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영의 명사에게서 배우는 힘이 되는 영어한마디] Truth does not change because…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09-15 07:56  |  수정 2014-11-06 14:10  |  발행일 2014-09-15 제16면
20140915

Truth does not change because it is, or is not, believed by a majority of the people.(진리는 다수의 사람이 믿거나 믿지 않는다 해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수학자이자 철학자, 신학자인 지오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에 대한 신념을 고수한 죄(신성모독)로 종교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브루노가 그의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가 알아낸 지식의 공개를 미뤄온 코페르니쿠스처럼 지혜롭지도(?), 법정에서 자신의 말을 부인해 목숨을 구걸한 갈릴레오만큼 유연하지도(?) 않았다.

도미니크회 수도사 출신이었던 브루노는 드물게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다수에 굴복하거나 세류에 영합하는 일은 없었다. “It is proof of a base and low mind for one to wish to think with the masses or majority, merely because the majority is the majority. Truth does not change because it is, or is not, believed by a majority of the people.(사람이 다수나 무리와 더불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겁하고 저열한 마음을 가진 증거이다. 단지 다수는 다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다수의 사람이 믿거나 믿지 않는다 해서 변하는 것은 아니다)”

20140915
지오르다노 브루노

브루노는 소속 수도회는 물론 심지어 루터나 캘빈 등 개신교파로부터도 파문당했으나 지동설과 신약성서의 근본교리(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마리아가 동정녀라는)에 대한 의문 제기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사형판결이 있기까지 8년 동안 끈질긴 고문 속에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는 기득권자들이 진실 자체보다도 그들의 이익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With luck on your side, you can do without brains.(당신들에게 행운이 있다면, 당신들은 생각 없이 뭐든 할 수 있군)”

거대한 종교권력과 세상의 편견 앞에 한없는 무력감을 느낀 브루노는 결국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Time is the father of truth, its mother is our mind.(시간은 진리의 아버지이고, 그것의 어머니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의 말대로 가톨릭교계의 거대한 음모가 세월이 흐른 후 결과적으로 어떻게 결말지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브루노의 목숨 가치를 따지는 일은 세삼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루노의 판결과 집행과정을 되짚어보면 인류에게 있어서 종교란 어떤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뿐만 아니라, 잔혹함 앞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용기가 어느 정도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Perhaps your fear in passing judgment on me is greater than mine in receiving it.(나의 판결에 대한 당신들의 두려움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두려움보다도 더 큰 것 같군요)”

사형선고 재판정에서 추기경 등으로 이뤄진 재판관들을 바라보면서 한 브루노의 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두려워한 교회권력은 그의 혀와 입천장을 쇠로 뚫고 아래턱에 쇠로 만든 재갈을 채우기까지 했으나 브루노는 그의 신념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수난의 과정에서 브루노도 삶에 대한 회의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이다.

“What can be more stupid than to be in pain about future things and absent ones which at present are not felt?(미래의 것과 그리고 현재 느껴지지 않는 눈앞에 없는 것에 관해 고통 속에 처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편,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동조했던 갈릴레이와 케플러조차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브루노가 경직된 삶의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패한 권력에 ‘아직까지는 추상적인’ 지식으로 맞서야했던 브루노 입장에서 보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짓을 지지하는 갈릴레이류의 사람을 상종 못할 저급한 인간형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난세에는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도 어렵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어떻게 주장하고 간직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