀은 영어권 국가이지만 우리보다 선진국인가. 또 일본은 우리보다 영어를 못하지만 후진국인가. 실용비즈니스 영어교육에 경도돼 있다. 영어로만 성적을 재단해선 안 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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