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생의 콘퍼런스

  • 백경열,이현덕
  • |
  • 입력 2014-09-15 07:45  |  수정 2014-09-15 07:48  |  발행일 2014-09-15 제15면
■ 대구 상원고 리더십 콘퍼런스
20140915
지난달 24일, 대구시 달서구 상원고에서 열린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가한 학생들이 각 국가의 대표를 맡아 대표단 회의를 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고교생은 바쁘다. 입시 공부에 지쳤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그 시간에 영어 한 단어, 수학 공식 하나 외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잠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 사회에 관심을 갖고, 한발 더 나아가 리더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육, 환경, 국제에 이르기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UN 회담장이 꾸려진 듯한, 8월의 한 고교를 찾아가 봤다.

“입시공부 외에
  무엇인가 다른 활동 해보자”
  2012년 몇몇 학생 의기투합
  학교 가장 큰 행사 자리매김

  행사 일정과 주제 선정부터
  전문가 섭외·홍보활동까지
  모든 진행과정 학생이 주도
  15개 조로 나누어
  사회 다양한 이슈 토론
  인성·리더십·자기주도력 길러


◆리더가 되기 위해 ‘원을 그리다’

지난달 24일 오전, 대구 달서구 상원고 한 교실에 교복을 입은 10여명의 남녀 학생이 원을 그린 채 모여 서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학생들은 각각 비핵화를 주장하는 국가를 담당하고 있었다. 본회의에 앞서 입장이 비슷한 나라끼리 모여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남학생이 “핵 보유국에 대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너무 심하게 주장하는 것보다 핵을 포기하게 되면 경제적인 이득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한 여학생은 “북한과 러시아 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중략)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고 소근거렸다. 이를 듣던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교환한다.

잠시 후, 다른 교실. 책상 22개가 원을 그리며 교실 중앙에 병풍처럼 놓였다. 각 책상에는 미국, 일본, 한국, 북한, 프랑스 등 15개국의 국기 그림이 이름표처럼 올려져 있었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각 책상에 자리했고, 한가운데에는 각국의 의견 정리를 담당할 멘토 학생이 앉았다. 또 다른 멘토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학생들은 핵을 주제로 각각 비핵화, 비인정, 핵보유국의 입장을 대변해 주장을 펼쳐 나갔다.

회의 중 러시아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크림반도에 대한 포기 의향이 있느냐는 상대 국가의 질문에 러시아를 맡은 학생이 난감해했다. 이때 사회를 맡은 학생은 “지금은 핵과 관련한 이슈만 논의했으면 좋겠다. 영토분쟁은 나중에 기회가 또 있으니 그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펜을 든 채 다른 나라의 의견을 쉴 새 없이 정리했다. 같은 나라를 담당한 학생들은 귀엣말을 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정식회담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은 마치 자신이 맡은 국가의 국민이 된 듯했다.

자기주도학습 중점학교인 대구 상원고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대구 상원고 리더십 콘퍼런스’ 행사는 올해로 3회를 맞이했다. 2012년, 고교 1·2학년 학생들이 모여 행사를 시작했는데, 학생들은 멘토(고2)와 멘티(고1)로 역할을 나눈다. 독특한 점은 교사의 지도 없이 오로지 멘토를 중심으로, 즉 학생들의 주도하에 진행된다는 점. 모든 준비 과정을 소화하고, 본 행사를 통해 참된 리더십을 기르자는 취지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보면서도, 입시 준비 때문에 사회 문제를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청소년의 현실. 이에 대해 학생 스스로가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만이 아니라 ‘학생’도 관심을 갖고 해결에 힘쓰자는 것이다. 학업에 치우쳐 있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콘퍼런스를 진행하면서 인성과 리더십, 자기주도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효과도 있다.

이번 행사에는 멘토 15명(멘토장 2명 포함)과 멘티 90명, 총 105명으로 참여 인원을 구성했다. 멘토장을 중심으로 각 멘토들은 행사일정 및 주제 선정, 전문가 섭외, 심지어 언론사 취재 요청까지 도맡았다.

행사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는데, 첫날인 8월23일에는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세미나와 ‘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한 토론이 벌어졌다. 2일 차에는 ‘세계 평화’라는 큰 주제에 맞게 핵과 기아, 경제문제, 내전이나 영토분쟁이라는 세부 주제를 정해 모의 유엔 회담을 진행했다.

15개 조로 나뉜 학생들이 한 나라씩을 담당해 입장을 대변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각국의 입장을 정리해 주장을 펼치고, 조율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을 소화한다. 행사에는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는 시간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전문가 평가(조언)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홍대영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이슈를 찾고 공부해 가는 행사다. 고교생 입장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며 “행사 기획부터 여러 준비사항을 학생들이 대부분 소화하고 있어 대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이어 “이 행사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 공부 외에도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또한 선후배가 같이 행사의 모든 부분을 준비하면서 보다 따뜻한 학교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고 리더십 콘퍼런스는

2012년, 당시 2학년이던 몇몇 학생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던 중 ‘입시 공부만 하는 고교생이 아닌, 정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에 서 있는 고등학생으로서 무언가를 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1기 콘퍼런스는 ‘과학 기술의 발전방향(통신 및 사생활, 생명과학, 에너지, 환경 등)’ ‘공교육(학교 폭력, 교권 침해, 사교육 열풍 등)’ ‘소수자(장애인,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성 소수자 등)’를 주제로 열렸다. 지난해 열린 2회 콘퍼런스에서는 북한과 평화를 대주제로 잡아, ‘북핵 보유에 따른 국제사회의 긴장상태 완화 방안 모색’에 대해 모의UN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상원고 리더십 콘퍼런스는 이 학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멘토와 멘티가 한 조가 되어 여러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고등학생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들을 살펴보며 한국 사회의 주요 축이 되고, 나아가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 올해는 올림픽과 청소년, 세계 평화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현덕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