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동양의 베니스’ 中 상하이 주자자오(朱家角)의 매력 속으로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09-05   |  발행일 2014-09-05 제39면   |  수정 2014-09-05
시간이 멈춰진 물의 천국 ‘느림의 미학’ 일깨워주다
20140905
‘상하이의 베니스’로 불리는 주자자오(朱家角)는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수향(水鄕)마을이다. 1991년에 ‘중국문화명도시(中國文化名都市)’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 주요 촬영지로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폭증했다. 9개의 수로에는 모두 36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수상마을을 신경망처럼 연결해주고 있다. 첨단문명과 전통문화가 수로의 나룻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140905
다리 아래에선 절대 고기를 잡을 수 없는 방생교가 멀리 보인다. 주변엔 방생용 물고기와 자라 파는 가게가 유난히 많다.
20140905
수백년전 삶과 전승하고 있는 명리학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주자자오 뒷골목의 상점가.
20140905
사공을 제외하고 모두 6명이 탈 수 있는 주자자오 나룻배. 베니스 곤돌라와 비슷한 포스다. 인원수에 상관없이 단거리는 65위안, 장거리엔 125위안을 지불해야 된다.

중국에서 ‘물의 도시’라니?

궁금증이 먼저 일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상 도시죠. 근데, 그건 우리와는 문화와 관습, 사고와 생활 방식이 다른 유럽의 나라니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농사를 본업으로 생활하던 동양권에서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뒤로는 병풍처럼 산을 두르고 앞으로는 농업에 필요한 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강이나 하천을 완만하게 끼는 곳에 터를 잘 잡았습니다. 그런 곳이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중국’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짓고 살아왔던 농경민족이지 않던가요. 필자의 그 짧은 식견이 그저 하나의 좁은 편견과 무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중국의 국제 도시 상하이에서 서쪽으로 50여분을 달려 도착한 ‘주자자오(朱家角)’란 수상마을을 방문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단지 생활에 필요한 딱 그만큼만 물을 활용하지 않고 서양처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도시들이 우리와 가까운 동아시아 문화권에도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션 임파서블 3’란 영화에서였던가요. 중국의 어느 수상마을의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유유히 흐르는 좁은 강 주변으로 고풍스러운 정취가 물씬 풍기는 중국식 기와 지붕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죠. 악당에게 쫓기던 주인공은 갑자기 수로를 가로질러 놓인 나무 다리를 건너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사공이 노를 저어 가던 배 위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또 기와를 얹은 집 지붕에까지 기어올라 쫓고 쫓기며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는 활약상을 보여 줬죠.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하며 맹추격전을 벌이던 액션 장면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여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고 수상마을은 참으로 고색창연합니다.

영화 속에서 봤던 그 아름답던 수상마을에 대한 기억과 호기심 때문인지 마을로 향하는 내내 필자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두근 반 세근 반이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영화 속에서 보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펼쳐졌습니다. 세월의 때가 켜켜이 쌓인 듯한 검은색 기와 지붕과 나무창 주위로 둘린 하얀 외벽, 돌로 만들어진 돌길과 돌다리, 그 주변으로 무성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들. 또 그런 마을 정취를 담담히 목도하듯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그 위를 익숙한 듯 노 저어가는 뱃사공…. 이 모든 것이 마치 붓으로 그려 넣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길게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으며, 이 마을의 일상 풍경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을 어귀에는 홍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 사이로 하나둘씩 보이는 기념품 가게들과 공방을 겸해 소규모의 작품들을 판매하는 자그마한 도예 갤러리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볼거리는 많지만 다소 상업적인 모습을 한 가게들의 반복에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길은 수로를 벗어나 동네 뒤쪽의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손수 짠 아기 털 신발을 들고 나와 소일거리 삼아 판매하는 동네 할머니도 있고, 길 한구석에서 부채에 한시를 적어 판매하는 마을 아저씨도 보였습니다.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자그마한 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밀집한 집들이 괜스레 정겨워 보였습니다. 잠시 실례를 무릅쓰고 허락을 구한 뒤 들어선 어느 마을 주민의 집에서는 여느 시골 마을에서나 만날 법한 서글서글한 눈매를 한 가족이 낯선 방문자의 무례한 호기심에도 개의치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 주었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서로 손을 뻗으면 두 손이 맞닿을 법한 거리의 좁은 골목도 눈에 띄었는데요, 집 안팎으로 널린 각양각색의 빨래가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 대를 이어 전승된 점집들

골목 끝자락 즈음엔 ‘풍수(風水)’ ‘주역(周易)’이라 적힌 점집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워낙 용해 보여 하마터면 진짜 그곳으로 들어가서 필자는 언제쯤 평생의 연을 만날 수 있을는지 물어볼 뻔했답니다. 호호! 풍수와 주역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중국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고대부터 검증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데다 주자자오란 마을 역시 워낙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니 이 마을에서 자리 잡은 점집이라면 더욱더 신뢰를 받을 수 있었겠죠. 실제로 주자자오는 송나라부터 하나둘씩 점집들이 들어서고 점차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지금과 같은 마을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등에 업은 덕분인지 이들 점집은 이야기를 조금 보태고 농을 좀 섞자면 입구에서부터 알 수 없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습니다. 입구에 ‘차(茶)’라고 적힌 찻집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습니다.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평범하지만 정갈해 보이는 나무 탁자와 의자들이 단출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선반에는 다기들이 오종종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초로의 중국 남성이 저 멀리 창가 쪽 탁자에 둘러앉아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망중한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찻집 입구에는 영특해 보이는 예쁜 새가 있어 관광객의 이목을 한층 더 집중시키고 있었습니다.

수로 건너편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 골목도 언뜻 보면 지나온 골목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비슷해 보이던 골목들도 알고 보면 하나하나 그 너비가 다르고 자리 잡고 앉은 가게의 종류도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직접 쌀로 빚어 만든 술을 파는 주류 가게도 있고, 좀 더 트인 골목으로 나가니 작은 손수레 위에서 튀긴 음식이나 꼬치를 파는 상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골동품 상점에 들러 먼지가 잔뜩 눌러앉은 고서적과 고미술품, 시계, 도자기, 축음기, 동전 등과 같은 오래된 물건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갔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봅니다.

이제는 직접 배를 타고서 이 물 위의 도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확인할 시간이 된 듯합니다.

◆ 방생교 아래서 삶의 시계는 멈추고

나무로 만든 작은 배를 타고 수로를 통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머리에 삿갓 모양의 모자를 쓴 노련한 사공이 긴 장대를 물속에서 한 번 휘젓자 배가 구름 위를 나는 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나아갑니다. 강변 집들이 굳건한 돌기둥과 석판 위에 안정감 있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과 상점들은 모두 강을 향해 자그마한 발코니를 내고 있습니다. 키 작은 꽃나무들을 심어 정성스럽게 가꾼 집들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승선 가능한 인원은 사공을 제외하고 모두 6명, 가격은 인원 수에 상관없이 단거리엔 65위안, 장거리엔 125위안이라 합니다. 이렇게 배에 탑승한 관광객들은 주로 수로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수상 가옥들과 버드나무, 또 돌다리와 상점들이 어우러진 배경을 뒤로한 채 기념사진을 찍거나 뱃사공 모습을 촬영하는 데 아낌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댑니다. 필자도 가족들과 함께 주자자오 방문을 겸한 승선 기념 사진을 찍고, 뱃사공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습니다.

작은 하천을 떠올리게 하던 수로는 차츰 그 폭을 넓혀가더니 마침내 사방으로 탁 트인 전경을 드러내는 더 큰 수로와 만납니다. 그러고 보니 마치 교차로처럼 십자 모양으로 수로가 나 있습니다. 폭이 넓은 오른쪽 수로 저편으로 웅장한 규모의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이는 ‘방생교(放生橋)’란 이름을 가진 다리라고 합니다. 이 다리를 만든 성조 스님이 이르기를, ‘이 다리 아래에서는 방생만 하고 절대 물고기나 자라 등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리 주변엔 유난히 방생용 물고기나 자라를 판매하는 가게가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폭이 넓은 교차 수로를 지난 배는 다시 폭이 좁고 운치가 빼어난 수로로 들어섭니다. 배가 지나다니는 물길을 향해 가지를 드리운 나무가 따가운 햇살 아래 잠시 그늘을 드리워 줍니다. 수로를 연결하는 돌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의 포즈가 익살스럽습니다.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필자의 배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드는데요, 필자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합니다. 하나둘 다리를 지날 때마다 셈을 해 두었건만 다리는 끝도 없이 나타나고 또 나타납니다. 총 9개의 수로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는 모두 36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놓여 마을 곳곳을 연결합니다. 다리의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달라 배 위에서 이 다리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랍니다.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는 배의 속도에 맞춰 마주하는 수상 마을의 풍경은 한없이 여유롭고 다채롭기까지 합니다. 광속의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21세기, 하지만 수상마을은 수백 년 전 어느 하루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마주한 건 단지 물로 뒤덮인 신비로운 도시의 외양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수로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주민들의 삶의 고적함과 운치였습니다. 무엇보다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대물림하며 지켜가고 있는 주자자오 마을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그 자리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세상과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예전 어느 휴대폰 광고의 카피가 생각납니다.

이런 ‘고촌(古村)’을 마주할 때는 그동안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쉼표를 찍는 기분으로 ‘느림의 미학’에 심취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이 물의 도시에서는 흘러가는 저 강물과 배의 속도에 삶의 기준을 맞추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테니까요.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