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식당 디자인의 해결사’ 푸드스타일리스트 유언주씨와 파트너 푸드사진가 송석영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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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05   |  발행일 2014-09-05 제41면   |  수정 2014-09-05
“식당, 음식만 맛있으면 그만? 이젠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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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선 드물게 간판, 명함, 전단, 브로슈어, 메뉴판, 테이블 플레이팅, 식기 스타일링 등 식당과 관련된 디자인 인프라를 원스톱으로 컨트롤해주는 푸드스타일 전문 디자인회사인 맥 디자인 유언주 대표와 스튜디오 석 송석영 대표가 ‘남는 디자인 세상’을 외치고 있다.

대구의 간판을 보라.

참으로 경악스럽지 않은가. 간판도 ‘공공재’라서 자기 맘대로란 마인드는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요즘 간판을 보면 ‘흉측’하거나 ‘무개념’이란 생각이다. 음식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솔직히 2만 개가 넘는 대구의 식당 중에 그래도 이건 기억해 둘 만한 감각과 철학을 가진 간판은 어느 정도일까?

타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국제도시로 불리는 대구의 간판문화 수준은 거의 ‘구석기버전’. 대다수 주인은 ‘간판은 아무렇게 달면 되는 것’이란다. 주인의 머리 안을 들여다 본다.

‘잘 보이게 글씨는 무조건 크게, 다른 데도 모두 자기 얼굴을 올리니 나도 올려보고, 음식 사진도 올리니 스마트폰으로 대충 찍은 사진을 한 귀퉁이에 올리고, 색도 이 색 저 색 다 동원시킨다.’

무개념 현수막 업자는 늘 사용하던 글꼴을 쏟아낸다. 어디가나 비슷한 간판뿐이다. 꼭 미친사람이 널 뛰는 것 같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간판개선 작업을 주도한 중구청의 안목도 간판 사이즈만 조금 작게 만들었을 뿐 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지적이다. ‘붕어빵 간판’이랄 수밖에 없다.

돈만 앞세워 톱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겨 뉴욕 맨해튼 버전의 원더풀 간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식으론 국제적 감각의 식당문화를 만들긴 어려울 듯싶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허점이 그대로 노출된다. 겉은 ‘벤츠 S500시리즈 급’인데 내부는 티코 수준인 식당으로 추락한다. 하드웨어는 톱인데 손님을 접대하는 매니저의 말씨와 눈빛, 옷 맵씨 등은 전혀 하드웨어와 어울리지 않는 ‘촌닭’ 수준이다. 다들 그런 식당을 나오면서 ‘속았다’고 투덜댈 것이다.

대구는 언젠가부터 ‘알아서 해주소 업자 디자인’이 무법자처럼 활보하고 있다. 대책은 없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기억해야 된다.


실내인테리어…메뉴 선택…
그릇…식탁…의자…소품…
식당과 관련한 디자인 연출
경륜 쌓이면 요리개발 참여
인기 끌 메뉴 탄생시키기도

음식 보기에도 좋도록
메뉴판을 한권의 잡지처럼
음식사진은 생동감이 생명
별의별 촬영 아이디어 동원

좋은 건축가는 식당신축때
푸드스타일리스트와 동행
만족할만한 디자인 만들어


◆ 10년간 무소의 뿔처럼 달려온 유언주 맥 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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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상에 오르는 메뉴대로 사진을 내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없는 재료까지 얹어 연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게 푸드스타일리스트의 고민이다. 맥 디자인에서 찍은 먹음직스런 ‘월남쌈’ 사진.

유언주 맥 디자인 대표(32).

현재 수성구 들안길에 있는 디자인 사무실에서 척박한 디자인 대구를 ‘디자인 천국’으로 만들 꿈에 취해 산다. 명함 뒤에 ‘외식업 전문 디자인 연구소’라고 적혀 있다.

지역에선 10년 이상 한 길을 걸은 몇 안되는 푸드스타일리스트다. 아직도 일반인에겐 생소한 푸드스타일리스트. 도대체 뭘할까?

식당과 관련된 디자인 작업을 총연출한다. 건축을 제외하고 실내 인테리어에서부터 메뉴 선택, 메뉴에 맞는 그릇, 그 그릇에 맞는 식탁, 그 식탁에 맞는 의자, 그 분위기에 맞는 종업원 유니폼과 실내 소품, 그것에 맞는 메뉴판과 간판, 심지어 주인의 색깔에 맞는 유별난 명함까지 개발해준다. 한마디로 ‘식당 디자인의 해결사’로 불린다.

유 대표는 계명대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음식에 필이 꽂혀 요리학원을 전전했다. 요리 본능과 패션 본능이 합쳐지면서 푸드스타일리스트의 길이 운명처럼 그녀를 움켜잡았다. 5년 전 남성 작업 파트너 한 명을 만난다. 현재 중구 봉산동에서 스튜디오 석을 운영하는 사진가 송석영씨(42)다. 푸드 사진 전문가로 불린다.

두 사람은 지금 대구음식문화의 유전자에 디자인 감각을 심어주고 있다. 음식이 맛만으로 결정이 날 수도 있지만 그 맛이 일단 보기에 좋게 사진과 소품, 캘리그래피 등으로 치장해준다.

요즘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투입한다. 메뉴판 표지에 메인 카피를 한 편의 서사시처럼 새겨준다. 메뉴판을 한 권의 잡지처럼 만들어 준다. 레시피와 메뉴 사진, 가격만 나오는 메뉴판에서 사이 사이 식당의 역사, 주인의 성향, 종업원의 캐릭터, 게다가 식재료 공급자의 인적사항까지 삽입한다. 손님은 그 메뉴판을 보고 그 식당을 더욱 믿게 된다.

그런데 아직 이런 구상이 아직 대구에선 잘 먹혀들지 않는다. 그럴 것이 자기 건물을 가진 식당주는 채 1% 수준도 안 된다. 7% 안팎만 오너셰프이다. 나머지 식당주는 임차료 내기에도 급하다.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는 안중에도 없지만 그래도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상태다. 맛이 평준화 되면서 승부처 중 하나로 식당 분위기가 중시되면서부터다.

“아직 디자인을 중시하는 건 대다수 프랜차이즈 식당입니다. 상당수 식당은 여전히 생계형이라서 돈을 주고서라도 좋은 디자인을 갖겠다는 마인드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 식당주 마인드는 거의 ‘식당에선 음식만 맛있으면 그만’이란 수준이었다. 식당 광고조차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 항상 업자한테는 을의 입장

광고주는 이들에겐 ‘슈퍼갑’으로 군림한다.

자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노(No)’라고 하면 다시 만들어야 된다.

“가장 힘들 때는 우리가 날밤을 새우면서 만든 작품이 무조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우길 때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있습니다. 사진 촬영 때 직접 광고주를 참여시켜 현장에서 대화를 해가면서 정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개념이 없는 것과 개념 있는 디자인을 서로 비교하면서 설명하면 다들 왜 디자인 기법이 들어간 게 더 좋아보이는지 그게 왜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더군요.”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 수식되고 부풀려진 사진을 원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가장 자연스럽게 연출해야지 실제 사용하지도 않는 식재료를 예쁘다는 이유로 촬영에 투입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설득할 때가 가장 힘들단다.

또 이들을 괴롭히는 게 있다.

식당이 건축될 그 시점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저희들은 맨 나중에 투입됩니다. 투입해 보면 이미 100가지 선택지 중 99개는 모든 게 결정된 뒤죠. 그런 상황에서 깜짝 놀랄 만한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정말 답답하죠. 탁월한 건축가는 식당이 신축될 때 푸드스타일리스트와 동행합니다. 그럼 더 만족할 만한 디자인이 구축돼요.”

대구 10味 중 하나인 동인동찜갈비 촬영 때도 고민을 많이 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그리고 너무나 칙칙한 내용물. 사진 찍기가 정말 어려웠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선 평균 10가지 이상의 구도를 설정한다. 한 구도별로 50~100여 장을 찍는다. 마지막 한 장이지만 그 한 장은 수백에서 수천장 중 한 컷임을 상당수 주인은 알지 못한다.


◆ 남는 장사를 하자

사무실 벽에 ‘남는 장사를 하자’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식당이 남는 장사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디자인 회사가 아직 마인드 부족으로 제대로 된 몸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 열정만큼 돈을 버는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돈이 아니라 자기 열정과 안목을 알아주는 식당주를 남기자’란 뜻일 것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원래 요리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요리 전문가로 변한다. 많이 경험하다보면 유행하는 메뉴에 대한 감각까지 생긴다. 이게 될 메뉴인지 안 될 메뉴인지에 대한 감각도 생긴다. 나중엔 요리개발에도 참여한다. 자신들이 추천한 이색 식기로 바꾸는 식당주도 생긴다. 이럴 땐 일 할 맛이 난다.

소품개발비도 장난이 아니다. 한 가지를 오래 사용할 수 없다. “외식업계는 유행주기라는 게 있어요. 한 물간 소품이나 스타일을 고집할 수 없어요. 항상 새로운 걸 찾아 전국 각처를 기웃거립니다.”

유 대표는 특이한 바닥재를 찾으려고 공사장 현장을 자주 기웃거린다. 고전적 소품은 서울 인사동, 대구 칠성시장에선 온갖 주방기기를 찾을 수 있다. 때론 바닷가에서 조개와 모래, 자갈 등을 주워오기도 한다.

송 대표는 사진에 생동감을 주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찾는다.

특별히 찍기 어려운 사진이 있을까.

피자 사진이 가장 힘들단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피자를 찍으려면 치즈가 안굳어야 하는데 보통 1분이면 굳는다. 그래서 스튜디오 바로 곁에 조리를 할 수 있는 피자 차량까지 오기도 한다. 김 나는 장면은 드라이아이스나 담배연기를 활용한다. 맥주잔에는 분무기를 뿌려 물방울을 만들어낸다. 고기에 식용유를 살짝 발라주기도 한다. 색이 죽은 삼겹살은 냉장고에 5분 정도 넣어두면 더욱 붉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맥주 거품을 더 풍부하게 내기 위해선 소금을 집어넣는다.

예전에는 사진촬영에 더 많은 시간이 투입되는데 이젠 디지털 세상이라서 촬영후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시간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중 어느 게 가장 촬영하기 어려울까. 단연 한식이고 컬러풀한 일식은 상대적으로 찍기가 수월하단다. 가끔 손님한테 나가는 그대로 찍어달라고 할 때 식겁을 한다. 주재료와 부재료, 고명이 사진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문이기 때문이다. 메뉴판용 사진의 경우 이름만으로 어떤 음식인지 분간이 잘 안 갈 경우를 생각해 반드시 메뉴 옆에 사진을 올려두는 게 센스란다.

모쪼록, 대구음식문화가 채 몇 명도 안되는 푸드스타일리스트와 눈높이 대화를 하는 시절이 빨리 왔으면 싶다. (053) 766-4470∼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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