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푼 韓, 가계부채 빨간불에도 질주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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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01   |  발행일 2014-09-01 제20면   |  수정 2014-09-01
2008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 연 8%… 선진국은 감소세
주택대출 한달새 3조8천억 증가… 정부 “우려 않아도 돼”
대출 규제 푼 韓, 가계부채 빨간불에도 질주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매년 8% 이상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정부의 규제완화로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저성장·저물가 국면과 맞물려 한국경제를 수렁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8.7%에 달했다. 칠레(11.9%) 등 일부 회원국과 함께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OECD 상위권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부채(가계신용)를 기준으로 봐도 2008년 말 723조5천억원인 가계부채 잔액이 지난해 말 1천21조4천억원으로 매년 8.2%씩 증가했다.

반면 대다수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이 낮아지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2008년 말 13조8천억달러였던 미국의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이후 매년 0.7%씩 줄어 지난해 말 13조3천억달러다. 같은 기간 일본도 325조4천억엔에서 311조1천억엔으로 매년 1.1%씩 줄었다. 독일과 영국은 연평균 증가율이 0.5%씩에 불과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기존 가계대출이 파산과 청산으로 딜레버리징(부채 축소)됐지만,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계속 늘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볼 수 있는데도 올해 들어 대출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내리는 등 부채를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지난달 1일 주택담보대출의 핵심 규제인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를 풀고 14일에는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주택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기업·외환 등 7개 주요 은행 주택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297조7천억원에서 지난달 28일 301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한 달 만에 3조8천억원(1.3%)이 늘어 급증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15.6%에 달하는 증가율이다.

정부는 LTV·DTI 완화로 가계부채가 우려할 만큼 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히려 LTV와 DTI가 합리화되면서 제2금융권 추가 대출이 없어져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가처분소득이 정부의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으면 규제 완화로 탄력을 받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부작용만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리테쉬 마헤시와리 전무는 지난달 29일 국제금융센터 세미나에서 “한국 가계부채 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한편 부채 건전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63.8%로 독일(93.2%), 프랑스(104.5%), 미국(114.9%), 영국(150.1%)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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